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LIG넥스원·현대로템·한국항공우주(KAI) 등 국내 주요 방위산업(이하 방산) 4사의 지난해 부채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AI의 부채비율(부채를 자본으로 나눈 비율)은 전년대비 크게 상승했다.
일반적으로 부채 증가는 재무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업들에게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지난해 방산 기업의 부채 증가는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부채 증가의 주원인이 선수금에 있어서다. 선수금은 물건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고 먼저 받은 계약금을 말한다. 즉 실적호조와 연관있다.
방산 4사, 부채 모두 늘었다
방산 4사 중 부채가 가장 큰 폭으로 뛴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였다. 이 회사의 작년 말 기준 부채비율(이하 연결기준)은 286%로 전년대비 105%p(포인트) 상승했다. 이 기간 부채총계는 11조2335억원으로 전년대비 57.9% 증가했다.
KAI의 부채비율도 크게 뛰었다. KAI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435%를 기록하며 전년대비 84%p 상승했다. 이 기간 부채총계는 6조3192억원으로 전년대비 38.6% 상승했다.
현대로템의 작년 말 부채비율은 223%를 기록하며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늘어난 부채만큼 자본이 함께 증가한 결과다. 특히 지난해 결손금을 모두 털어내고 1677억원의 이익잉여금이 쌓이며 재무구조에 숨통이 트인 상황이다. 현대로템의 지난해 부채총계는 3조3323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17.6% 증가했다.
부채비율이 전년대비 감소한 곳도 있었다. LIG넥스원의 작년 말 부채비율은 222%로 전년대비 15%p 하락했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부채총액은 커졌다. LIG넥스원의 작년 말 부채 총계는 2조775억원으로 전년대비 14.6% 증가했다.
착한 부채 '선수금' 때문
방산 4사의 부채 규모가 전년대비 커진 주원인은 선수금에 있다. 선수금은 계약 상대로부터 미리 받은 돈을 말하는데 회계상 부채로 분류된다. 회계상 부채의 정의는 '기업이 향후 이행해야 할 의무가 발생'할 경우다.
방산 기업이 받은 선수금 대부분은 수주 과정에서 발생한 계약금으로 보면 된다. 향후 무기 체계 지급을 약속하고(의무 발생) 미리 돈을 받았기 때문에 부채로 분류한다. 배 한척당 수천억원을 상회하는 조선업도 선수금을 받는 형태로 수주 계약이 진행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선수금 규모는 체결하는 기업, 국가마다 다르게 적용된다"며 "다만 지난해 대규모로 발주한 폴란드의 경우 수주금액의 약 30% 가량을 선수금으로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방산 4사의 지난해 선수금 규모는 전년대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폴란드, 아랍에미리트(UAE) 등 해외 시장에서 수주가 꾸준히 이뤄진 결과다. 이 기업들 모두 재무제표에 별도의 선수금을 표기하고 있진 않지만 계약부채, 기타유동부채, 유동계약부채 등 다양한 계정 항목을 통해 선수금을 포함시키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기타유동부채 항목에 선수금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이 기업의 지난해 선수금은 4조9049억원으로 전년대비 101.3% 급증했다. 전체 부채에서 선수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3%로 전년대비 9%p 증가했다.
부채총계에서 선수금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LIG넥스원이었다. 전체 부채의 선수금 비중이 65%를 차지한다. 이는 전년대비 17%p 증가한 수치다. LIG넥스원의 지난해 선수금(계약부채)은 1조3518억원으로 전년대비 53.8% 증가했다.
방산 4사 중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KAI도 선수금(계약부채) 비중이 3분의1이상(36%)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년과 견줬을 때 그 비중이 10%p 상승했다. 이 회사 역시 부채 규모가 증가한 것 대비 선수금 증가율이 더 가팔랐다는 이야기다.
현대로템의 작년 말 선수금(계약부채, 초과청구공사)은 1조2161억으로 전년대비 35.1% 증가했다. 현대로템의 선수금이 1조원 넘게 쌓인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부채 대비 선수금 비중은 36%로 전년대비 5%p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방산업의 경우 수주가 늘어나면 부채비율이 크게 뛰는 경향을 보인다"며 "향후 부채에 있던 선수금은 시점에 맞춰 손익계산서의 매출(자본 증가)에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채 크기가 커져 재무상태가 악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수주를 그만큼 많이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