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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사모펀드 때리기' 능사일까

  • 2020.02.19(수) 17:30

DLF·라임사태로 부정적 인식 확대
'혁신금융상품' vs '탐욕투자 결정체'

"사모펀드의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기업 생태계 혈맥으로서 사모펀드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2018년 9월, 금융위원회 사모펀드 체계 개편방안 발표 中)

최근 몇년 간 금융당국이 사모펀드가 모험자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활성화 정책을 펼치면서 시장은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투자손실을 가져온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하면서 사모펀드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사모펀드는 허황된 꿈을 가진 투자자들이 묻지마 투자식으로 큰 돈을 투자하는 시장이라는 인식도 많다. 과연 사모펀드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치부하고, 시장을 규제 안에 묶어둬야 할 일일까. 사태의 본질이 아닌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가 사태를 뒤덮고 있는 양상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사모펀드 설정 규모는 127조원으로 공모펀드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엔 412조원으로 공모펀드의 두배 가까운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특히 2015년 사모펀드 제도개편 이후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가 급증하고 2017년 이후 채권형, RP 전략형 및 코스닥벤처형 헤지펀드로 신규자금이 집중됐다.

하지만 지난해 DLF 사태와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이 이어지면서 국내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마치 사모펀드는 고수익률은 탐한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의 놀이터처럼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정부도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서며 사모펀드 규제책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사모펀드는 49인 이하의 소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로, 금융기관이 관리하는 일반 공모 펀드와는 달리 감독기관의 감시를 받지 않으며 운용에 제한이 없다.

사모펀드를 활용하면 성장 기업의 경우 단기대출이나 지분투자 방식보다 경영권 유지 차원에서 메자닌 방식 중장기 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긍정적이고, 투자자 측면에서도 초기부터 지분투자를 하는 방식보다는 메자닌 투자 후 지분투자로 전환하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기업 성장에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금융투자회사로서도 운용에 자유로움이 있어 잠재 가치가 큰 투자 자산을 활용해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의 상품을 개발해 기대수익률을 높일 수 있어 사모펀드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손실도 커질 수 있어 거듭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금융투자업계에선 펀드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소 투자금이 억대이고 전문투자자 또는 적격투자자가 많은 비중을 차지해 일반투자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점에선 공모펀드와 달리 운용의 제약을 두지 않아도 된다고 구분을 해 둔 시장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불완전 판매 논란에 선을 긋고, 추가적인 규제 가능성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금융당국은 판매사의 책임과 감시 기능을 강화해 사모펀드 운용에 대한 점검을 의무화하고 비유동성 자산이 50% 이상이면 수시로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펀드 설정이 안 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내놨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자산운용사의 사모펀드 운용 전략이 공개되고 운용 전략에 제한이 생기면서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사모펀드는 100% 전액 손실까지 불러일으키는 위험한 시장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투자 자체를 꺼리게 됐다. 업계, 당국, 투자자 등 모든 플레이어가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사모펀드 자체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하는 모습이다.

이번 라임사태 역시 왜 운용사가 투자 가치가 없는 기업의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무리하게 담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인데 판매사 판매 과정과 투자자 대응, 운용 방식 공개 여부,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 적정성, 총수익스와프(TRS) 정당성 등 부수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가 더 커지면서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사모펀드 자체가 단순 투기와 탐욕의 시장이라면 이들의 논의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본시장을 통한 모험자본의 육성과 국가 경제 활성화의 중심에는 사모펀드가 있었다. 이대로 시장을 죽이는 것이 해결책일까.

새로운 금융기법으로 자본시장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순기능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시스템화할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죽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 등의 경우에도 사모펀드 규제 필요성을 인지하지만 사모펀드 특성을 감안해 명시적인 투자 운용규제는 배제하고 내부통제 강화 등 리스크 방지 목적의 규제만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 역시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의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모펀드를 악(惡)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사모펀드의 선(善)한 순기능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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