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지난해 말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아파트를 매입했다. 허가를 받기 위해 거주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유를 소명하고 당시 살고 있던 보유주택 처분이행계획서도 꼼꼼히 썼다. 구청에서 토지거래허가가 나 이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실거주 2년, 기존 주택 1년 내 처분이라는 숙제를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잠실로 이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토허구역 해제 소식을 들었다. 구청에 물으니 실거주와 기존 주택 처분 의무도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1개월가량 지나 송파구 아파트 전체가 다시 토허구역으로 묶였다. A씨는 다시 실거주 의무가 생긴 건지, 기존 주택도 빨리 처분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졌다.

서울시가 지난 2월12일 강남, 송파구의 토허구역 일부를 해제한 후 한 달여 만에 강남·송파·서초·용산구 전체 아파트를 토허구역으로 묶으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약 2200개 단지, 40만가구가 대상이다.
A씨처럼 갓 토허구역으로 이사온 사람뿐만이 아니다. 토허구역으로 지정된 아파트로 이사를 준비 중이었거나, 매수·매도를 계획했던 당사자에 더해 토허제에 기반한 거래 경험이 없는 부동산중개업소까지 거래 절차, 조건 등을 확인하기에 정신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구마다 조건이 달라 주의가 필요하다. 토허구역 허가권자가 각 구청장이라서다. 지자체별 기존 보유주택처분이행 시기, 점검 및 조치사항 등도 차이가 있어 혼란은 더 가중되고 있다.
'잠·삼·대·청' 종전 의무는 소멸되지만…
우선 토허구역 확대지정 발효시점인 지난 24일이 되기 전 계약을 맺은 토허구역 아파트 매수자라면 실거주나 기존주택 처분 등의 의무를 적용받지 않는다.
A씨처럼 종전 토허구역 지정상태일 때 잠실·삼성·대치·청담 일대 아파트 291개 단지를 매수한 집주인의 경우 애초에는 허가 조건 의무를 지켜야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 2월 토허구역이 해제될 때 모두 소급해 소멸됐다. 이용(실거주) 의무 2년과 기한 내 기존 주택 처분 의무 등이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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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토지관리과 관계자는 "2월 토허구역 해제 시점에 이용의무가 사라졌고, 3월 다시 해당 아파트가 지정됐다고 해도 기존 계약자라면 의무는 소멸된 것"이며 "하지만 지난 24일 이후 계약 건부터는 의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같은 강남구라도 압구정동 재건축 추진 단지 상황은 다르다. 압구정 현대 등 일대 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지난 2월 토허구역 해제 때 제외됐다. 이번 확대 지정에도 실질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에 줄곧 토허제 효력이 유지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곳 매수를 위해서는 실거주와 기존주택 처분 등에 대한 강남구청 허가 조건을 지켜야 한다.
강남 3구와 용산구 모든 아파트는 오는 9월30일까지 토허구역으로 묶여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가 불가능하고, 2년간의 실거주 의무를 져야 한다. 압구정동은 오는 4월26일 기존 토허구역 지정 만료를 앞두고 있지만 재지정이 확실시된다. 실거주 등 허가 조건 역시 유지된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내달 중으로 도시계획위원회 전체 회의를 열고 재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강남·송파 1년, 서초·용산 4개월
새롭게 지정된 토허구역 아파트를 매수해 이사할 경우 각 구청에 기존 주택 처분 일정 확인도 필요하다. 각 지자체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 주택 처분 이행 시기는 강남구와 송파구는 1년, 서초구와 용산구는 이보다 짧은 4개월로 두고 있다. 기한을 넘길 경우 구청이 판단해 취득가액의 최대 10%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통상 양도소득세의 경우 '일시적 2주택' 비과세 혜택을 최대 3년까지 누릴 수 있지만 토허구역에 집을 살 경우 4개월~1년으로 기한이 줄어드는 셈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중개업소를 통한 계약, 잔금을 치르기까지 3개월 정도로 보고 수리 기간을 감안해 최대 4개월로 기한을 두고 있다"면서"짧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않고 이용의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 철저히 관리하려 한다"고 말했다.
서초구도 기한이 4개월이지만 추가적인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처분 기한은 4개월이지만 리모델링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처분기한이 늦어질 경우 2개월을 더해 최대 6개월까지 기한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몰려드는 민원·문의에 지자체 혼란
한편 일부 지자체에서는 처분기한 등을 어길 경우 이행명령 및 이행강제금 부과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한 곳도 있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기존에는 토허구역이 아파트 2곳뿐이어서 처분조건 등을 어긴 경우가 없어 이행강제금 부과 기준 등을 명확히 정해 놓지 않았다"며 "앞으로 어떤 사례가 들어오는지 상황을 보고 논의해 유동적으로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토허구역 확대지정으로 수요자들뿐 아니라 지자체 역시 혼란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민원과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어 대응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토허구역 지정권자가 국토부장관, 서울시장이다 보니 구 단위에서는 내용도 모른 채 갑자기 토허구역으로 지정됐다"면서 "하루에도 문의 전화와 민원 전화가 끊이지 않아 전화만으로 하루가 다 간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인력이 한정적인데 구 전체 아파트로 지정구역이 넓어지면서 해당 업무가 크게 늘었다"면서 "인력충원도 쉽지 않아 업무부담이 크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갑자기 토허구역이 확대되면서 기존 보유주택 처분이행 시기, 처분여부 점검 시기, 처분 기한을 넘겼을 경우 조치 등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논의 중에 있다"면서 "구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는데 아직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어 문의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혼란이 발생하자 국토교통부에서 통일된 지침(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구청 관계자는 "토허구역 신청이 얼마나 늘어날지 이후 구별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국토부에서 통일된 지침을 만들고 있고 그 안에서 개별 구청별로 이행을 진행하려고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