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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관리의 삼성 그리고 회계기준

  • 2018.06.10(일) 15:30

IFRS, GAAP 대비 해석의 여지 큰 회계기준
삼성, IFRS 최고결정기구에 자금·사람 투입

국제적으로 회계기준은 크게 GAAP(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와 IFRS(국제회계기준) 두 가지로 나뉜다. 

 

회계분야에선 GAAP가 야구라면 IFRS는 축구라는 말이 있다. 경우의 수까지 고려해 구체적이고 다양한 규칙을 정해둔 야구와는 달리 몇 가지 원칙만 정해 두고 심판에게 해석을 맡긴 축구의 특징에서 비롯된 비유다.

 

실제로 기준서가 2만5000페이지를 넘어서는 GAAP와 달리 IFRS는 3000페이지가 채 안 된다. 그래서 IFRS에서 뛰는 회계 전문가들은 스스로 남은 페이지를 채워야 한다.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IFRS 회계기준은 IFRS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이 정한다. 국내에선 IFRS를 도입한 2007년부터 민간기구인 한국회계기준위원회(KASB)가 그 역할의 일부를 위임받아 수행하고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직접 분식회계를 잡아내고 처벌하는 금융당국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런만큼 KASB 구성 위원은 엄격하게 선발해야 한다. 일반적으론 회계학계와 업계에서 인정받은 인물 중에서 주로 연차가 높은 회계학 박사나 한국공인회계사들이 이 자리를 차지한다. 일반 기업 출신도 가끔 있긴 하지만 기업들은 회계감리 대상인 만큼 그 수가 제한적이다. 

◇ 한국부터 영국까지 회계분야도 '관리의 삼성'

 

그런데 오래 전부터 이 자리 중 상당수를 삼성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1999년 회계기준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2002년 9월 기업인 최초 KASB 위원이 삼성전자 전무였다.


지난해 외감법 개정으로 최근 비상임위원 자리가 2석 늘었는데, 최근 김동욱 삼성전자 재경팀 경리그룹장 전무가 한자리를 꿰찼다. 김 전무는 KASB 위원 중 유일하게 회계학 박사나 공인회계사 자격이 없는데도 관련 경력을 인정받았다. 과거 교보생명과 STX 등 기업 출신 KASB 위원의 경우 회계분야 박사 소지자거나 공인회계사였다.

 


삼성은 IASB를 통제하는 국제회계기준재단(IFRSF)의 국내 최대 기부사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금융감독원과 함께 지난 2007년부터 작년까지 IFRSF에 6억원 이상 지원했다.
 
한국은 IFRSF 10대 지원국 중 하나인데, 삼성전자는 한국회계기준원, 금감원과 함께 늘 상위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작년엔 국내에서 총 51만8288파운드(한화 약 7억4600만원)를 지원했는데 여기에 자금을 댄 17개사 중 8개사가 삼성 계열사였다.
 
지난해 9월에는 박정현 삼성생명 경영지원실 재경팀 수석이 AISB에서 새로운 보험계약 회계기준 이슈를 운영하는 전문가그룹인 IASB 보험 TRG 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2008년 한국회계기준원 연구위원으로 초빙된 박 위원은 전 세계 보험 전문가 15인으로 구성된 보험 TRG의 유일한 한국인 위원이 됐다.   
 
◇ 우연의 일치 거듭되면 의혹 생길 수밖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 혐의로 감리위원회를 거쳐 증권선물위원회의 심의를 받고 있다. 회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삼성을 향한 대중의 눈초리엔 의혹이 가득하다. 고의적 분식회계를 넘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까지 연관해 보는 사람이 적잖다. 
 
삼성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시선의 배경엔 반복되는 '우연의 일치'가 자리 잡고 있다. 하필이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직전 바뀐 상장 규정이나 공교롭게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이 맞물린 해 단행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변경 등이다.
 
축구에서도 공교로운 판정이 거듭되면 심판을 의심하는 건 자연스럽다. 특정기관 출신의 심판이 유독 많다거나, 특정기관에서 유독 자금을 많이 댄 사실이 드러날 경우 더욱 그렇다.
 
축구는 야구보다 심판의 역할이 더 엄중하게 요구되는 스포츠다. IFRS에서 뛰는 국내 회계 전문가들이 과거 GAAP 시대와는 달리 더 투철한 직업적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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