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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괄도 네넴띤' 탄생의 비밀

  • 2019.03.08(금) 09:00

윤인균 팔도 마케팅부문 면BM팀 과장 인터뷰
'괄도 네넴띤'은 팔도 비빔면의 10·20대 버전
기획부터 '파격'…세대 아우르는 비빔면 목표

나는 '아재'다.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이젠 40대 중반인 아재다. 마음만은 젊은 감성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을 깨달은 지 오래다. 바람이 있다면 '꼰대'만큼은 되지 않는 것인데 가끔씩 나의 말과 행동에서 묻어나는 꼰대성(性)을 자각할 때면 서글퍼진다. 이미 꼰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거다.

사실 내가 아재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재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탓에 선뜻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내심 '내가 어때서, 이 정도면 내 나이 또래에서 준수한 편이지'라고 생각하고 버텼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빨랐다. 특히 10, 20대들이 쓰는 주로 쓰는 단어들을 듣고는 좌절했다. 추론조차 할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댕댕이'가 멍멍이를 뜻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10, 20대들은 보이는 대로, 직관적으로 단어를 조합하거나 파자(破字)해 사용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은 순식간에 전파되고 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는다. 물론 역기능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하지만 문화의 한 현상으로 이해하면 수긍가는 부분들도 있다.

그들만의 단어를 접할 때마다 솔직히 묻고 싶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뜻을 물어보는 순간 아재로 낙인찍힐까 두려웠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마치 그 뜻을 아는 척, 웃으며 넘어갔다. 그렇다. 안간힘이었다. 나 스스로 아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 마지노선마저 무너졌다. '괄도 네넴띤' 때문이다.

윤인균 팔도 마케팅부문 면BM팀 과장.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괄도 네넴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대체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아, 또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하는 생각에 좌절스러웠다. 여기저기서 괄도 네넴띤 이야기가 자주 들렸다. 그래서 슬쩍 검색을 해봤다. '괄도 네넴띤=팔도 비빔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팔도 비빔면이 어떻게 괄도 네넴띤이 되나. 후배에게 물었다. 다 알고 있지만 너의 의견은 어떠냐는 식으로 돌려 물었다. "에이, 선배 그게 요즘 트렌드잖아요". 또 좌절했다.

'괄도 네넴띤'은 팔도의 스테디셀러인 '팔도 비빔면'의 글자를 보이는대로 재조합한 것이다. 멍멍이를 댕댕이로 부르고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처음 '괄도 네넴띤'을 접하고는 무척 신기했다. 아재 입장에선 새로운 경험이었다. 더불어 '괄도 네넴띤'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출시된 지 하루도 안 돼 완판됐다고 하니 더욱 만나보고 싶었다. 그는 누구일까?

지난 5일 서울 신사동 한국야쿠르트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약속시간 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는 한 눈에 봐도 밝은 사람이었다. 윤인균 팔도 마케팅부문 면BM팀 과장. '드디어 그를 만나는구나'. 가슴이 두근댔다. 그는 사진 촬영 내내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동안 만나왔던 많은 인터뷰이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단시간 내에 사진촬영에서 '오케이'싸인을 받았다. 그만큼 표정이 좋았다.

윤 과장은 팔도가 첫 직장이다. 입사해서 한동안은 영업파트에서 일했다. 이후 마케팅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팔도에서 생산하는 비빔면 라인업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괄도 네넴띤'도 그의 작품이다. 막상 그를 마주하고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다짜고짜 '괄도 네넴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의 답은 의외였다.

윤 과장은 "'괄도 네넴띤'은 사실 제품 출시 전부터 SNS나 인터넷 등을 통해 고객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던 단어였다"며 "팔도의 장수 브랜드인 '팔도 비빔면'을 그들은 그렇게 부르고 또 실제로 이 제품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괄도 네넴띤'을 만든 것은 우리가 아니라 고객들이다"라고 말했다.

팔도는 예전부터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해왔다. 만우절에 '팔도 비빔장'을 출시한다는 소문이 돌자 이를 실제로 제작해 판매해 큰 인기를 끌었다. '팔도 비빔면 1.2'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이 기존 팔도 비빔면의 양을 좀 늘려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자 곧바로 이를 반영, 액상스프와 면의 양을 기존 대비 20% 늘린 '팔도 비빔면 1.2'를 선보였다. 고객들의 니즈를 늘 체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고객들과의 소통창이나 SNS 등을 통해 항상 그들의 니즈를 살핀다"며 "'괄도 네넴띤'도 이 과정에서 제품화 요청이 지속적으로 있었고 그런 니즈가 실제로 현실화됐을 때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만우절 이벤트를 통해 그 가능성은 확인했기에 실행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실 팔도 비빔면은 35년이나 된 장수 브랜드다. 팔도 비빔면을 즐기는 세대들은 이제 대부분 40, 50대 연령층이다. 그래서 10, 20대들도 팔도 비빔면을 인식하고 즐길 방안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괄도 네넴띤'은 그들의 용어로 접근한 팔도 비빔면"이라고 설명했다. '괄도 네넴띤'은 결국 팔도 비빔면이라는 브랜드 확산을 위해 10, 20대들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 활동의 하나였던 셈이다

