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하며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한미그룹이 통합에 대한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특히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코리그룹을 통해 진행 중인 사업을 에둘러 비판하며 고(故) 임성기 회장의 신약 개발에 대한 유지를 잇기 위해 OCI와의 통합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1일 한미그룹에 따르면 송영숙 회장은 최근 사내임원과 대화에서 "혁신신약 개발을 통해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한 한미의 확고한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이번 통합"이라고 설명했다. 두 아들이 이번 통합에 반대하는 것과 관련해선 "가슴 아픈 일이지만 100년 기업 한미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미그룹은 지난 2020년 8월 임성기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손주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도 공개했다. 당시 함께 있던 송영숙 회장이 메모로 남겼다고 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제약, 신약 R&D에 최선을 다하고, 많은 약들을 개발했지만 여전히 우리 인체는 풀지 못한 비밀이 너무나 많다. 이제 남은 너희들이 더욱 R&D에 매진해 그 비밀들을 풀어 나가라. 더 좋은 약, 신약을 만들거라. 너희들의 숙제이자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한미그룹은 "1개 프로젝트마다 10년 이상씩 소요되는 혁신신약 개발이 흔들림 없이 지속돼야 하며, 특정 개인의 즉흥적 경영 스타일에 한미의 R&D DNA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특히 "분유나 식품, 진단 사업 등이 아닌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의 핵심을 관통하는 '혁신신약 개발'만이 한미가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임종윤 사장이 코리그룹과 디엑스브이엑스(DXVX)를 통해 진행하는 사업이 창업주의 유지를 잇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미그룹은 상속세와 관련한 오너 일가의 고민이 이번 통합 결정의 배경이 됐다는 점도 털어놨다. 지분과 경영권 승계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성기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송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에 부과된 5400억원 규모의 상속세가 부담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송 회장의 가족은) 상속된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지난해 10월 3만원 이하로 하락한 시기 '선대 회장이 한평생 일군 한미그룹을 통째로 매각하는 상황까지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절박한 위기감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여러 해외 사모펀드들은 송 회장에게 현 주가의 2배가 넘는 금액을 제시하며 경영권 매각을 제안했다. 하지만 송 회장은 창업주의 유지를 잇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한미의 일방적 매각을 거부했다고 한다. 대안으로 택한 게 OCI와 통합이라는 설명이다.
장녀 임주현 사장도 상속세 재원 마련과 함께 아버지가 남긴 한미의 철학과 비전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송 회장과 깊이 논의했다고 한다. 임주현 사장은 지난 2015년 한미약품이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신약 라이선스 딜을 체결하는 과정을 임성기 회장과 함께 진행했다.
한미그룹은 "이 때 제시된 OCI와 통합안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한 송 회장의 결단으로 두 그룹의 통합이 급진전됐다"고 했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도 만장일치라는 의사 결정으로 힘을 실었다. 그 결과 나온 게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에 OCI홀딩스가, OCI홀딩스 1대 주주에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오르는 통합모델이다.
송 회장은 최근 임원 회의에서 "가족간의 이견이 다소 발생했지만 한미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은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며, 통합을 반대하는 두 아들도 결국 거시적 안목으로 이번 통합의 대의를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그룹의 정통성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송 회장은 "오직 'R&D'를 외치며 평생을 산 임성기 회장은 나의 오랜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다. 그가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말씀에 담긴 '한미의 비전'을 영원히 지켜내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