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복제의약품(제네릭) 약가제도 개편안을 행정예고하면서 우려했던 ‘생동 대란’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적정 약가를 받으려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생물학적 동등성시험 요건을 까다롭게 강화하면서 그전에 생동성시험을 서두르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제네릭, 약값 차등화…옥석가리기 vs 발목잡기]
이번 개편안은 적정 약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네릭 품목수를 제도적으로 확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어 향후 제네릭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제약사들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만큼 혁신신약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 제네릭 난립을 막으려는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제네릭 의존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제약사들은 최근 약가제도 개편 이전에 생동성시험을 끝내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7월 17일까지 생동성시험을 통과한 제네릭만 1339건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399건과 비교하면 3.5배나 늘었다. 작년 한해 생동성시험을 통과한 전체 품목 숫자인 789건과 비교해도 두 배가 넘는다.
제약바이오협회가 지난 3월 복지부의 약가제도 개편안 발표 직후 우려했던 '생동 대란'이 현실화한 셈이다. 그러다보니 업계에선 제네릭의 난립을 막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단기적으로 제네릭의 난립을 불러왔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제네릭의 약가산정 기준 등을 담은 '약제의 결정 및 조정기준' 고시 일부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제네릭 약가는 자체적으로 생물학적 동등성시험 자료를 제출했는지 또 식약처 등록 원료의약품(DMF)을 사용했는지 등 두 가지 기준을 충족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또 성분이 같은 동일 제재 제네릭은 등재 순서도 중요하다.
가령 동일 제재 제네릭의 경우 등재 순서가 19번째 이내로 2개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오리지널 대비 53.55%, 1개만 충족 시 45.52%, 둘 다 충족하지 못하면 38.69%의 약가가 매겨진다. 등재 순서가 20번째 이후로 밀려나면 동일 제제 상한금액 중 최저가나 38.69%의 약가 중 낮은 금액의 85%로 산정한다.
약가제도 개편안은 당초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1년 늦춰졌다. 정부는 오는 8월 21일까지 관련단체들의 의견을 들은 후 2020년 7월 1일부터 개편안을 시행하기로 확정했다. 즉 내년 7월 1일 이후 신규 제네릭은 20개 품목 내에 등재가 기본이고, 생동성 시험과 원료의약품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제대로 된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약가 산정의 주요 기준인 생동성시험의 요건도 더 까다로워진다는 점이다. 지금은 공동 및 위탁 생동성시험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1개의 원제조사에 위탁할 수 있는 품목을 3개로 제한되고, 2023년부터는 전면 금지된다.
기존엔 대부분의 중소 제약사는 물론 주요 대형 제약사들도 비용 절감 차원에서 공동·위탁 생동성시험을 선호해왔는데 이젠 자체적으로 생동성시험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제약업계는 공동·위탁 생동성시험이 폐지되면 단순히 제약사의 존폐를 떠나 장기적으로 국내 제약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주수입원이던 제네릭 매출이 줄면서 연구개발 활동 역시 주춤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공동·위탁 생동성시험이 아예 불가능해지면 많은 제약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겪게 되고 결국 R&D 활동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제약사들의 혁신 신약개발에 대한 기동성과 의지마저 꺾여 결국 제약산업 전반의 성장세가 주춤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