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는 '라이벌(Rival)'이 항상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와 애플만 해도 스마트폰 사업 초기부터 티격태격, 서로를 넘어서기 위한 무한경쟁을 하다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는 회사로 나란히 크지 않았나. 국내 증권 업계에서도 비슷한 체급의 회사들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맞수 관계를 형성,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처럼 상대방의 역량을 끌어내는 역할을 맡으며 함께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업계를 대표하는 맞수를 꼽아보고 이들의 핵심 역량을 비교해본다. [편집자]
그야말로 자존심 싸움이다. '업계 순이익 1등' 자리를 놓고 미래에셋대우와 한국투자증권이 펼치는 경쟁 말이다.
두개의 초대형 투자은행(IB)이 올 들어 매분기 내놓는 재무 성적을 보고 있노라면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흥미롭다. 근소한 차이로 상대방의 기록을 넘어서며 한발씩 나간다. 박빙 레이싱이 펼쳐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회사가 엎치락뒤치락하다 어느덧 선두권을 형성, 후위 그룹과 격차를 벌리는 것도 눈길을 끈다. 미래에셋대우와 한국투자증권은 올 1~3분기 누적으로 나란히 5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3000억원대 성적을 거둔 메리츠종금·삼성·NH투자증권을 멀찌감치 떨어뜨린 것은 물론 증권 업계를 통틀어 역대 최대 성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직 4분기(10~12월) 실적이 나오지 않았으나 1~3분기 누적만으로 두 회사 모두 작년 한해치 벌이를 가볍게 해치웠다.
◇ 미래에셋대우 압도적 자기자본 규모 9조원
두 회사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축구 선수 가운데 세계 최정상의 기량을 자랑하는 메시와 호날두를 놓고 누가 나은지 따지는 것처럼 어렵다.
일단 자기자본 규모는 미래에셋대우가 앞선다. 미래에셋대우의 자기자본은 9월말 연결 기준으로 9조원대다. 지난해 7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추진으로 자기자본이 기존 7조원대에서 무려 8조원대를 넘었는데 올 들어 1조원 가량 불어난 것이다. 증권 업계에서 압도적으로 큰 자기자본 그릇 사이즈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777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는데 마무리되면 자기자본은 기존 4조원대에서 5조원대로 확대된다. 앞서 2016년에도 1조7000억원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기존 2조원에서 4조원대로 불린 바 있다.
자기자본은 증권사의 사업 규모와 시장 지위를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자본 규모에 따라 발행어음, 종합투자계좌 등 할 수 있는 업무가 달라진다. 규제 지표인 순자본비율, 레버리지 비율 등도 이를 기준으로 측정한다. 신용평가사가 증권 산업을 평가할 때 자본 사이즈를 중요하게 살피는 이유다.
미래에셋대우의 든든한 자본력은 신사업 확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미래에셋대우의 '오너'인 박현주 회장은 일찌감치 해외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글로벌 투자로 눈을 돌렸는데 최근 굵직굵직한 딜을 성사시키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 한국투자증권, 두자릿수 ROE '두각'
수익성은 증권사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다. 가용 자원이 많아도 이를 최적화하지 않으면 사업을 잘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형사 가운데 자기자본이익률(ROE)로 단연 톱(Top)은 한국투자증권이다. 올 3분기말 기준 연환산 ROE는 무려 15%에 달한다. 이 기간 8%에 그친 미래에셋대우와 비교된다.
ROE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영업을 잘 수행했는지를 나타낸다. 증권사 사업의 총체적 성과를 측정할 수 있어 업체간 수익성 비교에 효과적이다.
단순 비유를 할 때 20억원과 10억원 각각의 종잣돈으로 2억원의 똑같은 이익을 거둔다면 10억원의 투자 수익률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금융투자회사의 본질인 투자면에서 자타공인 업계 최고다.
20%에 가까운 높은 ROE는 다른 자기자본 4조원대 이상 초대형 IB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다. 이 기간 미래에셋대우를 비롯해 NH투자·삼성·KB증권의 ROE가 10%에 못 미친다.
◇ 오너 경영인 중심, 비슷한 지배구조
'쌍두마차' 미래에셋대우와 한국투자증권은 지배구조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같은 오너 경영인 중심의 회사다. 증권이 금융 그룹의 핵심축을 맡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박현주 회장을 정점으로 미래에셋캐피탈→미래에셋대우→미래에셋생명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한국투자금융그룹도 지주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한 한국투자저축은행과 한국투자캐피탈, 한국투자부동산신탁, 한국투자파트너스 등을 거느리고 있으며 지배구조 최상단에는 오너인 김남구 부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올 3분기 기준 지주사의 세전이익(8751억원)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9%에 달할 정도로 크다.
◇ 과감한 결단, 추진력 두각
두 회사 모두 오너 기업이다 보니 중요한 시기에 과감한 결단을 내리거나 추진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미래에셋대우의 2015년 옛 대우증권 인수전. 당시 미래에셋증권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금액으로 통 크게 베팅하면서 당시 강력한 경쟁자인 KB금융지주와 한국투자증권을 제쳤다.
얼마전 아시아나항공 입찰전에서도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시장 예상가(1조5000억~2조원)을 훌쩍 넘는 2조5000억원 가량을 적어내면서 우선인수협상자로 결정됐다.
이는 1조5000억원 안팎을 제시한 애경그룹 컨소시엄보다 무려 1조원 많은 금액이다. 경쟁자를 압도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은 국내 인수합병(M&A) 업계 '큰 손'으로 떠오른 미래에셋대우의 역할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투자증권은 오너 김 부회장의 리더십 자체가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11년 이후 거의 매년 증권업계 순이익 1등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관련 업계에선 '업을 꿰뚫고 있는' 김 부회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김 부회장은 제조업과 달리 금융업에서 인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있으며 실천하고 있다. 우수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지난 16년간 직접 대학 캠퍼스를 방문했다. 증권가의 구조조정 삭풍이 몰아치는 시기에도 대규모 신입사원 채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업황에 따라 CEO 교체가 잦은 증권 업계에서 한국금융지주 계열사에는 유독 장수 CEO가 많다. 단기 수익률보다 인재를 신임하는 김 부회장의 용병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압도적 시장 지위, 수익 창출력 눈길
미래에셋대우는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최상위권의 시장 지위와 우수한 수익 창출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는 자본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증권 운용과 신용공여, 국내외 대체투자 등 부문을 확장해가면서 수익창출력을 키우고 있다.
다만 상품운용 수익의존도와 국내외 자기자본 투자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어, 증시·금리 등 외부변수에 따른 실적변동성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대내외 금융환경이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다는 점이나, 발행어음 업무를 개시한 한국투자증권 등과의 경쟁심화 양상은 수익성 및 건전성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업계 상위권의 자본력을 갖춘 초대형 IB로서 역시 우수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대형 IB로 지정된 이후 적극적으로 기업·부동산 관련 신용공여 사업을 확장했고 파생결합증권 발행과 운용 부문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시장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다.
한구투자증권도 우수한 이익창출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나 투자 확대에 따른 재무부담 상승이 예상된다. 발행어음을 통한 조달잔액이 매분기 5000억~8000억원 내외로 증가하고 있고, 발행어음 외에도 우발채무와 별도 한도를 통해 신용익스포저를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