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나 노화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지연시켜 암이나 감염병 등 노년기 질환을 비껴간다면 어떨까. 지아이이노베이션, 셀룰러리티 등 국내외 바이오 기업들이 이러한 '항노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암 치료에 쓰이는 면역항암제를 활용해 노화를 지연시키는 치료제를 만들고 있다. 즉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 우리 몸이 염증, 조직 손상 등을 일으키는 노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만큼 항노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들 기업의 개발 성패에 관심이 모인다.
NK세포로 노화세포 잡는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지아이노베이션은 현재 호주에서 노화를 지연시키는 항노화 치료 후보물질의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약물은 지아이이노베이션이 개발 중인 면역항암제 'GI-102'의 용량을 낮춘 약물과 지아이바이옴의 마이크로바이옴(장내유익균) 치료제 'GIB-7'로 구성 돼있다.
이번 임상은 지아이이노베이션이 참여한 미국 엑스프라이즈재단의 항노화 치료법 경진대회인 '엑스프라이즈 헬스스팬'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최근 이 대회에서 GI-102와 GIB-7 병용요법을 활용한 노화지연 전략을 발표해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 진출 기업은 재단의 지원을 받아 약 1년간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결승 진출 여부가 결정된다. 최종 우승기업에게는 1000억원 규모의 상금이 수여된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이 면역항암제를 항노화제로 활용하는 이유는 면역세포가 체내 노화세포를 인식하고 제거하는 메커니즘(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노화세포는 세포 분열이 중단됐지만 죽지 않고 체내에 남아있는 세포를 말한다. 이들은 염증성 물질을 분비해 주변 조직손상을 유발한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노화세포를 제거한다. 하지만 노화로 인해 면역기능이 저하되면 노화세포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축적돼 오히려 노화를 촉진한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암 환자 7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GI-102의 임상시험에서 항노화제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약물을 고용량이 아닌 저용량으로 투여했을 때 면역세포인 T세포보다 NK(자연살해)세포의 분비가 현저히 증가되는 효과가 관찰되면서다.
NK세포는 우리 몸에서 선천면역을 담당하는 면역세포로 T세포와 비교해 부작용 위험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부작용이 T세포보다 적다는 것이다. 아울러 '블러드', '에이징' 등의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연구에서 NK세포는 동물실험에서 노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해 노화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아이이노베이션 관계자는 "GI-102의 NK세포 증강 효과를 활용해 항노화제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미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안전성을 확인했으며, 이보다 더 낮은 용량을 투여하기 때문에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 '한 번' 맞는 항노화제 개발도
해외에서는 나스닥 상장 바이오기업인 셀룰러리티가 NK세포를 활용한 항노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달 셀룰러리티는 현재 혈액암 치료제로 개발 중인 'CYNK-001'가 임상시험에서 노화세포를 제거하고 면역세포를 젊게 만드는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최근에는 NK세포보다 더 강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T세포를 활용한 항노화 치료제를 개발하는 전략도 주목받고 있다. T세포는 한 번 인식한 노화세포를 기억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공격하는 능력이 있다. 장기적인 항노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지점이다.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CSHL) 연구팀은 지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이징'에 노화세포의 특정 부위에 결합하는 CAR-T(키메릭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제를 소개했다. 연구팀은 쥐에게 이 약물을 투여했고 실제로 노화 진행이 지연된 결과를 확인했다.
CAR-T 치료제는 단 한 번의 투여로 혈액암 완치가 가능해 흔히 '꿈의 항암제'로 불린다. 만약 CAR-T 치료제가 항노화제로 개발되면 단 한 번의 투여로 장기적인 항노화 효과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 연구진은 "T세포는 일반 약물과 달리 체내에 오래 머물며 주어진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며 "어린 나이에 한 번만 사용해도 평생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항노화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면역 기능 저하와 만성 염증을 유발하는 노화세포를 제거해, 암이나 감염병 등 노년기 질환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보건기구(WHO)는 지난 2018년부터 노화를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으로 공식 분류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유럽 등의 주요 국가가 인구고령화를 겪으면서 항노화 시장은 지속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특히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항노화 치료제 시장은 2024년 7억9100만달러(1조1000억원)에서 연평균 17.6% 성장해 2031년 24억7000만달러(3조4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