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안 부결로 시장이 또 다른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영국 하원이 영국 정부와 유럽연합(EU)이 맺은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을 거절하면서 당분간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일단 평정심을 유지했지만 보수적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노딜 브렉시트' 목전서 경고등
15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승인을 요청한 브렉시트 EU 합의안을 찬성 202표, 반대 432표로 부결했다. 찬성표와 반대표 차이는 230표로, 영국 의정 사상 가장 많은 표 차이를 기록했다.
이번 투표는 의회가 영국 내각이 EU와 체결한 협정안을 승인할지에 대한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영국 내각은 지난해 현행 제도를 2020년 말까지 연장 적용하기로 EU와 협정을 체결했다. 브렉시트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EU 탈퇴 절차와 비용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서로 엇갈리면서 여당 내에서도 반대표가 속출했다. 영국은 2017년 3월 말 EU 측에 탈퇴 의사를 밝히고 올 3월 말 정식 탈퇴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즉 EU와 사전 협의 없이 EU를 탈퇴해야 하는 상황이 목전에 닥친 것. 이른바 '노딜(No Deal·사전 협상 없는)브렉시트'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영란은행은 노딜브렉시트가 영국 국내총생산(GDP)을 최대 8%까지 떨어뜨리고 물가상승률도 최대 6.5%까지 올릴 것으로 분석했다.
◇ 향후 시나리오 분분
증권가는 이번 투표 결과가 유례없이 큰 표 차로 부결된 것을 들어 향후 국면 변화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력한 이벤트로는 불신임안 가결에 따른 총선과 제3의 대안 제시 등이 거론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영국의 조기 총선 가능성이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부결 직후 내각불신임안을 제출했다. 투표는 16일(현지시간) 이뤄질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투표에서 정부에 대한 반대표가 많이 나온 것을 들어 불신임안 가결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영국 역사상 불신임안이 가결된 것은 1979년 한 번에 불과하고 메이 총리가 이미 50% 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했다는 분석을 통해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불신임안이 부결된다면 내각이 제시할 대안에도 이목이 쏠린다. 메이 총리는 부결 후 21일 전까지 '플랜 B'를 제시하겠다고 밝힌 상황.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나설 가능성과 EU 탈퇴 일정 연기 등도 함께 거론된다.
◇ 시장 영향 제한적…추이는 지켜봐야
과거 브렉시트 여파로 증시가 급락한 적이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파급이 크지 않은 모습이다. 이날만 해도 국내외 증시는 대부분 오름세로 마감했다. 코스피 지수도 2100선을 회복하며 마감했다.
이날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브렉시트안 부결 여파에 따른 시장 영향이 제한될 것으로 분석했다. NH투자증권은 "우리나라의 영국 의존도는 극히 낮아 영국의 국지적 문제로 해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KB증권은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 사실상 폐기되고 브렉시트 협상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향후 대안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당분간 영국 파운드화 강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신 시장 변수가 추가되면서 보수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곳도 눈에 띈다. SK증권은 "여러 시나리오가 난립하고 있지만 노딜브렉시트가 아니라 영국의 온건한 탈퇴가 바람직하다"며 "첨예한 정치 이슈를 섣불리 예단하기보다는 시나리오별 대응 매뉴얼이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하나금융투자는 "브렉시트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기업 투자심리가 회복되기까지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