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DS) 부문이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를 피하지 못했다. 전년 동기 8조8400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은 2700억원으로 줄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호조로 흑자는 지켰으나, 메모리 사업은 사실상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연간 매출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수요 부진 등 어려운 경영 여건 속에서도 선방했다는 평가다.
'캐시카우' 메모리 부진하자…
31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매출 70조4646억원, 영업이익 4조3061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캐시카우인 메모리 매출이 줄어들며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메모리 가격 하락 심화와 재고평가손 영향, 스마트폰 판매 둔화로 전년동기(13조8667억원)의 3분의1에 그쳤다. 이에 따른 영업이익률 역시 6.1%로 전년 동기(18.1%)보다 12%p(포인트) 줄었다.
연간 기준으로 보면 전년도에 이은 사상 최대 매출이다. 삼성전자의 작년 연간 매출은 302조2314억원으로 전년 대비 8.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6% 줄어든 43조3766억원을 기록했다. 연간 영업이익률도 14.4%로 4.1%p 감소했다.
사업부문별로 보면 반도체 사업의 부진이 뼈아팠다. DS부문의 4분기 매출은 20조700억원, 영업이익은 2700억원이었다. 매출은 22.8%, 영업이익은 96.9% 급감했다. 메모리는 재고자산 평가 손실의 영향 가운데 고객사 재고 조정이 지속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해 실적이 대폭 감소했다. 시스템LSI(반도체공정설계)도 업계 재고 조정에 따른 주요 제품 판매 부진으로 실적이 하락했다. 파운드리가 주요 고객사용 판매 확대로 최대 분기 및 연간 매출을 달성하며 홀로 분발했지만, 실적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적을 이끈 것은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였다. SDC(디스플레이)부문의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한 9조3100억원, 영업이익은 1조8200억원으로 37.9%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19.5%로 전 사업부 중 가장 수익성이 높았다. 중소형 디스플레이가 플래그십 제품 중심 판매로 견고한 실적을 달성한 덕이다. 대형도 적자 폭이 완화되며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
TV와 가전, 스마트폰 사업 등을 포함한 DX(디바이스경험)부문의 4분기 매출은 42조7100억원, 영업이익은 1조6400억원이었다. MX(모바일경험) 부문은 스마트폰 판매 둔화와 중저가 시장 수요 약세로 7.1% 줄어든 26조9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36.1% 감소한 1조7000억원이었다.
VD(영상디스플레이)는 연말 성수기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해 프리미엄 제품 중심 판매를 이어갔지만, 생활가전의 시장 악화와 경쟁 심화에 따른 비용 증가로 4분기 6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하만은 전장사업 매출 증가와 견조한 소비자 오디오 판매로 2분기 연속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3조94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8.2% 증가한 3700억원이었다.
"인위적 감산 없다" 입장 재확인
삼성전자는 올해 역시 작년과 같은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시설 투자(CAPEX)는 작년과 유사한 수준으로 집행할 계획이다. 이날 실적 발표 후 진행된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김재준 삼성전자 부사장은 "올해 시설투자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 필수 클린룸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시설 투자 규모는 20조2000억원으로 반도체에 18조8000억원, 디스플레이에 4000억원이 투입됐다. 연간으로는 반도체 47조9000억원, 디스플레이 2조5000억원으로 총 53조1000억원이 집행됐다. 메모리는 평택 3, 4기 인프라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EUV 등 첨단 기술 적용 확대, 차세대 연구 개발 인프라 확보를 위한 투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파운드리는 평택 첨단 공정 생산 능력 확대와 미래 수요 대응을 위한 3나노 초기 생산 능력과 미국 테일러 공장 인프라 구축에 투자를 집중했다.
당초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감산이나 투자 축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수요가 부진한 상태에서 공급이 줄면 메모리 가격 상승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메모리 업계 1위인 삼성전자가 감산에 나서면 전 세계 수급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
이날 김 부사장은 감산 계획 관련 질문에도 "최근 시황 약세가 당장 실적에 우호적이지 않지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만 설비 재배치 등을 통한 생산라인 효율화를 통한 자연적 감산은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업체는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투자 속도 조절, 미세공정 전환 등을 통해 자연적 감산을 진행한다.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거나 생산라인을 멈춰 직접적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게 아니라 감산 효과를 주는 방식을 동원하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최고의 품질과 라인 운영 최적화를 위해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와 설비 재배치 등을 진행하고 미래 선단 노드로의 전환을 효율적으로 추진 중"이라며 "단기간 의미 있는 규모의 비트 영향은 불가피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활동이기 때문에 미래 성장 준비 차원에서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