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증권사 재무건전성 지표에 메스를 들이댄다. 부동산 익스포져(위험노출금액) 측정이 정비 대상으로 지목됐다. 금감원은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보증의 위험값을 세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일각에선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현 순자본비율(NCR) 산정 체계가 재무건전성을 측정하는데 적정치 않다며 새로운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해묵은 과제, 이번엔 풀릴까
금융감독원은 지난 6일 업무계획 발표를 통해 부동산 익스포져의 리스크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NCR 규제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획일적으로 반영하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보증 위험값을 세분화한다는 취지다. 현재 금융당국의 NCR 산출체계에 따르면 증권사가 직접 부동산 투자 건에 대출을 집행하면 위험값을 100%로 잡는다. 그러나 대출 채권에 채무보증을 선 경우엔 18%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변제순위나 잔존만기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 업무계획에서는 리스크에 비해 위험액에 적게 잡히는 부분을 개선한다는 방향"이라며 "곧 TF를 구성해 업계 의견을 들어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실 NCR 개선 요구가 나온 건 수년 전부터다. 현재 NCR 산출 체계는 미국에서 따왔다. 금융당국은 국내 증권사들의 기업금융(IB) 영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2016년 새로운 NCR을 도입했다.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값을 업무 단위별로 설정한 '필요유지 자기자본'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이로써 자기자본 규모만 크다면 얼마든지 높은 수치를 유지하기 쉬워졌다. 의도대로 영업 여력은 확대됐지만, 신용평가업계를 중심으로 재무건전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금융당국은 전문가들을 모아 NCR 개선 TF를 꾸리기도 했다. 1년 넘게 이어진 논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당시 TF에 참여했던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에도 경제적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위험값을 부여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며 "실질 위험을 바탕으로 자기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하는 방향"이라고 전했다.
근본 해결책은 '글쎄'
일각에선 이번 개선 작업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신 NCR의 위험 수준 측정 능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아예 새로운 재무건전성 측정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실제로 과거 TF에서는 초대형 IB 증권사에 은행과 같이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규제를 적용하는 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결국 지표의 목적은 증권사가 자본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지 측정하기 위함"이라며 "그런데 증권사의 영업을 어느 한 방향대로 유도하기 위해 위험액 가중치 조정이 이뤄질 경우 주객이 전도됐다는 시각이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증권사 리스크관리 부서는 세부지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증권사들의 재무건전성은 여전히 기준치를 웃돌지만, 1년 전보단 악화됐다. 자기자본 상위 증권사 10곳의 NCR은 전년동기대비 평균 104%포인트 뒷걸음쳤다. 10곳 중 3곳을 제외하면 모두 비율이 하락했다. 상위 11~20곳의 NCR은 42%포인트 줄었다.
한 증권사 리스크관리부서 관계자는 "아직은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영향을 가늠하긴 어렵다"면서도 "만일 현재 수준보다 더 큰 위험 값을 반영하라는 방향으로 세부 사항이 나온다면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부동산 투자구조는 다양하고 복잡해 차등화 기준을 도출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실무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부동산 투자의 일반적 특성을 바탕으로 차등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효섭 연구위원은 "부동산 PF에 대한 실제 위험도를 차등 적용하면 전반적으로 증권사들의 부담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으로 조심스레 전망한다"며 "현행 산출 체계가 대형사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 방식이 유지된다면 중소형사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