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시 중 하나가 바로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발행에 관한 내용인데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주요사항보고서(전환사채권발행결정)'이라는 제목의 공시가 뜨면 흔히들 "내가 투자한 기업이 사채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했구나"라고 생각하죠.
전환사채는 회사가 발행한 채권에 투자하면 일정기간 이자를 받다가 나중에 투자금액만큼 회사의 주식(신주)으로 바꿔갈 수 있는 주식연계채권이에요.
이때 주식으로 바꿔갈 수 있는 권리가 꼭 발행 당시에 투자한 채권자에게만 있는 건 아니에요. 주식을 발행한 회사가 돈을 갚고 채권을 다시 회수한 이후 자신들이 지정하는 특정인에게 채권을 넘겨줄 수도 있어요. 회사가 돈을 갚고 채권을 다시 사들이는 것을 '콜옵션(Call Option)'이라고 해요.
금융위는 지난 23일 전환사채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콜옵션 제도를 바꾸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사실 콜옵션을 바꾸는 게 당장 내가 투자한 회사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서 실제 공시사례를 통해 바뀌는 콜옵션 제도가 무엇인지 어떤 효과가 있을지 등을 짚어 볼게요.
콜옵션 행사 특혜 누가 받나
회사가 돈을 갚고 채권을 회수하는 것을 콜옵션이라고 했는데요. 콜옵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어요. 회사가 돈을 전부 갚고 채권을 회수할 수도 있고, 회사가 지정한 특정인에게 콜옵션 행사권을 넘길 수도 있어요.
▷관련공시: 에코프로 2021년 7월 28일 주요사항보고서(전환사채권발행결정)
에코프로가 지난 2021년 발행한 1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예요. 공시에서 '9-1.옵션에 관한 사항'에 콜옵션에 대한 내용이 있어요. 내용이 길지만 요약하면 회사 또는 회사가 지정하는 제3자가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다만 제3자가 콜옵션을 행사하면 채권금액의 40%(600억원)만 취득할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보통 회사가 지정하는 콜옵션 행사자는 회사의 최대주주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때 콜옵션 행사자로 정해진 최대주주는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회사 주식을 취득해 지분율을 높일 수 있어요.
전환사채의 이점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바꾼다는 점에서 채권자가 채권에 투자를 하는 건데요. 이런 식으로 최대주주의 지분율 확대에 전환사채를 악용하면 소액주주의 지분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최대주주만 이득을 얻는 구조가 되는 것이죠.
이 때문에 지난 2021년 금융위는 최대주주의 콜옵션 행사한도를 최대주주 본인의 지분율 이내로 제한하도록 제도를 바꿨어요.
특히 에코프로 전환사채의 콜옵션이 유명한 건 사실상 콜옵션 행사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었던 이동채 회장이 콜옵션 행사를 포기했기 때문이에요.
▷관련공시: 에코프로 2023년 4월 27일 전환사채(해외전환사채포함)발행후만기전사채취득
해당 공시는 회사가 600억원의 콜옵션을 행사했다는 내용이에요. 채권 취득금액은 605억원 가량으로 자회사 에코프로이노베이션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을 활용해 채권을 취득했다고 밝혔어요.
눈에 띄는 점은 콜옵션 행사자가 이동채 회장이 아닌 회사(에코프로)라는 점. 또 회사는 취득한 채권을 소각하겠다고 밝혔어요. 즉,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그대로 없애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회사는 이자를 더 얹어 600억원의 채권을 그냥 갚아버리면서, 잠재주식물량까지 지워버린 셈이에요.
어떻게든 지분율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확보하기 위해 콜옵션을 활용하는 최대주주들이 많은 상황에서 이동채 회장이 콜옵션을 받지 않은 점은 시장에서 상당한 이슈가 됐어요.
콜옵션 특혜, 누가 받는지 명확히
에코프로 같은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상장사, 특히 코스닥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전환사채에 담긴 콜옵션을 지분확대에 이용하고 있어요.
문제는 지분가치 하락이라는 손해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소액주주들은 정작 회사가 누구에게 콜옵션 특혜를 줄지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죠.
앞서 에코프로 공시에서도 전환사채 발행 당시 투자자들은 이동채 회장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지 정확히 누가 600억원의 채권을 가져가 주식을 전환을 할지는 공시로 알 수가 없었던 상황이죠.
▷관련공시: 레이저쎌 1월 23일 주요사항보고서(전환사채권발행결정)
지난달 23일 8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한 코스닥 상장사 레이저쎌의 공시예요. 마찬가지로 9-1.옵션에 관한 사항을 보면 콜옵션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요. 누구한테 콜옵션을 부여할지에 대한 내용은 없이 회사 또는 회사가 지정하는 자로만 적혀 있어요.
콜옵션 한도는 20%로 행사자로 지정된 사람은 80억원 중 16억원어치를 취득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데요. 전환가격 9707원(1월 31일 기준 레이저쎌 주가 1만16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레이저쎌 주식 16만4830주를 확보할 수 있어요.
만약 회사가 최대주주인 안건준 레이저쎌 대표(지분율 18.36%)를 콜옵션 행사자로 지정하면 자신의 지분율(14억6880만원)만큼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 15만1313주를 취득할 수 있어요. 현재 레이저쎌 총 발행주식수의 1.8%에 해당하고 지분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추가 취득할 수 있는 것이죠.
특정인이 콜옵션 행사로 인한 혜택이 받는 반면 다수의 일반주주는 손해(지분가치 하락)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회사가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콜옵션 행사자로 지정하는지 충분한 정보가 필요해요.
기업공시제도를 관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2022년 5월부터 제3자가 콜옵션을 행사하면 이를 주요사항보고서를 통해 공시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관련공시: 아이티센 2023년 7월 17일 주요사항보고서(제3자의전환사채매수선택권행사)
코스닥 상장사 아이티센이 올린 공시를 보면 굿센이라는 회사가 아이티센이 발행한 전환사채 44억2800만원에 대해 콜옵션 행사를 했다는 내용이에요.
다만 이 공시는 콜옵션 행사자를 이미 지정한 이후 해당자가 콜옵션을 행사하면 제출하는 공시예요. 따라서 다수의 일반투자자들은 회사가 특정인을 콜옵션 행사자로 지정할 당시에는 해당 정보를 알수 없고, 사후에 알 수 있는 상황인거죠.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콜옵션 행사자 지정 시 구체적인 행사자를 명시하도록 규정을 바꿀 계획이에요.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이 콜옵션 행사자를 지정하면 정확히 누구인지, 대가를 받았는지, 그 금액은 얼마인지를 적은 새로운 공시유형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