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면세점 신규특허 신청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면세점 전쟁에 뛰어든 대기업들의 사외이사 면면도 주목받고 있다.
면세점 유치가 올해 재계를 달굴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유통공룡으로 불리는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들도 사활을 걸고 전쟁에 뛰어든 상황, 사외이사들은 오너의 독단 경영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위해 외부에서 영입됐지만 실제로는 거수기나 방패막이,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회사의 명운이 걸린 면세전쟁에 이들이 동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후보기업의 경우 면세점 특허권을 좌우하는 관세청의 전직 수장들도 사외이사로 포진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접수마감과 함께 ‘2차전’으로 꼽히는 '로비전'에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29일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보면 대기업 부문 2개 신규특허에 도전장을 낸 7곳의 기업(컨소시엄) 중 전직 관세청 고위관료를 자사 및 계열사 사외이사로 둔 기업은 4곳에 달한다.
호텔신라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현대산업개발은 관세청장과 금융감독원장 겸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김용덕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또 SK네트웍스는 지난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관세청장과 재정경제부(現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낸 허용석 삼일경영연구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들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신세계의 경우 주력계열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관세청 고위 관료출신을 영입해 놓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사외이사인 박창언 관세법인 씨티엘앤파트너스 회장은 관세청 감사관과 대구본부세관장을 지냈다. 호텔롯데 역시 다른 상장계열사에서 관세청 고위직 출신이 눈에 띈다. 롯데그룹의 코스닥 상장계열인 현대정보기술의 사외이사인 손병조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관세청 차장을 지냈다.
신규면세점 특허권을 결정짓는 특허심사위원회는 민간 전문가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지만 나머지 절반은 관료들이 전담하게 돼 있다. 특히 특허심사위원회 위원장은 관세청 통관지원국장이 맡게 돼 있고, 그 아래의 수출입물류과장이 위원회 간사를 맡는다.
관세청장은 위원장과 간사의 직속 상사이고, 면세점 신규특허 공고권자이기도 하다.
전직 고위관료들이 현직 관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 차제가 ‘전관예우’차원의 문제로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그동안의 전례를 감안할 때 소속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사안에서 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어느때 보다 크다.
실제 롯데 계열 사외이사로 있는 손병조 태평양 고문의 경우 사상 최대 관세소송이었던 디아지오코리아의 관세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관세청 차장 퇴임 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취업했는데, 공교롭게도 태평양이 디아지오코리아의 소송대리인이 됐다. 과세결정권자로 수천억원을 과세해 놓고 퇴임 후에는 과세불복을 위해 힘쓴 모양새가 됐다. 결국 법원이 조정에 나서면서 디아지오코리아의 세금은 절반으로 삭감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박창언 사외이사는 관세청 9급으로 입사해 고위공무원에 올라 내부에서는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안팎으로 영향력 행사를 기대할 수도 있다.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신규면세점 특허를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신세계뿐만 아니라 이번 신규면세점 특허에 대한 각 그룹사 오너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점은 사외이사들을 직·간접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전 계열사가 나서서 유치전을 펼치고 있는 만큼 사외이사라고 해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관세청 고위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워낙 많이 관심을 갖고 있고,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 청장에서부터 아래 조직까지 로비 압박이 상당할 것”이라며 “관세청에서도 공정성을 최대의 가치로 생각하고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