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사태 등으로 말라버린 한국의 모험자본 공급을 위해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조나단 복(Jonathan Bock) 블랙스톤(Blackstone) BDC 대표는 20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금융투자협회 '2023 국제증권협회협의회(ICSA) 국제컨퍼런스'에서 "최근 은행 신디케이트론의 장기 침체로 BDC를 통한 직접대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미국 BDC는 직접 대출을 중심으로 4조 달러(한화 약 5000조원)에 달하는 모험자본을 공급할 수 있을 만큼 성장잠재력이 높다"고 설명했다.
BDC는 공모를 통해 개인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유망한 비상장 벤처기업,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상장 폐쇄형 공모펀드다. 지난 2019년 국내 모험자본 공급과 비상장기업 투자 기반 조성을 위해 제도 도입이 추진됐으나 아직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가 제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르면 BDC 모집규모는 펀드당 최소 300억원 이상 설정·설립해야 한다. 또 벤처기업 등에 최소 60% 이상, 안전자산에 10% 이상 투자하도록 하고 있다. 분산투자를 위해 개별 기업에 자산총액의 20% 이내로 투자해야 하고 지분투자는 50%를 넘지 못한다.
기업이 성장하기까지 자금을 빼기 어려운 벤처투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장을 통해 환금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자금조달 방식이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공모펀드 방식인 만큼 투자자 보호장치로 '공모펀드 규제'를 모두 적용받도록 하고 있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장은 이날 발제자로 나서 "한국 모험자본 시장에도 엑셀러레이터, 크라우드펀딩, 벤처캐피탈, 사모펀드 등 모험자본 공급을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있지만 최근 금리인상과 유동성 축소, 위험기피로 모험자본 공급이 어려운 시기"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내 모험자본시장 위축 극복을 위해 미국의 BDC나 영국 VCT(Venture Capital Trust)와 유사한 BDC를 조속히 도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자본시장 참여자들에게도 각별한 관심을 부탁했다.
모험자본 시장 확대를 통한 고용창출 효과 등 해외 긍정적인 사례들도 소개됐다.
조나단 딕스(Jonathan Digges) 영국 옥토퍼스 인베스트먼트(Octopus Investment) 정보관리책임자(CIO)는 "영국판 BDC인 VCT는 영국 경제 성장 컨베이어벨트의 시작이었다"면서 "VCT를 통해 모집되는 자금 규모가 10억 파운드 규모로 수백에서 수천개 기업에 대한 투자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딕스 CIO는 "VCT는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커다란 역할을 함과 동시에 투자기회, 펀드 발굴, 세제 혜택과 세수 획득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크게 이끌었고, 투자 받은 기업의 성장으로 7만명 이상의 고용효과가 창출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면서 "세제혜택과 함께 고위험 투자에 대한 투자자보호 구조를 잘 만드는 것이 BDC 도입과 정착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세제혜택을 통해 세수가 줄어들 수 있지만 시장 참여자를 늘리고 기업이 성장하며 경제활동에 따른 세수 획득을 통해 이 부분이을 빠르게 상쇄할 수 있다는 게 딕스 CIO의 설명이다.
고금리, 고인플레이션 등으로 모험자금 시장이 위축된 시기에 도입 효과가 클 것이란 진단도 나왔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미국과 영국도 고금리와 고인플레이션으로 벤처투자가 위축된 현재 상황과 비슷한 시기에 BDC, VCT를 도입했다"면서 "BDC는 벤처시장과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제도로 증권회사, 자산운용사, 벤처캐피탈 등 참여자들의 협업을 통해 모험자본 공급, 기업 성장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지금이 도입 최적기"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