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김민성 기자]울산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처, 울산대공원엔 SK광장이 있다. 이 공원을 조성한 곳이 SK여서 붙은 이름이다. 울산대공원의 크기가 110만평인 데도 이유가 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1995년 울산시와 울산대공원 조성 약정을 체결할 당시 울산의 인구가 110만명이었기 때문이다. 울산시민 1명당 1평의 공원을 주겠다는 의미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울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울산은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인 대한석유공사(유공)가 정유 공장을 세웠던 곳이다. SK는 SK이노베이션의 정유사업 성장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SK에게 있어 울산은 그룹기반이 된 의미 있는 곳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울산대공원을 지은 이유도 울산시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선대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울산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울산포럼'이다.
최 회장은 SK그룹 발전을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는 이천포럼의 경험을 살렸다. 지역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울산 구성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울산 발전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의도다. 최태원 회장 "청년인구 유출, 해결책은 소통"
SK그룹은 지난 14일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2023 울산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울산 지역 청년 인구 유출 문제와 울산 지역 중소기업의 ESG 경영 추진 방안이 주제였다.
이번 포럼에는 최태원 SK회장을 비롯해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등 SK 경영진과 김두겸 울산광역시장, 김기환 울산시의회 의장, 이윤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 오연천 울산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또 SK구성원 외에 울산지역 대학생, 시민 등 700여명이 직접 또는 온라인으로 포럼에 참여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는 지역 포럼이 흔하진 않은데, 울산포럼이 토의를 통해 지역 내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며 "이런 형태의 포럼이 계속된다면 다른 지방 도시에서도 충분히 소화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지역에서 포럼을 열고 싶다면 대한상의 차원에서 지원하고 같이 지역포럼을 활성화하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전체를 생각하기보다 각 지역별 문제를 취합하면 다른 차원의 솔루션이 나올 것이다"고 덧붙였다.
울산은 석유화학, 자동차 등 중공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이어갈 당시 인구가 몰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엔 인구 유출을 걱정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울산을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울산은 국내 제조업과 중공업의 중심 지역인 만큼 인구 감소는 노동력 감소로 직결돼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태호 울산광역시의회 의원은 "소중한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있는데도 이러한 인재들을 붙잡거나 키워낼 수 있을 만한 도시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 울산 등 우리나라 제조업 도시들의 공통적 문제"라며 "특히 울산은 지난해 하반기 기준 전국에서 청년실업률 1위를 기록할 만큼 청년인구 유출이 심각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해 하반기 현대자동차 생산직 채용은 홈페이지가 마비될 만큼 구직자가 몰렸는데 중소기업엔 지원자가 부족한 현황"이라며 "질 좋은 일자리와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면 청년 인력 유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청년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소통 강화를 제안했다. 이를 위해 내부 인테리어 개선, 소통 창구 확보 등 구체적인 해결책도 제시했다.
최 회장은 "기업들이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인테리어 변화를 비롯 상당히 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며 "특히 양방향 소통 통로를 구축하는게 중요하고, 건전하고 제대로된 소통을 위해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SG경영, 대·중소기업 함께 가야
중공업, 제조업 중심의 울산 지역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도 논의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등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기업들의 ESG 경영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외 중소기업 입장에선 ESG경영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이경우 울산연구원 연구실장은 "실제로 설문을 해보면 울산기업의 60% 정도가 ESG경영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며 "중소기업은 ESG를 추진할 만한 인프라나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을 강조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ESG경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재혁 고려대학교 교수 "ESG 전략은 기업의 미래를 바꾸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많이 하이라이트를 많이 받고 있지만 고용창출은 중소기업이 80~90%를 해내고 있어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이 제대로 서지 못하면 다음 세대가 대한민국에서 고용창출을 기대할 순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소·중견기업들도 ESG경영의 중요한 파트너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비용보다는 투자 개념으로 ESG경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최 회장도 중소기업들이 ESG경영 실천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에 공감했다. 그는 중소기업들이 ESG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하나 뜯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 회장은 "중소기업들이 ESG를 요구하는 어떤 룰이나 포맷에 맞추려고 생각하니, ESG 경영을 위해 비용을 투입해도 사업이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고 생각하는게 가장 부담일 것"이라며 "E는 환경문제와 연관돼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하다 보니 비용으로 연결되지만, S나 G는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S는 너무 CSR(사회적 책임) 역할로만 생각하는데 어디 지역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S에 해당할 수 있고, G 역시 지배구조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람 간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잘하는 분야에 권력을 조금 분배하는 활동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울산에 8조 투자, 제조 AI도 적극 도입해야"
울산에 대한 최 회장의 관심은 투자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SK는 울산 지역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 에너지 대전환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날 포럼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기후변화 문제 때문에 주로 탄소 감축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앞으로 플라스틱이 100% 재활용될 수 있도록 끌고 나가는게 저희(SK)의 목표고, 저희(SK)도 그 첫 걸음을 가는 형태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그린투자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SK 계열사 전체를 합하니, 향후 에너지 트랜지션 관련 울산에만 계획된 투자가 8조원 정도"라고 덧붙였다.
울산 지역의 핵심인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최 회장은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공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현재 제조업과 울산이 처해 있는 행태를 보면 과거와 같지 않고, 앞으로 더 험해질 것"이라며 "중국 등 경쟁자들이 과학기술과 같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 우리도 제조 AI 등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