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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에 낀 'K반도체', 실익 챙길 방법은

  • 2023.06.21(수) 15:13

한국 정부와 기업간 전략적 공조 필요
대중 수출규제 유예 기간 확대가 관건  

/그래픽=비즈치

미국 국무장관이 5년만에 중국을 방문하면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미중 패권전쟁에 끼어 양자택일 기로에 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현재 미국은 한국 기업에 대한 대중(對中) 반도체 장비 도입에 대한 별도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대립해왔던 미국과 중국이 소통의 물꼬를 튼 지금이 K반도체 생존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적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신중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미중 회담이 최악의 갈등상황을 면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첨단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양국의 근본적 입장이 바뀌었을 가능성은 낮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한국 기업 및 정부는 미국 의회 설득 등 전략적인 접근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향후 관건은 ‘대중 수출통제의 유예기간’인만큼 한국이 실익을 최대한 챙길 수 있는 제안을 지속·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보고있다.

미중 회담 효과 제한적…‘최악은 면해’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으로 K반도체에도 한 줄기 희망이 생길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우선 긍정적인 부분은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다소 완화됐다는 점이다. 미중 양국 관계의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만큼 일단 의미는 있다는 평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고위급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추후 미중 고위급 소통이 이어질 경우 양국 공급망 패권전쟁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도 있어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첨단 반도체 등 기술적 공급망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 양상이 당장 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실질적 관계 회복을 위해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반도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고 대만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특정 이슈를 두고는 여전한 입장 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미국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국과 회담을 비공식적으로도 해왔기 때문에 이번 회담이 그리 큰 변화를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며 “미중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방지하는 차원에선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1~2년 ‘단기적 유예’ 유력…실익 확보 급선무

이번 미중 회담이 ‘대중 수출규제 유예 검토’에 있어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현재 미국 상무부는 유예기간 연장 등 구체적 사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이달 초순 앨런 에스테베즈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한국 기업에 적용된 수출 통제 유예 조치를 당분간 연장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했다. 구체적으로 △16나노미터(㎚) 이하 시스템 반도체 칩 △18㎚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생산 가능 장비가 대상이다.

미국 상무부의 중 반도체 수출규제 주요내용./그래픽=비즈워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생산 거점을 둔 한국 기업들은 1년 한시적 유예조치를 받았다. 오는 9월말 유예가 종료되면 수조원이 투자된 중국 반도체 생산 라인이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유예연장으로 가닥이 잡힌만큼 결국 관건은 ‘기간’이다. 그간 한국 정부는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간 제한이 없는 별도 기준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최근에는 기업들도 미국 상무부가 운영하는 ‘대중 수출통제 면제 제도’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장기간 유예’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희박하고 최대 2년가량의 유예가 유력할 것으로 전망한다.

연 팀장은 “미국 입장에선 대중 수출규제가 국제 정세를 움켜쥘 효과적인 무기 중 하나여서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면서 “미국이 ‘무기한 유예’를 결정할 것이었다면 애초에 그러한 규제를 적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1년간 유예를 계속 이어갈 확률이 가장 크고 최대 2년 정도의 유예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강경한 美 의회 설득 필요…기술개발 중요성 강조해야

전문가들은 유예기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와 기업 간 공조를 통해 전략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대중 수출규제 유예기간이 1~2년간 단기적 유예로 결정될 경우, 한국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져 실익을 챙기기 쉽지 않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라인에는 초격차 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짧은 텀을 두고 업그레이드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고 결과적으로 1~2년 단위의 단기적 유예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반도체 부문의 실익을 챙기기 위해 정부의 외교적 능력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의회를 상대로 적극적인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미국 의회 내에서 중국 봉쇄를 통해 패권을 쥐어야 한다는 초당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어서다.

연 팀장은 “최근 미국 정부는 글로벌 산업 생태계와 관련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이해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반면 의회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과 정부가 미 의회를 상대로 협상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봉쇄정책만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미 의회에 어필해야 한다는 게 연 팀장의 제언이다. 미국과 우방국들이 지속적인 반도체 연구개발을 거듭해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연구개발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중국 내 라인을 활성화해 자금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논리에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선 과감한 요구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 전문연구원은 “미국이 ‘무기한 유예’라는 한국 정부 및 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나, 이러한 과감하고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분위기 환기로 이어져 실익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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