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증시 입성 통로로 스팩(SPAC) 제도가 활황을 띄고 있는 가운데 스팩 상장 기업들의 실적이 추정치를 대폭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두 사태 이후에도 고평가 논란이 여전히 따라 붙자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앞으로는 스팩 상장에서도 일반 상장처럼 비교기업 주가와 대비해 가치를 책정하는 상대가치평가법을 활용해야 하며, 상장 이후 실적 추정치와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공시 의무가 생긴다.
7일 금융감독원이 2010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스팩 상장한 139개 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추정 현황을 분석한 결과, 평균 매출액 추정치는 571억원이나 실제치는 469억원였다. 추정치에 비해 17.8% 밑돈 것이다. 평균 영업이익 추정치는 106억원으로 전망했지만 실제치는 44억원으로 58.7% 미달했다.
상장시 향후 5년간의 실적 추정치를 제시하는데 1~5차년도 매출액 추정치에 미달한 기업의 비중은 76.0%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평균 추정치 미달 기업의 비중이 84.1%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추정 연차가 높을수록 전망치에 미달한 기업 수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팩합병으로 상장한지 5년이 넘은 기업 48곳 중 매출액과 영업익이 5년 후 추정치를 달성한 기업은 각각 7곳, 4곳에 불과했다.
미래 영업환경을 지나치게 낙관해 실적 전망을 부풀린 경우가 다수였다. 금감원이 공개한 사례에 따르면 A 바이오기업은 치료제를 개발을 통해 매출 발생을 추정했다. 그러나 임상시험 등이 지연되면서 매출 발생 예정일이 1년 이상 경과했음에도 관련 매출은 발생하지 않았다.
B 콘텐츠기업은 수주가 진행 중인 모든 건에서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가정해 매출액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수주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실제 매출액은 추정치의 10분의 1에 그쳤다.
금감원은 주요 배경으로 증권사와 회계법인의 직무유기를 지목했다. 금감원은 "증권사 등 스폰서와 외부평가법인은 기업가치 고평가를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나, 합병성공 및 업무수임을 우선하는 등 그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자자보호 노력이 상당히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스팩 상장은 합병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실적 부풀리기는 고스란히 투자자 피해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스팩상장 기업의 실제 영업이익이 추정치의 43%에 그쳤다면, 합병가액을 동일한 방법인 현금흐름할인법으로 다시 계산했을때 해당 기업의 수익가치와 합병가액은 기존대비 각각 82.5%, 76.2%씩 감소했다.
이에 따라 기존 스팩 주주에게 배정되는 합병신주는 1주당 0.14주(추정치 기준)에서 1주당 0.60주(실제치 기준)까지 증가한다. 즉 스팩 일반투자자의 합병 후 지분율이 30%포인트만큼 상승하는 셈이다.
금감원은 내년 1분기부터 스팩 관련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을 개정하기로 했다. 스팩상장 기업의 영업실적 예측치와 실적치의 차이, 차이가 발생한 사유 등 사후정보를 충실히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회계법인의 스팩상장 기업 외부평가 이력과 외부평가업무가 아닌 타 업무 수임내역 등도 증권신고서 공시항목으로 추가할 예정이다.
또한 내년 상반기 중 현재 쓰이는 현금흐름할인법 등 절대가치평가법 대신 상대가치 평가법을 적극 활용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상대가치는 유사기업의 재무지표와 주가를 비교해 기업가치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와 별도로 외부평가 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한 업계와 인식 공유에도 나섰다. 금감원은 지난 6일 회계법인과의 실무간담회에서 회계법인 자체적으로 엄격한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해 이해상충을 적절히 관리하는 등 평가업무의 객관성을 제고하고 투자자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금감원은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 개정, 상대가치 비교공시 활성화 등 제도개선을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또한 미래 영업실적 추정의 근거가 충분히 기재되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보는 등 심사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에도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정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