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는 언제, 어떤 기업에서 주로 발생할까. 2012년 8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분식회계에 대한 투자자 주의정보에 따르면 분식회계가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은 ‘횡령’과 ‘배임’ 혐의가 있는 기업이다.
회삿돈을 빼돌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을 다른 부문에서 억지로 돌리거나 있지도 않은 허위매출로 조작하는 식의 서류 가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표이사가 개인의 이익과 연관된 기업에 회사자금을 돌려서 결과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해치는 배임 역시 마찬가지다.
# 사장님을 위해서라면 없던 거래도 만든다
서원아이앤비(現 유아이에너지)라는 코스닥상장사는 과거 대표이사의 회사자금 편법 인출사실을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를 했다. 2002년부터 2년 동안 허위 세금계산서 발부를 통한 매입매출 허위계상은 물론 실제로 구입한 적도 없는 기계를 구입한 것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표이사를 위해 허위로 회계처리한 금액은 71억원에 달했다.
서원아이앤비는 분식회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외부감사를 나온 회계사에게 허위로 작성된 채권조회서를 마치 매출처에서 회수한 것처럼 제시하는 등 외부감사를 방해한 혐의도 적용받았다.
2005년에 적발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프리셋(아이디씨텍)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활용해 13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대표이사 등이 유용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11월에 적발된 맥시스템은 대표이사가 횡령, 부당인출한 금액을 대여금으로 허위처리했다가 감독당국에 적발됐다.
울트라건설은 대표이사가 회사 예금을 제3자배정 유상증자 대금으로 사용한 후 회사예금을 담보로 차입해 돌려막기식으로 입금했는데 회계처리에는 이를 고의로 누락했다. 이후 회사어음을 할인한 자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면서도 거래처에 빌려준 돈처럼 회계처리했다.
전현직 대표이사가 4명이나 무더기로 연루된 분식회계도 있었다. 코어비트라는 소프트웨어개발 업체는 2008년부터 2년간 300억원에 가까운 지분법적용 투자주식을 허위계상하고, 85억원의 선급금 허위계상, 20억원의 영업권 부풀리기, 29억원의 부채축소 등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모두 전직 혹은 현직 대표이사 4명의 횡령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 “나의 횡령을 알리지 마라”
허위로 세금계산서를 발부하고 없던 거래까지 만들어서 숨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때도 있다. 때로는 공시 자체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분식회계를 숨겼다. 거짓으로도 처리하기가 곤란하니 아예 관련 사실이 없는 것처럼 꾸미는 방법이다. 주로 대표이사, 최대주주 등 특수관계자가 관여한 거래를 숨겼다.
2005년 이후 감독당국에 분식회계 사실이 적발된 241개 상장 기업에서 74건의 주석공시 미기재 사례가 확인됐다. 이 중 특수관계자와의 직접적인 거래내역을 공시에 기재하지 않은 사례만 39건에 달하며 최대주주와의 거래사실을 공시하지 않은 사례도 5건이 확인됐다.
한글과컴퓨터는 2008년 당시 전 대표이사의 횡령과 관련해 120억원의 자금대여거래 사실을 공시에서 누락했고, 관련해 미수금과 매출채권 36억원 상당도 공시하지 않았다. 당시 횡령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백종진 한글과컴퓨터 회장은 결국 2010년 대법원에서 징역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 제작업체인 스톰이앤에프는 2010년 대표이사의 개인채무 때문에 27억여원의 연대보증을 섰지만 재무제표 주석에는 이 정보를 누락했다. 최근에는 도시광산업체인 금성테크가 대표이사 횡령을 분식회계로 숨긴 사실이 적발됐다. 금성테크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대표이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다른 기업에 회사 자금 150억원을 송금했지만 공시하지 않고 대손충당금도 과소계상했다.
대기업 외부감사 경험이 많은 대형회계법인 출신의 회계사는 "외부감사가 기업이 작성한 자료를 기초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주석 누락 등 작성 자체를 하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며 "한국의 공시시스템에서 주석은 정말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지만 그만큼 숨길 수 있는 여지도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 결국 쇠고랑으로 연결되는 분식회계
대표이사의 횡령은 회사의 재무구조를 엉망으로 만들고 심할 경우 상장폐지까지 가는 상황을 불러오지만 회사의 손해만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본인들 역시 사안의 경중에 따라 해임권고는 물론 검찰에 통보 및 고발 조치돼 사법처리 수순을 밟는다.
분식회계 적발 상장기업 241곳 중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대표이사 해임권고를 받은 기업은 절반이 넘는 134곳(55.6%)에 달했다.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수준인 ‘검찰통보’ 조치기업은 61곳이었고, 사실상의 사법처리 단계인 기소의견을 구하는 ‘검찰고발’ 조치 기업도 82곳에 달했다. 복합적인 다양한 분식회계로 대표이사에 대한 검찰통보와 고발조치를 함께 받은 기업도 14곳이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