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회계사만 할 수 있었던 민간위탁 사업 회계감사 업무를 세무사에게도 열어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가운데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한공회는 최근 서울시의회가 민간위탁사무에 대한 회계 감사를 간이 검사로 변경한 사례를 두고 "정부 기조에 역행한다"고 날선 비판을 날리는 한편, 해외와 같이 정부로부터 위탁을 받았거나 정부보조금을 일정 수준 이상 받는 경우 외부감사를 반드시 받도록 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운열 한공회장은 1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회계현안 세미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민간위탁사업 결산에 대한 회계감사를 폐지하고 결산서 검사를 도입하는 조례 개정을 이뤘다"며 "이는 정부의 보조금 부정수급을 근절하기 위한 그동안의 관리, 감독 강화 기조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22년 서울시의회는 민간위탁사무에 대한 '회계감사'의 명칭을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변경하는 조례안을 의결했다. 원래 회계법인만 민간위탁사업비 감사가 가능했지만 세무사도 검사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열어준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행정안전부에선 해당 조례 개정안이 상위법 위반이라며 재의를 지시했으나, 해당 조례안은 시의회를 통과했다. 이후 서울시는 조례가 무효라며 대법원에 제소했다. 그 결과, 대법원은 지방의회의 재량권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서울시의회의 손을 들어줬다. 개정 조례안은 작년 10월부터 시행 중이다. 이 여파로 경기도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검사 주체를 확대하는 조례안이 발의되고 있다.
지자체 결산서 검사는 회계사가 재무제표를 사전 검증한 후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등으로 꾸려진 결산검사위원이 같이 합동으로 수행하고 있는 반면, 민간위탁결산서 검사는 사전 검증 과정이 없고 세무사 단독으로 할 수 있다. 이에 한공회는 회계감사보다 훨씬 간소한 절차만 거치므로 비영리·공공부문의 회계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린다고 우려를 표해왔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이번 조례안 개정으로 민간위탁사업 결산 감사를 사실상 세무사 뿐 아니라 재경관리사, 지방의회 의원 등에도 모두 열어줬다며, 이같은 간이 검사로는 사업비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업비 정산 감사가 증빙 확인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거래의 실체성과 수탁기관의 내부통계구조를 살펴야한다"며 "실수했거나, 속이기 쉬운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선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해외 사례를 제시하며, 미국·영국·캐나다·호주·일본에서는 일정규모 이상 비영리법인이거나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경우 회계감사를 의무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감사를 세무사가 할지, 회계사가 할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보다 책무성과 시스템이 중요하다"이라고 강조했다. 수탁자로서 납세자의 돈을 쓰고 이를 공정하게 보고해야 한다는 책무 의식, 비용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공회는 다시 지자체의 민간위탁사업비의 회계감사로 명확히 하기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한공회 산하 지역투명성위원회를 신설해 서울시 각 구에 조직을 꾸렸으며, 서울시 조례 재개정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에는 이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조례안이 상정돼 이달 중 다시 본회의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아울러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정부의 민간위탁사업 관련 회계감사가 세무사 등 다른 권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최 회장은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위탁사업이나 보조금이 어느정도 규모 이상이면 외부감사를 의무화하는 법을 발의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며 "지금은 법안이 없기 때문에 조례에서 여러가지 다툼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