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까지 감감무소식이더니 올 초부터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건설과 플랜트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따냈고, 상반기까지 수주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들도 여럿 남아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유가가 안정되면 꾸준히 발주가 이뤄지는 시장이라 놓칠 수 없는 지역으로 꼽는다. 특히 과거와 달리 FEED(기본설계) 등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수주해 발주처와의 신뢰를 높이고, 향후 EPC(설계‧조달‧시공) 수주 가능성도 높이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올 들어 해외수주는 현대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주도하고 있다. 두 건설사가 수주한 프로젝트만 5개, 6조원이 넘는 규모다.
눈에 띄는 점은 주요 수주지역이 중동과 아프리카 등 국내 건설사들의 옛 수주 텃밭이라는 점이다. 총 5개 프로젝트 가운데 현대건설이 수주한 싱가포르 풍골 스포츠센터를 제외하면 카타르와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프로젝트를 따냈다.
현대건설의 경우, 카타르에서는 '루사일 플라자 타워 PLOT 3‧4'를 연이어 수주하며 건축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보였다. 알제리 '우마쉐 복합화력 발전소'는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함께 수주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주력인 플랜트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보였다. 알제리에서 1조9000억원 규모의 정유 플랜트 프로젝트를 따냈고, 최근에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로부터 2조1000억원 규모의 가스 저장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2018년 이후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아프리카 지역 대신 아시아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가파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서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수주(10월 기준) 가운데 아시아 지역은 전체의 59.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중동은 24.4%에 머물며 비중이 줄고 있다. 중동에서는 무리한 저가수주의 여파로 2010년대 초반 대규모 부실 사업장이 다수 발생, 대형 건설사들이 휘청한 경험이 있어 보수적인 수주 전략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유가 장기화 여파로 중동에서 플랜트 발주가 줄어든 것도 이 지역 수주가 감소한 원인이다.
하지만 중동은 국내 건설사들이 모래바람을 일으켰던 지역이자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강점을 보유한 곳이다. 최근에는 유가도 상향 안정화되면서 플랜트를 중심으로 발주가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아직 존재하고 있음에도 국내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실제 향후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가 기대되는 주요 프로젝트도 중동에 집중돼있다. 업계에서는 사우디 'Jafurah 가스 플랜트'와 카타르 '노스필드 가스플랜트' 등에서 수주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손태홍 건설산업연구원 미래기술전략연구실 실장은 "중동은 석유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 한 플랜트를 중심으로 국내 건설사들이 지속적으로 수주에 나서야 할 '집토끼'같은 시장"이라며 "올해도 MENA(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1000억달러 이상의 발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보수적인 수주 전략을 유지하는 가운데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기술력 보완을 통해 선진국 건설사들이 주로 맡았던 기본설계 분야 등에 진출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해 발주처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본 프로젝트인 EPC까지 수주하는 전략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은 꾸준히 발주가 나오는 곳이자 국내 건설사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지역"이라며 "최근 수주한 프로젝트들도 약 2년 전부터 계획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EPC를 수주하는데만 몰두했다면 최근에는 기술력 강화를 통해 기본설계부터 수주에 참여하고 있다"며 "이는 EPC 수주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손실 없이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손태홍 실장은 "중동 시장에서 수주를 늘리기 위해서는 기본설계 기술력을 갖춘 미국과 영국 등 기업을 인수하거나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의 방법으로 중동 수주에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