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한국형 R&D(연구개발) 전략' 추진에 재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형 R&D 전략은 자체 개발한 개량·복합신약으로 얻은 수익을 혁신신약 R&D에 재투자하는 한미약품의 고유 사업 전략이다. 이 전략은 지난 2019~2020년 얀센과 사노피에 1조원대 금액에 이전한 후보물질을 연달아 반환받으며 잠시 흔들리는 듯 했으나 최근 R&D 투자금액이 늘고, 혁신신약 개발 성과가 하나둘 나오며 본궤도에 다시 진입한 모습이다.
개량·복합신약 매출 증가에 R&D 투자↑
2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지난 3분기 누적 매출액 1조원을 넘겼다. 전년 대비 9% 늘어난 1조685억원으로 개량·복합신약의 역할이 컸다.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액 상위 5개 제품 중 4개(로수젯·아모잘탄패밀리·에소페졸·한미탐스오디)가 개량신약으로 이들 의약품의 합산 매출액은 2363억원을 기록, 전체 매출 중 22%를 차지했다.
개량·복합신약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일부 성분이나 복용법, 제형 등을 개선한 제품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허가를 받은 개량·복합신약은 고혈압 치료제 '아모잘탄'이다.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칼슘채널차단제(CCB) 계열 '암로디핀'과 안지오덴신 II 수용체 길항제(ARB) 계열 '로잘탄'을 결합했다. 개량신약은 신약과 비교해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적고, 오리지널 약품의 특허를 피할 수 있어 제네릭의약품보다 한 발 빠른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
최근 한미약품의 효자 품목으로 떠오른 개량신약은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이다.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는 '로수바스타틴'과 소장에서 콜레스테롤 흡수를 억제하는 '에제티미브'를 결합한 약으로 2015년 국내에 출시했다. 그동안 주로 처방되던 이상지질혈증 단일제보다 뛰어난 치료효과를 입증하며 최근 3년간 연간 1000억원 규모의 판매 실적을 거두고 있다.
로수젯을 필두로 개량·복합신약의 매출이 가파르게 늘며 지난 2019~2020년 대규모 기술반환 여파로 주춤하던 R&D 투자금액도 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21년 R&D 투자금액은 전년 대비 약 30% 떨어진 1615억원을 기록했으나 이듬해 이 금액은 1779억원으로 10% 늘어났다. 올해 3분기 누적 R&D 투자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1% 증가한 1362억원이다. 기술반환 이후 감소하던 R&D 연구인력도 다시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600명을 넘었다. 한미약품과 계열사의 총 R&D 연구인력은 올해 3분기 총 627명으로 2018년 599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약 파이프라인 30여개…'비만관리' 집중
최근에는 '한국형 R&D 전략'의 결실인 혁신신약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한미가 2012년 미국 어썰티오(구 스펙트럼)에 기술수출한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성분명 에플라페그라스팀)'는 지난 2021년과 2022년 한국과 미국에서 차례로 허가를 받았다. 롤론티스는 작년 미국 출시 3개월 만에 매출액 1010만달러(130억원)를 기록했고 내년 연 매출액 1억달러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현재 한미약품은 비만대사, 항암, 희귀질환 등 30여 개의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비만대사 질환 파이프라인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9월 한미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미래 성장동력으로 '비만 관리'를 선정하고 차별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히면서다. 이른바 'H.O.P(Hanmi Obesity Pipeline)' 프로젝트다.
H.O.P 프로젝트의 주축은 현재 비만치료제로 국내 임상 3상을 밟고 있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작용제 계열 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다.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던 물질로 2015년 사노피에 기술수출한 이후 진행한 당뇨병 임상 3상에서 우수한 체중감소 효과를 확인한 바 있다.
H.O.P 프로젝트 외에 주목받는 한미약품의 또 다른 파이프라인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 '에피노페그듀타이드'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지난 2020년 글로벌 제약사 MSD에 라이선스아웃돼 MSD 주도로 글로벌 임상이 이뤄지고 있다. MSD가 지난 10월 공개한 글로벌 임상 2a상 중간 결과에서 대조약(세마글루타이드)보다 우수한 지방간 감소 효과를 확인하고 현재 임상 2b상에 돌입했다. NASH는 알코올 섭취와 무관하게 간에 지방이 쌓이는 질환으로 아직 국내외에서 허가받은 치료제가 없다.
달라진 시장 평가…"R&D 투자 확대할 것"
이처럼 한미약품의 한국형 R&D 전략이 다시 본궤도에 오르며 회사를 바라보는 시장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최근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주요 신용평가사는 한미약품의 신용등급(A)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꿨다. 이익 창출력이 우수하고, 주요 R&D 부문에서 성과가 나타나면서 신용등급이 올라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앞서 두 기관은 2019~2020년 기술반환 여파에 한미약품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춘 바 있다.
증권가도 한미약품의 기업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 하나증권 박재경 연구원은 "내년에는 로수젯 등 기존 주력 품목의 성장에 더불어 한미탐스오디 등의 신규 품목이 성장을 견인할 전망"이라며 "최근 호실적에 더불어 비만 적응증 신규 파이프라인이 추가되고 있어 긍정적인 주가 흐름을 전망한다"고 했다.
최근 한미약품은 R&D 센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신약개발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달 한미는 기존 바이오와 합성으로 이분화된 '한미약품 R&D 센터'를 질환 중심으로 재편했다. 미래 성장동력을 질환별로 세분화해 관련 역량을 집중하고 세포·유전자 치료제,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반 항암제 등 신규 연구과제 수행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건강보험제도 안에서 제네릭만으로도 사업을 영위해 나가는 데 큰 지장이 없던 시절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혁신신약 개발에 대한 동력이 생기기 어려웠다"며 "한미약품은 퍼스트제네릭에서 개량, 복합신약, 혁신신약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R&D 전략을 통해 혁신을 주도했고 이러한 전략은 신약개발에 도전하는 많은 기업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이프라인의 개발 단계에 따라 해마다 발생하는 R&D 비용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나 매년 연 매출액의 15~20% 수준을 R&D 분야에 꾸준히 투자할 계획"이라며 "최근 한미는 비만대사와 면역항암, 표적항암을 중심으로 한 질환별 연구팀을 새로 꾸렸고 기술의 융합과 시너지를 통해 R&D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