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결국 중국 가전 시장에서 백기를 들었다. TV와 생활가전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반도체·모바일 중심으로 사업 축을 다시 짜는 대수술에 들어간 것이다. 한때 중국 프리미엄 가전 시장의 상징이었던 삼성전자가 현지 업체들의 저가·물량 공세와 기술 추격을 버티지 못하고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도 속도도 밀렸다" 현지 냉혹 평가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현지 임직원과 유통 채널, 협력사 등을 대상으로 TV·생활가전 판매 중단 방침을 공식 통보했다. 대상 품목은 TV와 모니터를 비롯해 냉장고·세탁기·건조기·에어컨·청소기·공기청정기·프로젝터·오디오 등 사실상 대부분의 생활가전 제품군이다. 다만 스마트폰·반도체·의료기기 사업은 유지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6일 중국 공식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신중한 검토 끝에 중국 본토 시장서 TV와 모니터를 포함한 모든 가전제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 제품 구매 고객에 대해서는 소비자권익보호법과 국가 품질보증 규정 등에 따라 정상적인 사후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판매 중단 이후에도 AS 조직과 고객 상담 채널, 공식 인증 서비스센터는 그대로 운영된다. 설치 서비스와 유상 수리 역시 기존 정책을 유지한다. 삼성전자는 "AS 품질 체계와 서비스 기준도 이전과 동일하게 운영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정은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미래 성장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중국 내 판매 사업은 접지만 생산기지와 연구개발(R&D) 거점은 유지한다. 쑤저우 가전 공장과 시안·쑤저우 반도체 공장은 계속 운영하고, 모바일과 생활가전·TV 관련 기술 연구도 이어갈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중국 철수를 사실상 예고된 수순으로 보고 있다. 중국 TV·가전 시장은 이미 하이센스·TCL·샤오미·하이얼·메이디 등 현지 업체들이 장악한 상태다. 이들 기업은 정부 보조금 정책과 거대한 내수 시장, 강력한 공급망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실제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이구환신(以旧换新)' 정책을 통해 약 3000억위안(약 64조원) 규모 재정을 투입하며 가전 교체 수요를 끌어올렸다. 고효율 제품 구매 시 최대 20%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시장 전체가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중국 가전 소매 시장 규모는 1조위안을 넘어섰고 주요 가전 상장사 대부분이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존재감은 급격히 약해졌다. 시장조사업체 AVC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달 5일까지 중국 오프라인 채널 판매액 기준 삼성전자 점유율은 △TV 3.62% △냉장고 0.41% △세탁기 0.38% 등에 그쳤다. 순위는 각각 5위·14위·15위였다. 한때 중국 프리미엄 TV 시장을 상징했던 위상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하드웨어에서 'AI·서비스'로…삼성의 방향 전환
중국 현지 매체들의 평가는 더욱 냉정했다. 현지에서는 삼성전자 철수를 두고 "가격은 못 맞추고, 고급 시장은 지키지 못했고, 속도는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미니 LED TV 같은 차세대 제품에서도 TCL·하이센스 등이 먼저 대중화에 성공한 반면 삼성전자는 고가 전략을 유지하다 시장 대응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LCD 패널 사업에서 철수한 뒤 중국 패널 업체 의존도가 높아진 점도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젊은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외산 브랜드 선호 현상마저 옅어지면서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전략이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대신 모바일과 반도체 중심으로 중국 전략을 재편할 계획이다. 모바일 사업은 '갤럭시 AI'를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집중한다. 중국 특화 모델인 '심계천하(W시리즈)'를 지속 출시하고 현지 AI 기업들과의 협업도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중국 철수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가전 사업 전반에서 추진 중인 구조조정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말레이시아 가전 공장 폐쇄를 결정, 일부 제품군에 대해서는 OEM·ODM 확대도 검토 중이다. 식기세척기와 전자레인지 등 일부 생산라인 외주화 역시 추진하고 있다.
인적 쇄신도 병행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일 TV 사업을 담당하는 VD사업부장에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인 이원진 사장을 임명했다. 기존 엔지니어 출신인 용석우 사장은 DX부문장 보좌역으로 이동했다. 국내 판매 조직에 대한 경영진단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하드웨어 중심 사업 구조를 소프트웨어·서비스·AI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가전 시장은 이제 단순 가격 경쟁을 넘어 공급망·유통·브랜드·기술 전반이 현지 업체 중심으로 재편된 구조"라며 "삼성전자로서는 낮은 점유율 경쟁을 이어가기보다 수익성이 높은 핵심 사업과 미래 투자에 역량을 집중하는 쪽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