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AI(인공지능) 성장에 힘입어 반도체 슈퍼 호황기 시절 실적을 회복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급증했다. 다만 이런 시장 선두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다. SK하이닉스는 보수적 접근을 통해 흔들림 없는 재무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이다.
6년 만에 영업익 '5조' 넘어서
SK하이닉스는 올 2분기 매출 16조4233억원, 영업이익 5조4685억원을 기록했다고 25일 밝혔다.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기존 최고 기록이었던 2022년 2분기(13조8110억원)보다도 2조6123억원 높은 수준이다.
영업이익도 회복기에 접어들었던 전기(2조8860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SK하이닉스가 5조원대 실적을 달성한 것은 반도체 슈퍼 호황기였던 2018년 2분기(5조5739억원), 3분기(6조4724억원) 이후 6년 만이다. 이에 따라 수익성도 크게 향상돼 영업이익률 33.3%를 시현했다. 2022년 2분기 이후 2년 만에 30%대로 올라섰다.
이는 높았던 시장 기대치도 뛰어넘는 수준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는 매출 16조1886억원, 영업이익 5조1923억원이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컨센서스를 상회했다.
SK하이닉스는 호실적의 이유로 메모리 가격 상승과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를 꼽았다. 우호적 환율 환경도 실적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날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김우현 SK하이닉스 CFO(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은 "D램은 HBM3E의 본격적 판매 확대와 일반 서버 제품 판매가 크게 늘며 출하량이 20% 초반 성장했다"며 "가격 프리미엄이 높은 HBM과 서버 D램의 판매 비중이 확대돼 3개 분기 연속 전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ASP(평균판매가격)는 10% 중반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대세는 'HBM'
이 중에서도 성장을 주도한 것은 단연 HBM이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의 '큰 손' 엔비디아에 4세대 HBM인 HBM3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이어 지난 3월에는 메모리 업체 중 최초로 5세대 HBM인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에 올 2분기 SK하이닉스의 HBM 매출은 전기 대비 80% 이상, 전년 대비 250% 이상 증가해 매출 성장을 주도했다. 지난 3월부터 양산에 들어간 HBM3E도 판매가 늘며 수익성 향상에 기여했다. 낸드 사업의 경우 D램 대비 성장세가 낮지만, eSSD(기업용 데이터저장장치)와 모바일용 제품 위주로 판매가 확대됐다. eSSD는 1분기보다 매출이 약 50% 증가했다.
실적 개선 폭이 커지면서 재고자산평가손실 환입의 영향은 대폭 줄었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2분기 실적에 반영된 재고자산평가손실 환입은 약 3000억원 수준이다. 재고자산평가손실은 기업의 제품·원재료 등 재고자산의 취득원가가 현재 시가보다 높을 때 예상되는 손실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약 9000억원의 환입금을 반영했고, 지난해에도 △1분기 약 1조원, △2분기 약 5000억원 △3분기 약 600억원 △4분기 4000억~5000억원 규모의 재고자산평가손실을 인식했다. 김 부사장은 "올해 하반기에 D램과 낸드 시장 환경이 우호적일 것으로 예상돼 추가 환입 가능성은 있으나 이미 상당 부분 환입돼 앞으로의 환입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속된 투자에도 재무구조 '안정'
SK하이닉스는 늘어난 AI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투자 규모를 당초 예상보다 늘릴 계획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최근 청주 M15X의 건설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 하반기 양산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부지 공사도 한창이다. 첫 번째 팹을 예정대로 내년 3월 착공해 2027년 5월 준공할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과거에 비해 인프라 투자 규모가 증가하는 가운데, 일반 D램에 비해 많은 웨이퍼 CAPA(생산능력)가 필요한 HBM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올해 투자 규모는 연초 계획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연초 계획보다 CAPEX(자본 지출)가 증가해도 재무건전성에는 이상이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부사장은 "투자 계획은 철저히 고객 수요와 수익성에 근거해 결정할 것"이라며 "최대한 영업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현금흐름 범위 내에서 투자를 집행해 투자 효율성과 재무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2분기 SK하이닉스의 차입금이 대폭 감소한 것도 이런 경영 전략 덕분이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차입금 규모는 25조2280억원으로 전기 대비 4조2780억원 감소했다. 순차입금 역시 19조1870억원에서 3조6470억원 감소한 15조5400억원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순차입금 비율은 26%로 전기 대비 8.6%포인트 낮아졌다. 전년 동기(40.6%)와 비교해도 크게 감소한 수준이다.
김 부사장은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최선단 공정 기술과 고성능 제품 개발에 매진해 AI 메모리 선도기업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