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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셋]이베리코 ②판을 바꿨다

  • 2019.02.28(목) 17:28

'프리미엄 돼지고기' 자리 꿰차는 스페인산
미국산 물량공세 겹쳐…한돈, 샌드위치 신세

당신이 궁금한 이슈를 핀셋처럼 콕 집어 설명해드립니다. 이번 주제는 최근 새로운 외식 메뉴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베리코 흑돼지입니다. 기존에 즐겨왔던 돼지고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자랑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베리코 흑돼지의 모든 것을 정리해봤습니다.[편집자]

"'가짜 이베리코 사태'는 소비자를 기만하고 건전한 대한민국 한돈 산업을 파괴하는 '대국민 사기사건'이다. 정부는 음식점, 유통업계 등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이베리코 돼지에 대해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2019년 1월 29일, 대한한돈협회 성명)

지난달 대한한돈협회(이하 한돈협회)는 다소 격양된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앞서 소비자시민모임이라는 한 시민단체가 시중에서 팔고 있는 이베리코 흑돼지 중 일부는 '가짜'라는 내용을 발표한 데 따른 성명이었는데요. 한돈협회는 "'가짜 이베리코 마케팅'으로 한돈 산업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제 '이베리코 흑돼지'라는 단어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주변 음식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긴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싼 이베리코 흑돼지를 일상적으로 먹기는 어렵기 때문에 절대량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한돈'이 어느 정도 타격을 입기는 했겠지만 한돈 산업 전체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을 정도의 규모는 아닐 것 같은데, 한돈협회가 이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실제 통계를 봐도 그렇습니다. 지난해 시중에 풀린 돼지고기는 138만 3500톤가량입니다. 같은 기간 국내로 수입된 돼지고기는 46만 3500톤 정도고요. 이중 이베리코 흑돼지를 생산하는 스페인산 돼지고기는 5만 6000톤가량에 불과합니다. 스페인산 돼지고기 수입량이 빠르게 늘고 있긴 하지만 한돈 산업 전체에 영향을 줄 정도의 규모는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절대량으로만 따지자면 한돈협회가 경계해야 하는 수입 돼지고기는 바로 미국산입니다. 미국산 돼지고기는 이미 다른 수입산보다 규모가 큰 데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의 영향으로 수입량이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중국으로 들어갈 물량을 한국이나 일본 등으로 돌리고 있다는 분석인데요. 이에 따라 미국산 돼지고기는 지난해에만 18만 4600톤이 수입됐습니다. 전년보다 5만 톤가량 늘어난 수치입니다.

미국산 돼지고기가 급격히 늘면서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돼지고기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전년보다 10만톤 이상 늘어난 규모인데요. 공급량이 많아지니 돼지고깃값도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돈협회에 따르면 국내 한돈 농가가 돼지 한 마리를 출하할 때마다 8만~9만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한돈협회는 이베리코 흑돼지에 대해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며 유난히 경계하고 있는 걸까요. 이는 이베리코 흑돼지가 차지하고 있는 '포지션' 때문에 그렇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입니다.

그간 수입산 돼지고기는 저렴하긴 하지만 질이 떨어진다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반면 국내산 돼지고기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긴 하지만 질이 좋고 맛있는 고기로 통했고요. 결국 수입산 돼지고기가 다소 늘더라도 국내산 돼지고기는 '프리미엄'급으로 통하는 덕분에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노는 물'이 달랐다고 할까요.

대한한돈협회 홍보 이미지.

그런데 이베리코 흑돼지는 다른 수입산과는 다르게 '프리미엄급 시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이베리코 흑돼지는 푸아그라, 트러플, 캐비어와 함께 '4대 진미'로 통한다고 하는데요. 음식점이나 대형 마트 등은 이 문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한돈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미국산의 공세도 껄끄러운데, '4대 진미'라는 스페인산 돼지고기가 '고급육' 시장을 잠식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가 된 모양새입니다.

당장 국내 양돈 농가들이 어렵긴 하겠지만, 이베리코 흑돼지의 인기가 국내 돼지고기 시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알려진 이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버크셔나 듀록, 요크셔 등 돼지고기 종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요. 이에 따라 국내 업체들도 YBD(요크셔, 버크셔, 듀록의 교배종)라는 종자의 우수성을 강조하거나 '한국형 버크셔'를 내세운 브랜드를 내놓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품질을 더욱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이고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은 물론 종자 등을 따져가며 구입할 수 있는 선택권이 넓어지니 환영할 만한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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