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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발사르탄 사태, 국내 제약사만 봉?

  • 2019.11.05(화) 10:35

제약사, 정부의 20억원 손해배상 청구 맞대응 준비
정부가 주도해 중국 제조사 상대 손배 청구가 우선

지난해 중국에서 수입한 고혈압 제제 발사르탄 성분에서 발암 추정물질인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가 검출되면서 정부가 대거 판매중지 처분을 내렸다. 무려 총 82개 제약사의 219품목이다. 이후 정부는 해당 품목을 처방받은 환자들에게 NDMA가 발견되지 않은 다른 대체 고혈압 치료제를 무상으로 교환 조치했다. 비용은 약 21억원이 들었고 모두 건강보험 재정에서 충당했다.

정부는 곳간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제약사들에 타깃을 돌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69개 제약사에 발사르탄 사태에 대한 구상금을 청구했고, 대부분 금액이 낮은 16개사만 구상금을 냈다. 전체 구상금 21억원 중 1억원에 불과한 금액이다. 다수 제약사들은 구상금 납부를 거부한 채 지난달 31일 2차 납부기한이 종료됐다. 건보공단은 미납부 제약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할 계획도 밝혔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했다. 구상금 액수가 1000만원이 넘는 38개사 중 34개사가 건보공단의 소송에 맞서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의약품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정부에 최대한 고개를 숙여온 제약사들이 이번엔 맞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올해 또다시 불거진 라니티딘 사태 때문이다. 지난 9월 위궤양 및 역류성 식도염치료제 원료의약품인 '라니티딘' 성분에서도 NDMA가 발견되면서 발사르탄보다 더 많은 269품목에 판매중지 조치가 내려졌다.

만약 발사르탄 사태에 대한 구상금을 군말 없이 납부하면 라니티딘 사태에 대한 구상금도 제약사들이 모두 짊어져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향후 동일한 사태가 또 발생할 경우 그 책임도 제약사들이 모든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제약사들은 의약품 안전관리 책임이 있는 정부도 사전에 NDMA를 발견하지 못했던 정황들을 엮어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정부는 '제조물 책임법' 내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라는 조항을 들어 제약사들의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제약사들도 동법 내에 '제조업자가 해당 제조물을 공급한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다'라는 조항으로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해외에서 들여온 원료의약품의 검수‧관리를 못한 책임은 2차는 제약사, 3차는 정부에 있다. 허가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정부도 허가를 내준 것이고 이후 관리 책임은 둘 모두에게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1차 원인인 중국 원료의약품 제조사 제지앙화하이는 내버려둔 채 귀찮은 뒤처리는 국내 제약사에 떠넘겼다. 해외 소송의 경우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드는 만큼 개별 제약사는 대응이 쉽지 않은데도 말이다. 정부의 요구대로라면 제약사들은 반품‧재고 손실과 대체 의약품 교환에 든 재진료‧처방 비용(정부의 구상금 청구), 중국 제조사 상대 소송비용까지 모두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된다.

이번 사태로 국내 많은 환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정부도, 제약사도 피해자다. 그렇기에 정부가 주도해 국내 제약사들과 함께 중국 제지앙화하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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