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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셋]이베리코 ③왜 열풍인가

  • 2019.03.04(월) 10:23

정부, 소고기 대채제로 적극 육성…대량 생산·유통
일률적 사육 맛 평준화…'색다른' 이베리코에 열광

당신이 궁금한 이슈를 핀셋처럼 콕 집어 설명해드립니다. 이번 주제는 최근 새로운 외식 메뉴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베리코 흑돼지입니다. 기존에 즐겨왔던 돼지고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자랑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베리코 흑돼지의 모든 것을 정리해봤습니다.[편집자]

한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특별합니다. 아마도 소고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만나볼 수 있어서일 겁니다. 돼지고기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인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증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970년 한국인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2.6㎏에 불과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 2017년에는 24.5㎏까지 늘었습니다. 2017년 한국인들의 1인당 전체 육류소비량이 49.1㎏이었음을 고려하면 절반가량이 돼지고기인 셈입니다. 우리 국민의 돼지고기 사랑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돼지를 키우기 시작한 건 상당히 오래됐습니다. 가장 오랜 기록은 중국 진(晉)나라 초기에 진수(陳壽)가 엮은 사서(史書)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등장합니다. 당시 고구려에 대해 기술한 부분에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며'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우리 민족이 돼지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쯤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돼지고기들은 우리 선조들이 키워왔던 돼지가 아닙니다.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돼지는 YLD가 대부분입니다. YLD는 요크셔, 랜드레이스, 듀록을 교배한 삼원교배종입니다. 네, 외국 품종들을 교배한 겁니다. 흔히 돼지하면 떠올리는 하얗고 큰 그 돼지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국내 흑돈 종자로 만든 한국형 버크셔인 '버크셔K'와 같은 품종도 나오고는 있습니다.

돼지 사육의 역사는 길지만 지금처럼 돼지고기를 흔하게 접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정부는 부족한 소고기의 대체재로 양돈사업을 적극 권장합니다. 이에 따라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양돈사업에 착수했고, 그 결과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때부터 돼지고기의 대량 유통은 물론 햄 등 돼지고기 가공 식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돼지고기 사육 방식은 재래식이었습니다. 유통기술도 부족했죠. 당시에는 사료로 사람의 '인분(人糞)'을 먹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인분에 있던 기생충이 돼지고기를 섭취하는 과정에서 다시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또 냉장기술 부족으로 유통과정에서 변질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돼지고기는 바짝 익혀 먹어야 한다'는 통설이 상식처럼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이런 트렌드는 바뀌기 시작합니다. 국내 양돈사업에 과학적인 사육기법이 도입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를 잡기 위한 작업이 진행됐고, 사료도 잔반이나 인분이 아닌 옥수수 사료 등을 먹이기 시작하면서 돼지고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소비자들은 외식 메뉴로 돼지고기를 꼽았고, 지갑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또 이때부터 삼겹살이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돼지고기는 저렴한 가격에 육류를 섭취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으면서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습니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돼지고기 수요가 급증하자 사육기간이 오래 걸리고 고기의 양이 적게 나오는 국산 재래종 돼지들은 설자리를 잃게 됩니다. 대신 짧은 사육 기간에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외래 품종들이 그 자리를 꿰찼습니다. 현재 재래 품종 돼지를 찾기 힘든 이유입니다.

더불어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식 축사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공장식 축사에서 일률적인 방식으로 같은 품종들을 대량으로 키워내기 시작했습니다. 품종에 따른 사육 방식과 사료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않은 겁니다. 그 결과 고기의 맛도 천편일률적이 됐습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오랜 기간 이 고기를 먹어왔습니다. 돼지고기하면 떠오르는 맛이 대부분 비슷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스페인산 흑돼지인 '이베리코'는 천펀일률적인 돼지고기 맛에 길들여져 있던 국내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접해왔던 돼지고기와는 맛이 달랐던 겁니다. 여기에 '도토리를 먹여 방목해서 키운다'는 스토리가 입혀지면서 이베리코 흑돼지는 국내 외식업계에 큰 돌풍을 일으킵니다. 급기야 '가짜 이베리코'가 등장할 만큼 이베리코 흑돼지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입니다.

최근 이베리코 흑돼지 열풍을 보면서 문득 수년 전 있었던 맥주 논란이 생각났습니다. 수십 년간 라거(Lager) 맥주에 길들여져있던 국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맛의 수입 맥주가 소개되면서 국내 맥주시장 판도에 변화가 일어났던 그 일 말입니다. 심지어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을 만큼 당시 맥주 맛 논란은 대단했습니다.

이베리코 흑돼지도 맥주 맛 논란과 비슷한 과정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색다른 맛의 돼지고기가 소비자들에게 소개되면서 조용했던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똑 닮아 보입니다. 물론 이를 악용하기도 합니다. 이베리코 흑돼지는 등급에 따라 맛과 사육 방법, 사료에 차이가 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고 '이베리코 흑돼지=도토리 먹인 방목 흑돼지'라는 공식을 만들어 홍보하는 일들이 대표적입니다.

제주 재래 흑돼지(사진 : 제주도 축산 진흥원)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사육기간 중 도토리를 먹인 이베리코 흑돼지는 최고 등급인 '베요타'와 그다음 등급인 '세보 데 캄포'입니다. 하지만 일반 음식점에서 자신들이 내놓는 이베리코 흑돼지가 '베요타'급인지, '세보 데 캄포'급인지 아니면 현재 우리가 접하는 국내산 돼지와 같이 축사에서만 키우는 '세보'급인지 잘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로지 이베리코 흑돼지를 취급한다는 점만 강조합니다.

양돈업계에서는 이베리코 흑돼지의 등장에 무척 긴장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베리코 쇼크'라고 부를 만큼 경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최근 우리 양돈 업계 내부에서도 새로운 맛의 돼지고기를 선보이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버크셔K' 품종이나 한때 외래종에 밀려 멸종위기에 몰렸던 제주 재래 흑돼지를 복원해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식당들도 다양한 맛의 돼지고기를 선보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 대기업 부회장이 단골인 것으로 유명한 한 돼지고기 전문점은 '듀록' 품종만을 활용한 메뉴를 내놓고 있습니다. 또 어떤 식당은 '버크셔K' 품종을 활용해 그동안 돼지고기로는 만나보기 힘들었던 곰탕 등을 선보이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죠. 우리 양돈업계도 이처럼 소비자들의 다양한 입맛을 잡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베리코 흑돼지의 인기는 돼지고기 맛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새로운 요구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베리코 쇼크'라고까지 부를 만큼 위기감을 갖고 있습니다만, 위기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우리 양돈업계가 좀 더 다양한 맛의 품종들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한다면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다양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긍정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불어 국내 양돈업계에게도 더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음 [핀셋]에서는 국산 돼지고기와 이베리코 흑돼지를 직접 먹어보는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그 맛의 차이가 어떨지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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