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 사태에 이어 기업공개(IPO) 시장에 대한 불신을 높이는 사례가 또 등장했다.
한국거래소는 최대주주 관련 분쟁 사실을 상장심사 과정에서 공개하지 않은 이노그리드의 상장 예비심사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코스닥 역사상 상장심사 승인을 받았다가 취소된 첫 사례다.
거래소와 감독당국은 규정 강화를 통해 재발 방지에 나서고 있지만, 이노그리드 사태에 소급 적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작년 파두 공동주관에 이어 이노그리드 단독주관을 맡은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책임론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거래소, 이노그리드 상장심사 승인 취소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노그리드는 지난 19일 남아있는 청약 등 상장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상장 예비심사 승인을 취소한 데 따른 것이다. 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지난 18일 이노그리드의 코스닥시장 상장 예비심사 승인 결과 효력을 불인정하기로 의결했다.
거래소가 문제 삼은 것은 이노그리드가 예비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최대주주 지위 분쟁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래소는 "상장예비심사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심사신청서의 거짓 기재 또는 중요사항 누락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첫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이노그리드는 최대주주 관련 분쟁이 있다는 사실을 증권신고서 6차 정정(5월 27일)에 이르러서야 밝혔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이노그리드의 과거 최대주주는 에스앤알이었지만 2019년 12월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김명진 현 대표이사로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이 과정과 관련해 에스엔알의 최대주주인 박모씨는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으며, 2021년 지분매각도 본인 동의 없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에스앤알이 이노그리드를 제3채무자로 설정해 증권사로부터 대출을 받았는데, 현재 법원으로부터 12억원 규모의 보통주 압류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거래소는 "최대주주 지위분쟁 관련 사항 누락으로 상장예비심사 단계에서 해당 사실을 심의할수 없었다"고 밝혔다.거래소, 재발방지 방안 검토... 주관사 책임론 불가피
거래소가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내줬다가 다시 효력을 취소한 건 1996년 코스닥시장이 개장한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여 재발방지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거래소는 이노그리드와 같은 '거짓 기재 및 중요사항 누락'시 상장예비심사 신청제한 기간을 1년에서 3~5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한 상장예비심사신청서 서식에 필수 기재사항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을 지양하고, 중요사실을 누락할 경우 제재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기로 했다.
이미 금감원에서는 파두사태 이후 주관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관사의 형식적인 기업실사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투자업규정 및 인수업무규정을 바꿔 주관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규정에 따라 실사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등 부실한 기업실사에 대한 제재근거도 마련한다. 다만 금융투자업규정 등은 3분기에 완료할 예정으로 이번 이노그리드 사태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상장 주관을 맡은 증권사도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작년 파두 사태로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금감원 특법사법경찰(특사경)의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파두 주관사 중 한 곳이었던 한국투자증권은 이번에 이노그리드의 단독주관사를 맡아 또한번 부실 실사 논란에 휩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