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비(R&D 비용)는 기업들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지표다. 무기 체계를 개발하고 실전 배치하는데 10~20년이 소요되는 방위 산업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무기 체계를 '만들고-팔고-다시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LIG넥스원·현대로템·한국항공우주(KAI) 등 국내 주요 방위산업업체(이하 방산) 4사는 지난해 매출의 3~9%를 연구개발비로 사용했다. 하지만 회계 처리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AI는 연구개발비의 절반 이상을 '자산화'한 반면, 현대로템과 LIG넥스원은 절반 이상을 '비용 처리'하는 경향을 보였다.
매출 3~9%, 미래에 투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LIG넥스원·현대로템·KAI 등 국내 주요 방산 4사 중 지난해 연구개발비 지출 규모가 가장 컸던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난해 연구개발비(이하 연결기준)는 5867억원으로 전년 대비 0.2% 소폭 상승했다. 이는 총 매출의 9%에 해당하는 규모다. 2021년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SK하이닉스 등 시총 10대 기업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5.5% 수준이었다.
하지만 연구개발비 전액이 방산 부문에 투자된 것은 아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연구개발비는 사업 부문인 △지상방산 △항공우주 △시큐리티 등을 합산한 규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방위 사업의 경우 기밀 사항들이 포함돼 있어 방산 부문의 연구개발비를 따로 공개하진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연구개발비 규모가 두번째로 컸던 곳은 KAI였다. KAI는 지난해 2067억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했다. 이는 전년 대비 1.1% 감소한 수치다. 작년 매출에서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5%로 전년대비 0.7%포인트 감소했다.
KAI는 올해부터 연구개발비 규모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KAI는 지난 3월 중장기 전략을 통해 '향후 5년간 연구개발 분야에 1조5000억원 투자' 계획을 내놨다. 매년 연구개발비에 3000억원을 투자해야하는 셈이다. 세부적으로는 △품질 개발 비용 7100억원 △플랫폼 개발 4600억원 △미래 신기술 확보 3300억원 등이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1126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전년 대비 8.8% 증가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율은 3.6%로 0.1%포인트 소폭 감소했다. 현대로템도 방산 부문 연구개발비를 따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현대로템의 사업 부문은 △레일솔루션 △디펜스솔루션 △에코플랜드 등으로 나뉜다. 그간의 연구개발성과는 레일솔루션 부문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방산 4사 중 연구개발비 규모가 가장 작았던 곳은 LIG넥스원이었다. LIG넥스원의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745억원으로 전년 대비 9.5% 감소했다. 연구개발비 대비 매출액 비중은 3.4%로 전년대비 1.1%포인트 하락했다.
각자 다른 회계처리
연구개발비는 회계상 '당기에 비용으로 처리'하거나 '자산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연구개발비는 지출적 성격이 강하지만 개발에 성공할 경우 향후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회계상 자산의 정의는 '기업이 소유하고 있고 미래에 경제적 효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자원'이다.
예를 들어 A기업이 연구개발비로 1000억원을 투자하고 그중 400억원 정도가 향후 경제적 이득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된다면 무형자산(개발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개발비는 일정한 방식에 따라 매년 상각해나가는 식이다. 남은 600억원은 당기 비용으로 처리한다.
연구개발비의 자산 계상 비율이 높아질수록 기업들의 향후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개발비 규모가 커질수록 매년 상각해야 규모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비의 상당 부분을 당기 비용 처리하는 기업들도 있다. 국내 기업에서 연구개발비 지출이 규모가 가장 큰 삼성전자는 연구개발비 99%를 당기 비용처리한다.
업계 관계자는 "개발비가 규모가 계속 혹은 지나치게 커질 경우 향후 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만약 기대만큼 연구개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대규모 손상차손도 반영해야 하는 것이 개발비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방산 4사 중 연구개발비의 자산화 비중 규모가 가장 컸던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연구개발비의 73%(4331억원)를 자산화했다. 무형자산 항목인 개발비 규모도 지난해 6050억원으로 전년 대비 24.4% 증가했다. 개발비가 전년 대비 크게 증가한 것은 합병 과정에서 704억원의 개발비가 유입돼서다.
KAI도 지난해 연구개발비의 절반 이상을 자산화했다. KAI는 지난해 연구개발비의 56.9%(1180억원)를 개발비로 분류했다. KAI의 전체 개발비는 634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1% 증가했다.
반면 현대로템과 LIG넥스원은 연구개발비 절반 이상을 비용 처리했다. 특히 현대로템은 연구개발비의 90% 이상(1038억원)을 당기 비용으로 처리했다. 당기 비용 처리 비중이 높다보니 개발비 규모도 전년 대비 감소했다. 현대로템의 지난해 전체 개발비는 전년 대비 4.7% 감소한 463억원이었다.
LIG넥스원은 연구개발 비중의 62.7%(467억원)를 당기 비용 처리했다. LIG넥스원은 지난 2021년까지만 해도 자산 계상 비중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실적에 따라 개발비용을 자산화 또는 비용화를 선택하지는 않았다"며 "회계 기준에 따라 자산화가 가능한 부분만 자산으로 분류했다"고 말했다.[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