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무주택자를 위한 '장기전세주택'의 앞날이 안갯속입니다. 2027년부터 의무 임대 기한(20년)이 돌아오는 가운데 아직까지도 그 이후의 정책 방향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서울시가 입주자들의 '최장 20년 거주'를 보장하겠다고 밝히긴 했는데요. 모집공고에도 정확히 표기 안 돼 있는 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매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해 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과연 장기전세주택이 계속해서 무주택자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장기전세주택, 목 빠져라 기다리는 이유
최근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를 보면 장기전세주택 공급 및 당첨을 바라보는 예비 임차인들의 기대가 뜨겁습니다.
장기전세주택은 지난 2007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도입한 공공임대주택으로, 무주택자 사이에서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그동안 저소득 서민층에 월세로 내주던 임대주택을 중산층에 전세로 공급해 내 집 마련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전세보증금을 주변 시세의 80% 수준으로 책정하고 2년에 한 번씩 재계약할 때도 연 상승률 5% 이내로 제한해 일반 전세에 비해 비용 부담이 적고요.
임대 기간도 최장 20년으로 설정했습니다. 주택의 개념을 '소유'에서 '거주'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담아 브랜드 이름도 '시프트'(Shift)로 붙였고요.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중대형 평형까지 공급해 3~4인 가구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데요. 실제로 일반공급 가점(37점 만점)도 자녀 등 부양 가족이 많을 수록 점수가 오르는 구조고요.
입주 후에도 청약통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장기전세주택에 살면서 신축 아파트 청약도 가능합니다. '소셜믹스'를 적용해 임대주택 동을 따로 두지 않아 차별도 비교적 덜하죠.
장기전세주택이 지금까지 인기를 잃지 않는 이유인데요. 최근엔 집값과 전셋값이 모두 오른 데다 전세사기 공포까지 확산하면서 장기전세의 경쟁력이 더 커지는 모습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월별중위전세가격은 지난해 내내 5억원대를 유지하다가 12월 4억원대(4억9350만원)로 주저앉았는데요. 이후 쭉 내리는가 싶더니 올해 6월(4억3900만원)부터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10월엔 4억5100만원까지 올랐습니다.
한때 중위전세가격 10억원을 돌파했던 서초구나 강남구도 여전히 8억원을 넘고요. 이에 시세보다 저렴한 장기전세주택에 살면서 목돈을 모아 향후 자가 마련을 노리는 수요가 많습니다.
실제로 반포동에서 '평당 1억원 아파트'로 유명한 아크로리버파크는 이달 전용 59㎡ 전세가 14억원에 거래됐는데요. 웬만한 서울 집값보다도 비싼 수준이죠. 장기전세주택을 이용하면 같은 평형의 전세를 '반값' 수준인 7억원 중반대로 거주할 수 있습니다.
'최장 20년' 보장 된다고?
이렇다 보니 장기전세주택의 당첨은 '바늘 구멍' 수준인데요. 수요자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 예비 임차인들의 애가 타고 있습니다.
강동길 서울시의회 의원이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장기전세주택 공급 물량(사업시행인가 기준)은 1924가구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올해 목표치인 1만4666가구의 13.1% 수준이죠.
어렵게 당첨이 된다 해도 '장기' 거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용면적 60㎡ 이하는 전년도 도시 근로자 가구원수별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100% 이하여야 하는데요. 이는 2023년 2인 기준으로 약 500만원입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거나 소득이 올라 해당 기준을 넘어서면 금액에 따라 할증이 되거나 재계약이 안 됩니다. 거주하는 동안엔 소득 수준을 일정하게 맞춰야 하는 셈이죠.
소셜 믹스의 기능도 불안합니다. 일부 단지에선 장기전세주택 모집 공고에 해당 동을 표기해 임대주택 거주자를 알아보기도 했는데요. 아직도 차별을 당해 당첨을 포기했거나 이사를 하게 됐다는 사례가 종종 나옵니다.
가장 혼란스러운 건 임대 기한입니다. 장기전세주택은 '최장 20년 거주' 할 수 있다며 주거 안정성을 강조해왔는데요.
입주자 모집공고에는 '장기전세주택은 해당 주택의 법정 임대의무기간(20년)으로 거주기한이 제한될 수 있다'고 표기돼 있는데요.
임대의무 기간이 '준공 후 20년'이라는 점에서 혼란이 왔습니다. 가령 2007년 준공한 아파트에 2023년 입주하면 4년 뒤에 짐을 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우려가 나온건데요.
서울시 관계자는 "물건을 기준으로 한 의무 임대 기간이 준공 후 20년일 뿐 입주자는 최장 20년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된다"고 말했습니다. 2023년 입주한다고 해도 최장 2043년까지 거주를 보장해주겠다는 거죠.
하지만 변수는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장기전세주택을 매각해 발생하는 30조원의 재원을 임대주택 고급화에 쓰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고요. 재건축 연한(30년)이 지난 이후의 상황도 불투명하거든요.
당장 2027년이면 장기전세주택의 임대 기한이 도래하기 시작하는 만큼 로드맵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진미윤 LH토지주택연구원 정책지원단장은 "물량도 적은데 제도의 갱신도 없이 정책 수명이 20년으로 끝난다면 주거 사다리의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분양 전환을 통해 임차인에서 자가거주자로 넘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거나 통합공공임대 등 다른 유형으로 갈아타게 하는 등 임대 기한 만료 후의 정책을 검토해야 할 때"라며 "늦지 않게 로드맵을 제시해야 임차인 또는 예비 임차인들이 주거 계획을 세우고 불안하지 않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후화된 임대주택에 대한 재건축, 재정비 방안 등에 대해 어떤 방향이 유리한지 다각적으로 보고 있다"며 "장기전세뿐만 아니라 영구임대 등 임대주택 전반적으로 방향성을 잡히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장기전세는 맞벌이 소득 기준 등에 대해서도 국토부와 지속적으로 개선 협의중"이라며 "임대 의무 기간이 27년 만료돼서 거주자 또는 예비 입주자들이 혼란이 올 수 있으니 조만간 (대책 등을) 정리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