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이 지난 2일 긴급 소집된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화상회의'를 통해 만났다. 선대부터 75년간 동업 관계를 이어온 두 가문이 동지에서 적으로 돌아선 뒤 다시 대면한 것이다.
지난 2일 고려아연 본사 그랑서울 15층에서 열린 이사회에선 13명의 이사진 중 11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엔 이사회 의장을 맡은 최 회장과 그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 고문도 화상회의로 참석했다. 화상회의로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는 장 고문이 유일했다.
최 회장은 이사회에서 영풍과 한국기업투자홀딩스(MBK파트너스 특수목적법인)의 적대적·약탈적 M&A에 대해 반대하고 자기주식 공개매수 안건을 설명했다. 장 고문 면전에서 영풍을 약탈적 M&A 회사로 규정한 것이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 규모는 320만9009주(15.5%)다. 주당 매수가는 83만원으로 총 2조6635억원어치다. 여기에 고려아연의 우호세력인 베인케피탈의 특수목적법인(TROIKA DRIVE INVESTMENT)이 고려아연 자사주 51만7582주(2.5%)를 인수한다.
이사회에서 고려아연은 자사주 매입을 위해 쓸 수 있는 자금은 6조987억원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향후 '쩐의 전쟁'이 가열될 경우 자사주 매입에 더 많은 자금을 풀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로 사들인 자사주는 전량 소각하겠다는 점도 이사회에서 확정했다.
이날 이사진들은 자사주 공개매수와 소각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토의했다. 이례적으로 자사주 공개매수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장 고문은 자사주 취득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자사주 매입 한도인 배당가능이익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하지만 최 회장이 자사주 공개매수와 소각에 대해 승인을 제의하자, 출석 이사 11명 중 10명이 찬성했다. 반대한 이사는 장 고문이 유일했다.
이날 오전 9시에 시작된 이사회는 오전 11시12분에 끝났다. 이사회 직후 영풍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 절차를 중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사외이사 6명에 대해선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달 한 언론인터뷰에서 장 고문은 최 회장과 2~3달전에 마지막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는 자사주 취득 안건이 상정된 지난 5월 고려아연 이사회로 보인다. 당시에도 장 고문은 이사진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지난달 영풍이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나선뒤 처음으로 두 사람이 만났지만 화해의 기미는 보이지 않은 셈이다.
이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 회장은 '영풍 측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유가 무엇이 됐던 MBK와 연합해 적대적 M&A를 한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면 좋은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며 "다만 영풍이 고려아연 지분 25%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75% 주주의 이익을 해하더라도 도와야한다는 건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