하지만 '괄도 네넴띤'과 팔도 비빔면은 분명 차이가 있다. '괄도 네넴띤'이 팔도 비빔면과 비교해 5배가량 맵다. 여기에도 숨은 이야기가 있다. 윤 과장은 "'괄도 네넴띤'이라는 제품명을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팔도 비빔면과 똑같은 맛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10, 20대들이 매운맛에 열광하고 있는 데다 최근 팍팍한 삶 등을 고려해 먹을 때 만이라도 행복감을 주자는 취지에서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괄도 네넴띤'은 기존 팔도 비빔면에서는 사용하지 않던 할라피뇨를 이용, 매운맛을 더욱 강조했다. 다만 기본이 되는 팔도 비빔면의 맛은 유지했다. 매운맛도 오래 지속하는 고통스러운 매운맛이 아닌, 처음에는 팔도 비빔면의 맛으로 매콤달콤하게 가다가 나중에 매운맛이 탁 치고 들어오는 맛으로 조정했다. 기존 것보다는 맵지만 싫지 않은 매운맛을 줬다는 것이 윤 과장의 설명이다.

팔도의 이런 전략은 실제 시장에서도 통했다. '괄도 네넴띤'은 팔도 비빔면 탄생 35주년 기념 한정판이다. 최근 일부 물량을 두 차례에 걸쳐 풀었다. 총 16만 개다. '괄도 네넴띤'은 11번가를 통해 판매됐고 판매와 동시에 동이 났다. 두 차례 모두 완판을 기록하는 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현재 팔도는 '괄도 네넴띤' 500만개를 한정판으로 내놓을 생각이다. 조만간 대형마트와 편의점에도 풀린다.

팔도가 '괄도 네넴띤' 출시를 위해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내부 개발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품화를 준비해왔다. 처음 제품명을 '괄도 네넴띤'으로 정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은 연령층에 있는 회사 내 임원들은 이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40대인 나도 처음 듣고는 무슨 소리인가 했으니. 하지만 기획 취지를 충분히 설명했고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윤 과장은 "처음 제품을 만들었을 때 사장님께 시식하지 마시라고 했다. 기존 것보다 매워서다.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제품인 만큼 사장님이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말렸다"며 "세상에 식품회사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회사의 대표가 시식을 하지 않고 내놓는 제품이 어디 있겠나. '괄도 네넴띤'은 그런 제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사장님은 이후에 시식하셨고 만족스러워하셨다"고 밝혔다.

'괄도 네넴띤' 디자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그는 "처음 디자인 시안을 1번부터 5번까지 준비했다. 파격적인 디자인 순서대로 시안을 올렸다. 지금 디자인이 가장 파격적이었다. 젊은 층을 공략하려면 제대로 파격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윤 과장은 "내심 윗선에서 가장 덜 파격적인 것을 선택할까 걱정이 됐다"면서 "그런데 희한하게 한 번에 지금 디자인이 선택됐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괄도 네넴띤'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글 관련 단체가 '괄도 네넴띤'이 한글을 파괴한다고 비판한 내용이다. 윤 과장은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며 "하지만 10, 20대들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네넴띤이라는 이상한 단어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팔도 비빔면이 살아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윤 과장은 인터뷰 내내 팔도 비빔면을 강조했다. 그는 "'괄도 네넴띤'을 계기로 팔도 비빔면이 전 세대가 함께 즐기는 제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면서 "실제로 '괄도 네넴띤'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3위까지 올랐는데 팔도 비빔면이 7위로 따라왔다. 검색창에 '괄도 네넴띤'을 치면 팔도 비빔면이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40, 50대들도 '괄도 네넴띤'을 검색해 본 결과"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그는 "'괄도 네넴띤' 한정판 500만 개의 판매 상황을 좀 봐야 할 것 같다. 이번에도 고객들이 많이 찾아주시면 정식으로 비빔면 라인 중 하나로 흡수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맛에 대한 고객들의 니즈가 있다면 계속 만들어야지 싶다"고 말했다. 또 "팔도 비빔면에 대한 사랑을 '괄도 네넴띤'에서 확인한 만큼 다른 제품들도 사랑받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윤 과장은 유쾌한 웃음을 남긴 채 돌아갔다. 인터뷰 내내 막힘 없이 팔도 비빔면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애정, 비전 등을 풀어냈다. 매운맛을 이야기할 때는 둘이 같이 침을 삼키기도 했다. 그만큼 빠져들었다. 내가 아재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괄도 네넴띤'. '괄도 네넴띤'은 단순히 비빔면의 매운 버전이 아닌, 35년 장수 브랜드 팔도 비빔면의 새로운 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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