지난해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실시한 충돌 평가에서 현대차그룹의 26대 차종이 최고 등급을 받았다. 이는 폭스바겐그룹(27대)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은 과거부터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으며 이 기관으로부터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만큼 충돌 안전성에 자신감 있는 현대차그룹이 안전평가 현장을 공개했다. 지난 12일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충돌안전평가 미디어데이. 현대차그룹은 이날 실제 충돌 평가와 그간의 연구 과정들을 소개했다. 현대차그룹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가장 큰 가치 중 하나인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용, 해외용 상관 없이 다 안전"
이날 공개된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은 2005년 준공됐다. 안전시험동은 크게 시험동(총 4만m²·약 1만2100평)과 충돌장 시험장(2900m²·877평)으로 나뉜다. 충돌시험장은 100톤(t)의 이동식 충돌벽과 전방위 충돌이 가능한 총 3개 트랙으로 구성돼있다. 최고 속도 100km/h, 최대 5톤의 차량까지 시험이 가능하다.
이날 설명을 맡은 백창인 현대자동차 통합안전개발실장 상무는 "차량 준비부터 시험을 마칠 때까지 표준화된 절차에 맞춰 진행된다"며 "시험 차량에 고속 카메라, 센서를 부착해 한번의 시험으로 수많은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IIHS이 실시한 충돌안전평가에서 총 26개 차종이 최우수 등급인 TSP+(Top Safety Pick Plus)와 우수 등급인 TSP(Top Safety Pick)에 선정됐다. IIHS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충돌테스트를 평가하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백 상무는 "현재 순위 기준으로는 폭스바겐그룹이 27개 차종으로 1위이긴 하지만 7개 차종이 중복 카운팅 돼 있다"며 "현대차그룹은 기아의 스포티지만 중복 카운팅 돼있어 이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1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18년부터 5년 간 IIHS TSP+·TSP 최다 선정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실 자체가 충돌 안전 성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그간 제기돼왔던 루머에 대해서도 정면 반박했다. 과거부터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국내 판매 차량보다 해외 판매 차량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는 루머가 종종 제기돼왔다.
백 상무는 "기본적으로 국내 판매 차량과 해외 수출 차량의 차이가 없고 국내 공장 생산차량과 해외공장 생산 차량의 차이도 없다"며 "차량의 골격구조는 충돌, 내구, NVH(진동 소음), R&H(승차감), 연비 등 모든 성능에 영향이 있으므로 글로벌 원바디(Global One Body) 골격 구조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각국에서 요구하는 법규 차이로 일부 대응구조 차이는 있다"며 "예를 들면 국내와 유럽은 보행자 보호 법규가 적용 중인데 이를 대응하기 위해 범퍼 하단부에 로워 스티프너(범퍼 안쪽에 장착되는 보강재)가 적용되는 식의 차이는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호 차체 설계 팀장도 "만약 국내용, 해외용을 다르게 만든다면 그걸 분류하고 생산하는 게 비용적으로 더 든다"며 "국내, 해외 구별 없이 공장에서 동일하게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취재진에게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것은 인체 모형 '더미'였다. 사람을 대신해 평가에 활용되는 더미는 '정면 충돌형', '측면 충돌형' 두개로 나뉜다. 더미엔 총 157개의 센서가 부착돼있어 뇌진탕, 복부 및 하지부 상해도를 상세하게 측정할 수 있다.
백 상무는 "현대차그룹은 다양한 체격의 남성, 여성, 유아 더미 170여개를 보유하고 있다"며 "더미 1개의 가격은 15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실험 5초 만에 끝났지만…'데이터는 다 확보'
설명회가 끝나자 충돌 안전 평가가 진행됐다. 이날 충돌 평가는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가 시속 64km/h로 달려 벽에 충돌하는 시험이었다.
충돌안전평가는 단 5초 만에 끝났다. 시험이 끝나자 현대차그룹 연구원들이 충돌 부위와 차량의 변형 여부부터 살폈다. 특히 이날 시험 차종이 전기차인 만큼 고전압 배터리 파손으로 인한 전해액 누유, 화재 가능성 등도 함께 검사했다. 충돌은 찰나였지만 충돌 차량에 다양한 장치들을 장착한 덕에 평가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다.
김종민 안전성능시험팀 파트장은 "시험 후 주로 체크하는 부분은 에어백의 전개 여부, 시트벨트와 시트의 이상 유무, 충돌 속도가 오차 범위에 들어오는지 등을 확인한다"며 "이외에도 더미 상해나 차량 펄스를 취득하기 위해 계측기로부터 시험데이터를 수집하고 고속 카메라로 동영상을 다운받는 작업도 실시한다"고 말했다.
가상실험인 버추얼 충돌 시뮬레이션도 함께 진행된다. 버추얼 충돌 시뮬레이션을 통해 차종당 평균 3000회 이상의 실험 해석 과정을 거친다. 한 건의 버추얼 시뮬레이션 과정을 도출하기까지 약 15시간이 소요된다. 한 차종 당 가상 안전 평가에 총 4만5000시간이 투입되는 셈이다.
백 상무는 "모든 조건을 실차 충돌로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실차 충돌을 보완해 버추얼 시뮬레이션 평가를 진행 중"이라며 "(더미가) 복잡한 인체 구조를 100% 구현하는 것은 어려워 버추얼 인체모델을 적용해 상해 정도를 검토한다"고 말했다.
"전기차 화재, 안전성 더 높이겠다"
충돌안전평가 이후에는 질의 응답 시간이 진행됐다. 이날 질의엔 전기차 충돌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았다. 최근엔 전기차의 충돌 직후 발생한 배터리 화재로 목숨을 잃는 사례가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 화재 발생률은 낮지만 위험도는 높은 만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 개발을 지속해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차체 설계팀, 배터리 설계팀 등 다양한 부서 간 협업을 통해 배터리 안전성을 높여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상무는 "작년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화재 발생이 내연기관차량 4366건, 전기차 37건 발생했다"며 "내연기관차(2491만대), 전기차(23만대)의 비율로 계산해보니깐 화재 발생율이 내연기관 0.018%, 전기차 0.01%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기차와 관련해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구조적 단계를 적용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며 "하지만 단계적으로 보완해가며 안전성을 높여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정훈 배터리설계팀 팀장은 "배터리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케이스는 고전압, 배터리셀 등 그 원인이 다양하다"며 "(차체팀과 다양한 협업을 통해) 배터리 간의 연결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