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위산업 업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작년 실적 호조의 기세는 올해도 이어질 분위기다. 일각에선 글로벌 안보위기 등 외부변수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핵심은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투자의 결과에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LIG넥스원·현대로템·한국항공우주산업 등 주요 방산 4사의 현황을 살펴보고 미래방향성을 진단해본다.[편집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LIG넥스원·현대로템·한국항공우주(KAI) 등 국내 주요 방위산업(이하 방산) 4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비 크게 증가했다. 폴란드, 아랍에미리트(UAE) 등 해외 시장에서 수출 성과가 이어진 결과다. 지난해 방산 부문 수출 규모는 170억달러(한화 22조원)로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방산 기업들 곳간도 두둑이 찼다. 기업들은 벌어들인 이익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연구개발 투자에 나설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업은 특성상 연구개발 비용이 꾸준하게, 대규모로 투입돼야 하는데 지난해 실적 호조로 안정적인 현금을 확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산4사, 작년 이어 올해도 웃는다
방산 4사 중 지난해 영업이익이 가장 많았던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연결기준)은 3772억원으로 전년대비 36.1% 증가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업 부문은 크게 △지상방산 △항공우주 △시큐리티 등으로 나뉘는데 방산 부문 영업이익은 2103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매출은 6조5396억원으로 전년대비 18% 증가했다.
특히 이 회사는 지난해 4분기 실적이 가장 좋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0월 폴란드와 3조2000억원 규모의 K-9자주포 수주 계약을 맺었는데, 지난 4분기 초도 물량 일부가 실적에 반영됐다.
영업이익 증가율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가장 가팔랐다. KAI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416억원으로 전년대비 142.8% 급증했다. 이 기간 매출은 2조7869억원으로 전년대비 8.8% 증가했다. KAI 역시 지난해 폴란드와 3조6000억원 넘는 FA-50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국내 항공기 완제품을 유럽 국가에 수출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현대로템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큰 폭으로 뛰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475억원으로 전년대비 83.9% 증가했다. 이 회사의 사업부문은 △철도 △방산 △플랜트로 나뉘는데 방산 부문 영업이익이(1138억원)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 방산 부문 매출은 1조592억원으로 전년대비 18.1% 증가했다.
현대로템도 작년 8월 폴란드와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K2 전차 180대 공급계약으로 4조5000억원 규모다. 이미 물량 일부는 납품됐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2차 물량(820대)에 대한 추가 계약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IG넥스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791억원으로 전년대비 84.3% 증가했다. 이 기간 매출은 2조2298억원으로 전년대비 6.1%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매출 모두 연간기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LIG넥스원은 작년 초 아랍에미리트(UAE)와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천궁 II)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수주 잭팟을 터트렸다. 거래 금액은 약 2조6000억원으로 단일 유도무기 수출로는 국내 방위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 외에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수출 성과를 거뒀다.
방산 4사의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고는 94조621억원에 달한다. 세부적으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항공엔진, 방산 등 모든 사업부문 포함) 52조6000억원 △KAI 24조6000억원 △LIG넥스원 12조2600억원 △현대로템 4조5000억원 규모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각 기업별로 다를 순 있지만 평균 3~5년치 일감을 확보한 수준이다"며 "여러 국가들이 국방비 지출을 확대하는 추세여서 올해도 대규모 수출 계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두둑해진 곳간 '미래사업 마중물'
방산 4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모두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자산, 공정가치 측정금융상품 등 포함)도 두둑해졌다.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은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이 회사의 작년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3조1626억원으로 전년대비 20.4% 증가했다. 그중 영업활동으로 유입된 현금흐름은 1조7103억원에 달했다.
KAI는 국내 방산 기업 중 두번째로 많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KAI의 현금성 자산은 2조1896억원으로 전년대비 103.5% 급증했다. 그중 영업활동으로 창출된 현금흐름은 1조5192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대비 239.2% 급증한 수치다.
현대로템의 현금성 자산은 9108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70.3% 증가했다. 증가율 기준 가장 가파른 상승세였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입은 7162억원이었다. 2021년엔 영업활동에서 627억원의 현금 유출이 발생했다.
LIG넥스원의 현금성 자산은 3396억원으로 전년대비 160.7% 증가했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4565억원을 기록했다.
방산 4사 모두 늘어난 현금성 자산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전망이다. 방산업은 연구 개발부터 실전 배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안정적인 현금 확보가 중요하다는 게 업계 측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현금을 연구개발에 사용하진 않겠지만 (늘어난 현금 덕에 투자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연구개발에 투입해 새로운 무기 체계를 만들고 판매한 뒤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다시 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방산 기업 중 KAI가 가장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내놓은 상황이다. KAI는 2023∼2027년중 1조5000억원, 2028∼2032년중 3조원을 투자하고 그 이후엔 매년 매출액의 5∼6%씩 투자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보통 무기개발 착수부터 실전 배치까지 10~20년은 소요되는데, 이 기간 엄청나게 많은 현금이 투입된다"며 "다행히 지난해 방산 기업 대부분 안정적인 실적으로 현금을 확보한 덕에 미래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