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코스닥 시장에는 '자기주식취득신탁계약해지결정'이라는 제목의 주요사항보고서가 쏟아져 나옴.
금융회사에 돈을 맡겨 자기주식(자사주)을 대신 취득해 운용하도록 하는 것을 자기주식(자사주)취득신탁이라고 함. 자사주 취득은 대체로 투자자에게 좋은 소식. 자사주를 취득하면 시장에 풀리는 물량이 적어져서 주식 희소가치가 상대적으로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
그런데 자사주취득신탁은 기한이 정해져 있는 계약이어서 계약이 끝나면 기업에게 돈을 받아 주식을 대신 운용했던 금융회사는 다시 맡아놓은 돈을 돌려줘야 함. 이 때 운용하던 주식을 되팔아 현금으로 돌려줄 것인지 아니면 주식 그대로 돌려줄 수도 있는데 어떤 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주주들의 희비가 엇갈림.
금융회사가 주식을 되팔아 현금으로 돌려주면 주식시장에 갑자기 대량의 매물이 쏟아져 나와 주가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음. 주주들에겐 좋지 않은 소식. 따라서 대부분의 자사주취득신탁계약해지는 주식 그대로 돌려주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음.
자사주취득신탁계약을 해지한 이후 금융회사로부터 돌려받은 자사주는 즉시 처분이 가능함. 이때 기업에겐 세 가지의 선택이 있음.
①돌려받은 자사주를 그대로 보유하는 경우
②돌려받은 자사주를 소각하는 경우
③돌려받은 자사주를 처분하는 경우
①번은 기업이 자사주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 물량이 풀려 주가가 하락할 위험은 없음. 다만 기업의 자사주 취득한도는 배당가능이익 내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한도를 넘을 경우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처분해야 함.
②번은 자사주 매입=주주가치 제고라는 이론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 돌려받은 자사주를 아예 없애버려 전체 발행주식수가 줄어들게 됨. 이때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가치가 올라갈 수 있음. 확실한 주주이익환원효과가 나타나는 경우.
③번은 돌려받은 자사주를 시장에 팔아버리는 것. 상당한 물량이 주식시장에 쏟아진다는 점에서 주가하락 우려가 있음. 다만 시장에 내놓지 않고 자사주를 현금처럼 쓸 수도 있음. 대표적으로 락앤락이 소형주방가전 브랜드 제니퍼룸을 인수하면서 자금의 일부를 충당하는데 자사주를 사용했음. (☞관련기사: [공시요정]락앤락, '락' 풀린 자사주 어디로)
최근 코스닥시장에서 나온 몇가지 자사주신탁계약해지 공시를 살펴보면
♡보라티알: 2년 만에 해지한 신탁계약
이탈리아 식자재 전문 유통업체인 보라티알. 지난 2018년 9월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체결했던 10억원 규모의 자사주취득신탁계약을 18일 계약만료로 인해 해지함.
보라티알은 대신증권에 10억원을 맡기고 주식을 대신 운용하도록 했는데 2018년부터 대신증권이 취득한 보라티알 주식 수는 12만9506주. 전체 발행주식수(675만733주)의 1.9% 수준.
12만9506주는 자사주 그대로 반환예정. 다행히 주식 그대로 돌려주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은 물량폭탄으로 인한 주가하락 우려를 당장에는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눈에 띄는 점은 신탁계약을 체결해 운용해온 지난 2년간의 보라티알 주가 변화. 보라티알의 주가는 신탁계약 체결 당시인 2018년 9월 7000원~9000원대 사이를 오고갔음. 이후 꾸준히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다 가장 최근인 8월 29일 주당 1만6500원을 기록.
21일 보라티알 시가(1만4400원)를 기준으로 이번에 반환예정인 12만9506주의 현금 가치를 계산하면 약 19억원 상당. 최초 신탁계약 규모(10억원)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 만약 보라티알이 돌려받을 자사주를 추후 시장에 내놓는다면 자사주취득신탁계약을 통해 상당한 시세차익(자사주 처분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임. 반대로 주주들은 일정 수준의 물량 부담 불가피.
☞관련공시: 보라티알 9월 18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신탁계약해지결정)
♡리드코프: 6개월 만에 신탁계약 해지
대부업체 리드코프가 18일 3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취득 신탁계약 해지를 결정.
리드코프는 지난 3월 KB증권과 30억원 규모의 자사주취득신탁계약을 체결한 바 있음. 신탁계약의 목적은 '주주가치 제고 및 임직원 성과 보상'. 해당 계약을 통해 KB증권은 리드코프 주식 54만8189주를 사들여 대신 운용함. 리드코프 전체 발행주식수(2644만6135주)의 2.07% 비율.
애초에 신탁계약기간은 6개월이었음. 리드코프는 신탁계약기간 만료에 따라 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힘. 신탁계약으로 취득한 리드코프 주식 54만8189주는 현금이 아닌 주식 그대로 리드코프 계좌로 들어올 예정. 자사주 그대로 돌려받기 때문에 물량폭탄에 따른 주가하락 위험은 당장에는 없음.
다만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점이 최초 신탁계약 체결 시 계약의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 리드코프는 주주가치 제고와 함께 임직원 성과보상을 위해 자사주취득신탁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음. 주가하락을 막기 위해 신탁계약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한 점은 분명 주주가치 제고에 해당. 하지만 임직원 성과보상은 일반 주주와는 관련 없는 내용.
리드코프는 신탁계약해지에 따라 주식 54만8189주를 자사주 그대로 돌려받는다고 밝혔지만 추후 이 주식을 임직원 성과보상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주식을 임직원들에게 주거나 팔아서 현금화해야 함. 결국 지금 당장은 신탁계약에 따른 주식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진 않지만 언젠가는 임직원 성과보상 지급을 위해 주식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뜻. 당연히 매물 부담을 염두에 둬야할 상황.
☞관련공시: 리드코프 9월 18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신탁계약해지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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