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름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습니다.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가격은 25일 기준 1689원으로 1년 전보다 81원 올랐는데요. 이렇게 기름값이 비쌌던 적은 2015년 이후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서민들의 기름값 부담을 덜어줄 목적으로 유류세 인하방안을 내놨습니다. 11월6일부터 6개월간 유류세를 15% 내리기로 했는데요. 소비자들은 휘발유와 경유, LPG부탄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됩니다.
유류세는 10년 전 고유가 시절에도 정부가 한시적으로 내린 적이 있었는데요. 유류세는 어떻게 낮추는지, 실제 가격인하 폭은 어느 정도인지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 유류세는 정부가 고친다
유류세는 정부가 '탄력세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국회 입법을 거치지 않고도 내리거나 올릴 수 있습니다. 국무회의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시행령만 고치면 즉시 시행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유류세'는 실제 세목 이름이 아닙니다. 유류세는 휘발유나 경유에 부과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주행세, 교육세, 부가가치세를 합쳐서 부르는 말입니다. 결국 유류세를 내린다는 건 이들 세목에 부과되고 있는 세금 부담을 줄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결정할 사안은 교통에너지환경세 탄력세율밖에 없습니다. 시행령(제3조의2)에서 휘발유와 경유에 대한 탄력세율을 리터당 얼마라고 정해놓으면 끝입니다. 나머지 주행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는 모두 교통에너지환경세에 연동해 부과하기 때문에 따로 고칠 필요가 없는 겁니다.
# 유류세 얼마씩 내나
유류세의 근간이 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는 법정세액이 정해져 있습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제2조)을 보면 휘발유는 리터당 475원, 경유는 리터당 340원이라고 나와있는데요.
실제로는 주유소에서 휘발유나 경유를 구매할 때 법에 명시된대로 세금을 부과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법정세율의 30% 범위 내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법정세율이 100원이라면 정부는 탄력세율을 적용해 70원으로 내릴 수도 있고 130원으로 올릴 수도 있는 겁니다.
현재 시행령에 따라 부과된 휘발유 세율은 리터당 529원, 경유는 리터당 375원입니다. 법정세액과 비교하면 휘발유는 11%의 세율이 추가됐고 경유는 10%를 더 받고 있는 셈이죠.
또한 교통에너지환경세의 26%는 주행세로 추가되고 15%는 교육세로 붙게 됩니다. 휘발유는 주행세로 137.54원(529원의 26%), 교육세로 79.35원(529원의 15%)이 추가되는 겁니다. 여기서 걷은 주행세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이 되고 교육세는 국세청이 걷는 국세입니다.
휘발유에 붙는 교통세와 교육세, 주행세를 모두 합치면 리터당 745.89원이 되는데요. 공급가액의 10%인 부가가치세를 감안하면 898.97원의 세금을 내게 됩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경유는 리터당 664.01원을 유류세로 낸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현재 휘발유 평균가격 1689원과 비교하면 유류세 비중이 53%, 경유는 평균가격 1494원의 44% 수준이 유류세입니다.
# 유류세 15% 내린다면
정부는 10년 전이었던 2008년 3월부터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내릴 당시 10%의 인하율을 적용됐는데요.
원래 휘발유의 교통세와 교육세, 주행세의 합계 세액이 745원이었는데 유류세 10% 인하 발표 이후 670원으로 75원 내려갔습니다. 또한 2009년부터 유류세가 다시 10% 인상될 때도 75원 올라 745원이 됐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역산해보면 정부가 유류세를 15% 내릴 경우 휘발유 교통세는 450원, 교육세는 68원, 주행세는 117원이며 이를 모두 합친 유류세는 635원입니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유류세 746원(부가세 제외)보다 정확히 111원(15%) 줄어드는 셈이죠. 여기에 부가가치세 10%인 11원을 포함하면 리터당 유류세가 약 123원 감소하게 됩니다.
경유는 유류세를 15% 인하할 경우 교통세 탄력세율 319원, 교육세 48원, 주행세 83원을 포함해 450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보다 79원이 줄어들게 되는데 부가가치세(8원)를 포함하면 리터당 약 87원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당장 유류세를 15% 내린다면 주유소에서 휘발유 50리터(8만4450원)를 구입할 경우 6150원의 유류세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경유를 50리터(7만4700원) 넣을 때는 4350원의 할인 효과가 생기게 됩니다.
# 왜 지금 내릴까
유류세 인하의 표면적 이유는 '고유가'로 인해 생활비가 늘어나는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섭니다.
하지만 유류세를 내리면 서민·중산층만 혜택을 보는 게 아니죠. 고소득층은 고급 승용차를 이용해 더 많은 휘발유를 사용하고 난방용 기름도 아낌없이 사용하는데요. 실제로 한국지방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는 서민층보다 부유층이 6.3배나 더 크게 효과를 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번 유류세 인하 카드는 10월 중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인도네시아 출장 도중에 갑자기 나온 발언입니다. 유류세 인하는 실효성 논란이 많기 때문에 국내에서 충분히 검토한 뒤에 발표해도 될텐데 굳이 해외에서 서둘러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세수 초과 달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0년 전에도 5년간 연평균 2조7000억원의 세수 초과를 기록해 유류세를 내릴 여력이 충분했습니다.
최근에도 정부는 2015년부터 3년 연속 세입예산보다 세금을 더 많이 걷었고 올해 상반기에만 19조원의 세수를 초과해서 징수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예상보다 많이 걷은 세금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10월 기재부와 국세청 국정감사에서도 세수 초과에 대해 집중적인 추궁이 이어졌는데요.
유류세 인하는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세금을 돌려줄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부총리의 발언 이후 10일 만에 방안이 만들어지고 20일 만에 시행되는데요. 이를 통해 세수 초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10년 전 실패한 정책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연간 유류세 수입은 26조원 수준입니다. 유류세 10% 인하 조치가 시행되면 해마다 2조6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들게 되는데요. 실제로 10년 전 유류세수가 20조원 수준일 때도 정확히 2조원의 세수가 줄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류세 인하 정책은 2조원의 세수를 투입하고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2008년 3월10일 유류세를 인하한 후 휘발유와 경유는 각각 40일과 10일 만에 소비자가격이 인하 전보다 더 올랐습니다.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정부의 유류세 인하 정책이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지지 않은 겁니다.
이듬해였던 2009년 국정감사에서도 기재부는 정책 실패를 인정했는데요. 당시 기재부는 "세수감소 효과는 컸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소비자가격 인하 효과는 크지 않았다"며 "유류세를 추가로 인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번 유류세 인하는 10년 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게 정부의 시각입니다. 국제유가가 2008년처럼 단기간에 급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고 2012년 도입한 알뜰주유소로 인해 주유소들의 가격경쟁이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가 실제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도록 매일 모니터링하고 정유사와 주유소의 가격 담합도 실시간으로 감시할 계획입니다. 10년 전보다 한층 강화된 유류세 인하 조치가 이번에는 소비자에게 체감 효과로 나타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