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텍(신약개발사)이 유도탄 항암제로 불리는 ADC(항체약물접합체) 치료제에서 폭약 역할을 하는 '페이로드(세포독성물질)'의 효능을 개선하는 데 힘쓰고 있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저분자화합물 기반의 항암제를 개발하는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리가켐바이오가 개발 중인 ADC 신약후보물질에 적용할 페이로드 등을 공동개발하기 위해서다.
이날 협약식에 참석한 김용주 리가켐바이오 대표는 "이번 협업으로 ADC에 적용 가능한 신규 기전(약물의 작용원리)의 페이로드와 병용 치료제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노바이오는 지난 7월 미국에서 열린 ADC 학회에서 자체 개발한 페이로드 'PBX-7'을 소개했다. 이 약물은 암세포의 분열을 촉진하고, 생존을 돕는 서로 다른 두 단백질(TOP1, 항사멸 단백질)을 동시에 억제하는 독특한 작용원리를 갖고 있다.
국내 바이오텍이 새로운 원리의 페이로드를 개발하는 이유는 기존 ADC 치료제의 약효와 안전성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페이로드로 가장 많이 쓰이는 물질은 TOP1(토포이소머라제1) 억제제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개발한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 길리어드의 유방암치료제 '트로델비' 등에 적용돼 암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현재 네덜란드 ADC 전문기업인 시나픽스의 링커와 TOP1 페이로드에 자체 개발한 이중항체를 결합한 ADC를 개발 중이다. 회사 측은 이미 검증을 마친 TOP1를 사용하는 게 기술이전 등에 유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7월 열린 기관투자자 기업설명회에서 이상훈 대표는 "최근 만난 존슨앤드존슨 사업개발(BD) 담당자가 본인들이 ADC를 도입하려면 페이로드가 임상에서 검증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이런 이유로 시나픽스를 파트너사로 정한 것을 좋은 선택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TOP1은 여러 임상연구에서 검증된 물질이지만 여전히 안전성 등에서 개선이 필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엔허투와 트로델비는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시험에서 중증(3등급) 이상의 부작용 발생비율이 각각 52%, 51%로 나타났다.
특히 엔허투는 심각한 간질성폐질환 등이 발생할 위험이 커 의약품설명서에 이를 경고하는 문구가 붙기도 했다.
피노바이오는 자체 개발한 PBX-7 페이로드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페이로드는 TOP1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저해해 관련 부작용을 줄였고 동시에 항사멸 단백질의 발현을 억제해 항암효과를 극대화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전임상 시험에서 피노바이오는 엔허투와 똑같은 항체, 링커에 이 페이로드를 적용한 약물을 투약했고 TOP1을 쓴 엔허투보다 종양억제 효과와 안전성이 개선된 것을 확인했다
새로운 페이로드는 엔허투나 트로델비 등 기존 ADC 약물에 내성을 가진 환자들에게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도 기대된다.
리가켐바이오가 지난해 존슨앤드존슨에 기술이전한 'LCB84'는 세포분열을 직접 억제하는 MMAE라는 페이로드를 쓰는데, 전임상시험에서 TOP1 페이로드가 접목된 트로델비에 반응하지 않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 효과를 나타냈다.
조현용 피노바이오 최고과학책임자(전무)는 "엔허투에서 페이로드만 저희 것으로 바꾼 약물이 전임상에서 약효와 안전성을 확연하게 개선했다"며 "항체나 링커도 중요하지만 페이로드만 바꿔도 ADC의 효능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