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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 유지와 한국제강의 `악연(惡緣)`

  • 2016.08.30(화) 18:21

한국제강 오너 일가 주식 55만1000주, 유지들이 차명보유
실명전환 늦어 증여세 77억원 부과..오너 일가도 연대납세의무
억울하다며 불복했지만 1심서 패소..법원 "묵시적 동의 의심"

경남 함안지역 유지들이 향토기업 한국제강 오너 일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가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유지들은 이름만 빌려줬지만 실명전환이 장기간 이뤄지지 않으면서 실제 지분을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돼 증여세를 부과받았다. 유지들이 주식을 원래 주인인 오너 일가족에게 돌려준 지 3년이 지나도록 실명전환(명의개서)이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 탈세혐의가 되어 발목을 잡았다.

 

오너 일가족이 주식을 돌려받으며 주식가치를 후하게 쳐주고, 유지들이 낼 증권거래세 등 세금까지 대신 내주면서 유지들은 오히려 묵시적으로 탈세를 도운 입장이 됐다.

 

지역 유지들의 이름으로 남몰래 회사 지분을 관리하고 있던 한국제강 오너 일가족도 증여세를 피하지 못했다. 하성식 한국제강 대표 등 오너일가와 함안지역 유지들에게 부과된 세금은 모두 77억여원. 이들은 억울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조세회피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패소했다.

 

30일 서울행정법원은 한국제강 하성식 회장 일가족과 함안군 주민 등 38명이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증여세 부과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에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고 밝혔다.

 

 
# 한국제강은 어떻게 향토기업이 됐나
 
한국제강은 지금은 고인이 된 하계진씨(2004년 사망)가 1960년에 설립한 한국금속공업사에서 출발했다. 이후 1987년에 한국주강, 1990년에 한국제강, 1998년 한국정밀기계로 쪼개졌다. 
 
한국제강은 2013년 12월 그룹 지주사격인 한국홀딩스와 분리됐고 한국주강은 1997년 유가증권시장에, 한국정밀기계는 2009년 코스닥시장에 각각 상장됐다. 한국중기계, 한국스틸, 한국카이코 등의 계열사도 갖고 있는 명실상부 중견기업이다. 
 
주력회사와 계열사들 모두 본사와 공장들을 함안에 두고 있어서 군단위인 지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수준이다. 상장사인 한국주강의 지난해 매출만 355억원이다.
 
하계진 창립자는 딸 하나와 아들 셋을 뒀는데 세 아들 중 첫째인 하성식씨가 한국제강을, 둘째 하종식씨가 한국정밀기계를, 셋째인 하경식씨(2013년 사망)가 한국주강을 각각 나눠가졌으며 맏딸인 하경자씨는 한국정밀기계, 한국주강 등 계열사의 대주주다. 특히 하성식씨는 2010년 지방선거 때 함안군수에 당선될 정도로 지역기반이 두텁다.
 
# 오너 일가 차명주식 덮어주던 지역 유지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비상장사인 한국제강의 주식이다. 하성식 한국제강 대표, 하종식 한국정밀기계 대표, 하경식[사망 후 자녀 하만규(한국주강 대표), 하만우가 보유] 전 한국주강 대표와 하경자씨의 자녀 김동재, 김동조씨 등 5명은 한국제강 주식 55만1000주를 1997년부터 차명으로 보유했다.
 
이들에게 이름을 빌려 준 사람들은 대부분 함안지역 유지들인데, 함안군의회 의장을 지낸 사람이 둘이나 포함됐고 함안 라이온스클럽 회장, 함안 예총 회장, 함안 청실회 회장, 함안 육상연맹 회장, 함안 등산연합회 회장, 함안 해남장학재단 이사장 등 상당수가 지역사회 단체를 이끌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55만1000주의 한국제강 주식을 1999년~2006년 사이에 원래의 주인인 하성식 대표 일가에 양도했는데 하 대표 일가 중 그 누구도 주식 매입에 따른 명의개서를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됐다.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는 명의신탁주식은 명의신탁을 해지하고 원래부터 내거였다는 사실을 공개(명의환원)하면 명의환원에 따른 증여세는 내지 않아도 되는데, 이 절차가 없으면 세금을 고의적으로 회피했다는 조세회피 혐의가 적용돼 차명 자체를 증여로 보고 세금을 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국세청은 2013년 11월~2014년 2월 한국제강(2013년 12월 한국홀딩스로 계열분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후, 지역 유지들에게는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차명보유 당시에 실제 증여 받은 것으로 간주해서 77억7490만원의 증여세를 부과하고, 실제 주식의 주인인 한국제강 오너 일가에는 연대납세의무를 부여해 같은 세금을 책임지도록 했다.
 
# 억울하다는 유지들..법원 "오히려 공조 의심"
 
연대납세 의무로 모두에게 세금이 떨어지자 주식을 넘겨주고, 이름을 빌려주던 인정 많던 관계는 틀어졌다.
 
법정에 선 함안지역 유지들은 명의개서를 하지 않은 것이 명의신탁 약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성식 대표 등 한국제강 오너 일가의 일방적인 행위 때문이기에 명의신탁에 따른 증여로 간주해서 이름을 빌려준 자신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유지들은 하 대표 일가에게 주식 매매대금 송금증, 인감증명서 등 명의개서에 필요한 서류 일체를 전달했지만 당시 부도 후 화의절차에 들어갔던 회사 사정상 화의절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두려워한 오너 일가가 명의개서를 지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제강은 1998년 4월에 부도처리 됐고, 곧바로 법원 화의절차가 진행됐다. 화의종결 시점은 2007년 9월이다.
 
하지만 법원은 "과세관청은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르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되며, 명의개서 지연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행위로 이뤄졌다는 증명은 명의자가 해야 한다"며 "양도인(함안지역 주민들)의 주장은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잘랐다.
 
법원은 또 "회사가 화의절차에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양수인(하 대표 일가)이 액면가로 매입해줬고, 양도인들이 부담해야 할 증권거래세도 양수인들이 부담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양도인들이 명의개서 지연을 묵시적으로 동의하거나 승인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사정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하성식 대표 등 오너 일가가 함안 유지들의 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한 것은 양도가 마무리된 지 3년 후인 2009년이다. 함안군에 취득세 및 농어촌 특별세를 납부하고, 함안 유지들이 부담할 증권거래세를 대납한 것도 이때였다.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하성식 대표가 함안군수로 당선되기 1년 전에 차명주식에 대한 모든 정리가 이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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