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부쩍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미분양 공포'라는 말인데요. 건설사들이 새집을 지으면서 집주인을 찾으려 해도 최근 매수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실제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1만 7000가구에서 최근 3만 가구를 넘어서며 증가세가 가파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일각에서는 절대적인 규모만큼은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미분양 주택 규모는 어느 정도의 위험 수위에 있는 걸까요. 이 흐름대로라면 과거 미분양이 폭증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처럼 곳곳에 빈집이 쌓이면서 가격이 지속해 떨어지는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서게 되는 걸까요.
미분양 3.2만 가구…정부 "심각하게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국내 미분양 주택은 3만 2722가구를 기록했는데요. 지난해 말 1만7710가구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미분양 가구는 수요가 많은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늘고 있는데요. 서울의 경우 지난해 말 54가구에서 8월 말 610가구로 빠르게 늘었습니다. 수도권도 같은 기간 1509가구에서 5012가구로 급증했고요.
이와 관련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도 미분양과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새집으로 입주하지 못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미분양은 주택가격의 선행지표로 여겨지는데요. 미분양이 늘면 집값도 뒤따라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최근 집값이 뚝뚝 떨어지고 있기도 하죠. 이에 따라 내집 마련을 하려는 수요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꼽힙니다.
2008년 미분양 16만 가구 '폭증'…악재 겹쳐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미분양 주택 규모가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미분양이 빠르게 늘고 있는 흐름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는 분석인데요. 하지만 절대적인 수치 자체는 '불황'이라고 단언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우리나라 미분양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지난 2008년에는 미분양 주택이 무려 16만5000가구까지 증가한 바 있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지금의 3만2000가구는 5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니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긴 합니다.
당시 미분양 주택은 2006년에 이미 7만3000가구에 달하며 위기감이 고조된 분위기였습니다. 집값이 급등했던 데다가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수요가 줄었던 탓인데요.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저마다 미분양 해소 TF팀을 구성하거나 중개업소에 건당 수천만원 수준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여러 '악재(?)'가 겹치기까지 했는데요.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한다고 발표하자 건설사들이 제도 시행 전에 분양하겠다며 급하게 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명박 정권에서는 150만 가구 규모의 보금자리주택 정책이 발표됐습니다.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이 쏟아진다니 당장의 수요는 더욱 급격하게 줄었고요. 여기에 금융위기까지 터지면서 미분양 주택 규모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됐습니다. 결국 부동산 시장의 장기 불황이 이어졌고요.
가팔라진 증가세 우려…"수도권 주요 단지 주시해야"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국내 미분양 주택 규모가 단기간에 지난 2008년 수준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특히 서울의 경우 과거와는 다르게 물량을 쏟아낼 여지도 크지 않고요. 무엇보다 당시처럼 악재가 한꺼번에 겹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아직 그 정도 수준을 걱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안심할 수만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악재가 겹쳤던 지난 2008년을 기준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주택 불황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전국 미분양 가구 기준으로 5만~6만가구가량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5만 가구라는 기준이 특정한 공식에 의해서 나온 건 아닙니다. 다만 그간 경험적으로 이 정도 수준 이상이 되면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를 기준으로 여긴다는 설명인데요.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그동안의 국내 미분양 주택 가구 수의 평균치가 6만 가구 정도였다"며 "통상 이를 넘으면 부동산 시장이 본격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이 규모가 되면 미분양이 본격적으로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요.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시장에 저렴한 신축 주택이 5만~6만 가구 이상 쌓이기 시작하면 가격적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신축조차 안 팔리니 인근 구축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로 갈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3만2000가구가 마냥 안심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008년에 비해서는 현저히 규모가 작긴 하지만 '5만 가구'라는 위험 수준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고 원장은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미분양이 전국 기준으로 5만~6만 가구를 넘어서면 부동산 경기가 더 나빠질 거로 예상할 수 있다"며 "지금은 당장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은 맞지만 최근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는 흐름 자체를 일단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향후 수도권 미분양이 더욱 늘어나고, 서울 핵심지 등에서 미분양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위험 수준을 명백하게 넘어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 초 분양 예정인 둔촌주공 등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인데요.
윤 수석연구원은 "현재 수도권에서 5000가구 정도의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는데 수도권 가구 규모 등을 고려하면 많은 수준은 아니다"며 "아직은 주로 외곽 지역의 입지가 좋지 않은 곳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앞으로 둔촌 주공을 비롯한 서울과 수도권 주요 단지에서 미분양이 늘기 시작하느냐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