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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신세계는 왜 차명주식 고백했을까

  • 2015.11.11(수) 17:41

10년 전에도 발견된 차명주식, 그 땐 덮었고 이번엔 자진공시

 

신세계그룹은 지난 6일 이명희 회장이 신세계·이마트·신세계푸드 차명주식 총 38만주를 실명으로 전환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일 종가를 적용하면 시가 약 830억원에 달하는 주식입니다. 이 회장의 차명주식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었죠. 올해 5월부터 시작한 국세청 조사에서 총수 일가의 차명주식 1000억원어치가 발견됐다는 야당의원(김기식 의원)의 주장이 나왔습니다.

신세계 내부에선 이번 기회에 털고 가자는 생각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세계는 "이번에 남아있던 주식 전부를 실명 전환키로 함에 따라 차명주식은 단 1주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 10년전과 닮은 꼴

이와 비슷한 일이 약 1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2006년 2월이었습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들이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신세계백화점에 들이닥칩니다. 신세계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법인세를 제대로 냈는지 조사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들은 두달간의 조사과정에서 이 회장의 차명주식을 확인합니다. 그러고는 이 차명주식에 2억2000만원의 증여세를 부과했죠.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두달간 조사한 결과 치고는 허무한 성과였지만 당시 국세청의 목표는 이 회장의 차명주식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그해 9월 정용진·정유경 남매가 7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물려받으면서 그 절반을 증여세로 내기로 한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세청은 '실리'를, 신세계는 '명분'을 택한 것 아닐까요? 그해말 정용진 부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습니다.

 

◇ 그땐 덮으려 했다

이렇게 묻혀지던 차명주식의 존재는 이듬해 10월 갑작스럽게 터져나옵니다. 당시 감사원의 서울지방국세청 감사결과가 공개됐는데요. 감사원은 서울지방국세청이 '☆☆☆'의 차명주식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할 때 시가가 아니라 액면가를 기준으로 해 33억원을 덜 걷었다는 내용의 감사결과를 공개합니다. 별표로 가려진 이름이 이명희 회장이었다는 건 국정감사(심상정 의원)에서 드러났고요. 신세계로선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난 겁니다. 당시 언론보도에는 신세계그룹 관계자의 해명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미부과됐던 증여세를 이미 모두 해결했고 차명계좌 주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내야 할 증여세는 모두 내겠다고 밝힌 것을 순수하게 이해해 달라" (머니투데이, 신세계 '1조 증여' 차명주식 곤혹, 2007.10.23)

 

이번 차명주식건도 '국세청 조사→차명주식 확인→국정감사 논란→신세계 해명'으로 이어지는 판박이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와 다른 것은 신세계가 이번에는 '그간 차명주식을 보유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실명전환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부분은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 사라진 차명주식

다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국세청이 이 회장의 차명주식 존재를 확인한 뒤에도 이 회장의 신세계 지분율은 1년 넘게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 회장이 상당기간 실명전환을 하지 않았거나 맡겨놓은 주식을 팔아 현금화했던 게 아닌가 추정됩니다.

실제 이 회장은 2007년 7~8월 약 1000억원을 들여 신세계 주식 16만주를 장내매수했는데요. 이 사실을 공시하면서 취득자금의 원천 중 하나로 거론한 게 '투자자산처분'이었습니다. 이 회장이 뭔가를 팔아서 주식을 샀다는 건데, 무엇을 판 것인지는 지금껏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그때 판 것이 혹시 차명주식은 아니었을까요? 그랬다면 차명주식을 티나지 않게 실명으로 바꾸는 효과가 있을테니까요. 어쨌거나 당시 신세계는 차명주식을 드러내기보다 덮는데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이 민감한 시점에…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신세계는 국세청 조사가 끝나는 시점(4일)에 맞춰 이 회장의 차명주식을 공개했습니다. 그러고는 "더는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신세계 관계자는 "조용히 넘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실명전환) 공시를 한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물론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기 때문에 차명주식의 존재를 부인하기 어려웠던 측면도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신세계가 차명주식을 시인하는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차명주식의 존재를 인정한 시점이 면세점 심사를 불과 1주일 앞둔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 꼬리잡힌 수백억

이 회장의 차명주식은 꽤 오래전부터 내려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 내려왔던 것"이라고 하더군요. 차명주식은 명의를 빌린 사람과 빌려준 사람만 아는 일이라 밖에서는 누가 진짜 주인인지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2006년과 올해 국세청이 이 회장의 차명주식을 확인한 건 그 흔적을 찾았기 때문일텐데요.

아마도 퇴임임원이 갖고 있던 거액의 주식이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추정됩니다. 2006년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들어가기 한두해 전 신세계 대표이사급 임원 2명이 퇴임했습니다. 당시 이들이 갖고 있던 주식은 시가로 300억원이 넘었습니다. 월급쟁이 주머니에서 나왔다고 보기에는 너무 큰 금액의 주식이죠?

◇ "선대회장 때부터…"


이번에도 비슷했습니다. 구학서·석강·이경상 등 전 경영진들이 퇴임할 때 보유했던 신세계 주식은 시가로 약 900억원에 달했습니다. 이 주식의 뿌리를 캐다보면 1990년대로 올라갑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로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은 1998년말인데요. 당시 구학서 부사장은 2만5570주, 석강 전무는 5만2593주, 이경상 상무는 7만143주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감사원이 2007년 발표한 감사결과를 보면 2006년 서울지방국세청이 발견한 차명주식에는 이름을 빌려준 임원들이 두 차례의 주식배당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신세계가 주주들에게 주식배당을 한 것은 1996년과 2001년입니다.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이 회장의 차명주식은 최소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신세계가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1997년)하기 전 발생한 일이라는 거죠. 그간 차명주식을 맡아뒀던 임원들은 삼성그룹의 우산 아래에 있을 때 이미 임원을 달았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 '올드보이'는 가고

눈에 띄는 점은 2000년대 중반 이후입니다. 과거처럼 몇만주나 되는 주식을 보유한 신세계 임원들이 별로 없습니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대표를 맡고 있는 장재영 대표는 281주, 이마트 이갑수 대표는 597주의 주식을 보유 중입니다. 그룹 전략실을 맡고 있는 김해성 사장은 신세계와 이마트 주식이 단 한 주도 없습니다. 과거 이 회장의 차명주식을 맡아왔던 이들이 1990년대초 임원을 단 '올드 보이'들이었다면 현재 그룹경영을 맡고 있는 이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두각을 나타낸 '젊은 피'들입니다. 신세계그룹이 이번에 차명주식을 공개하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이러한 인적교체가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 새 술은 새 부대에  

또하나 얘길하면, 통상적인 지분공시는 지분변동이 발생한 뒤 5영업일 이내에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차명주식은 공시위반 상태가 장기간 지속된 것이라 이 같은 보고기한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직 국세청으로부터 증여세 부과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버티면 한두달 정도는 시간을 더 벌 수도 있었고요. 눈앞에 닥친 면세점 심사만 생각했다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덮었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문제를 해결하는 고전적 수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번 차명주식은 신세계그룹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랄까요. 물론 진통은 따를 겁니다. 면세점을 손에 넣지 못하면 그 책임론을 뒤집어 쓸 수도 있고요. 그렇더라도 이미 결단을 내린 이상 되돌릴 순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신세계가 거듭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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