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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끗]①스팸은 '전쟁 영웅'이었다-1

  • 2020.11.05(목) 10:46

버려지는 돼지 어깨살과 지방으로 만들어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각광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익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많은 제품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특히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품들의 경우 결정적 한 끗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절묘한 한 끗 차이로 어떤 제품은 스테디셀러가, 또 어떤 제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비즈니스워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려 합니다. 결정적 한 끗 하나면 여러분들이 지금 접하고 계신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편집자]

#첫경험 #충격 #세상에이런맛이 #빨간소시지안녕

오늘은 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첫 경험 이야기입니다. 놀라셨죠? 사실 저도 많이 망설이긴 했는데 그래도 이런 이야기는 솔직해야 하니까. 때는 바야흐로 새로운 세계에 조금씩 눈을 뜨던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그 시기가 외모에도, 이성에도 한창 관심이 많을 때죠. 너무 빠르다고요?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세요.

그녀는 참 예뻤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반 친구들이 모두 그녀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물론 남자아이들이 더 많이 모였죠.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니 어떻게든 그 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난리였습니다. 옷도 얼마나 예쁘게 입고 다니던지요. 늘 깔끔하고 예쁜 옷만 입었습니다. 머리도 뒤로 단정히 묶어 멀리서 봐도 빛이 나는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다들 학교에서 급식을 주지만 당시는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다니던 시대였습니다. 저는 늘 점심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 듯 매일 친구들이 싸 올 새로운 반찬에 대한 기대감이 저를 전율케 했습니다. 더불어 점심 시간은 각자의 집안 사정이 어떤지 여실히 드러나는 '민낯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반찬으로 무엇을 싸 왔는지를 보면 딱 각이 나옵니다. 소시지를 싸 온 친구들은 좀 사는 집 아이들입니다.

그날도 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의 반찬을 탐닉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녀의 뒷자리에 있는 친구가 계란말이를 싸 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재빨리 위치 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계란말이를 확인하고 젓가락을 뻗으려는 찰나 제 팔을 낚아채는 다른 손길이 있었습니다. "뭐야!"하며 고개를 돌려 보니 세상에 그녀가 제 팔을 잡고 있는 겁니다. 평소 먼발치에서만 아련히 바라봤던 그녀가 말입니다.

가슴이 쿵쾅댔습니다. 멍했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정지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황한 티를 내면 안 됩니다. 이 순간 당황한 티를 내면 아마추어입니다. 난리 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일부러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아, 왜". 그러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반찬통에 있던 소시지 하나를 제 밥통 안에 쓱 넣어주는 겁니다. '뭐지?'.

삽화=김용민 기자 / kym5380@

"이게 뭔데?" 더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한번 먹어보라고".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습니다. 머릿속에 '왜?'가 맴돌았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문득 '혹시 너도 나를?'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지 않다면야 굳이 저를 붙잡아 자기 반찬을 줄 리가 없을 테니까요. "고마워" 또 한 번 시크하게 답해주고 돌아서는데 자꾸 웃음이 났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와 남은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쓸만한 반찬들은 친구들이 싹쓸이한 터라 미련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 밥통에는 '그녀가 선사한' 소시지가 있었으니까요. 행복했습니다. '뭘 이런걸. 그냥 말로 하지'. 밥 한숟갈을 떠 그 위에 그녀의 사랑이 담긴 소시지를 살포시 올렸습니다. 그리고 입안에 안착시켰죠.

솔직히 처음에는 무슨 맛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씹을수록 고기향이 입안에 퍼지면서 짭짤한 것이 밥과 기가 막히게 찰떡궁합인 겁니다. 그냥 소시지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지금껏 먹어왔던 분홍 소시지와는 클래스가 달랐습니다. '뭐지?'. 밥을 삼키기가 싫었습니다, 씹을수록 너무 맛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준 소시지 반찬이었으니 더 맛있게 느껴졌을 겁니다.

그렇게 홀린 듯 마지막 한 입을 넘기는 순간 문득 궁금증이 몰려왔습니다. 소시지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궁금하면 물어봐야죠. 아마 그녀도 제가 다가가길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용기를 내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잘 먹었어. 그런데 네가 준 거 그거 뭐야? 맛있던데". 그녀가 저를 무심히 쳐다보며 말합니다. "그거? 스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녀 뒤에 앉았던 계란말이를 싸 온 친구. 제가 그 친구의 반찬을 뺏으려 하자 중간에 막아섰던 겁니다. 스팸을 제 입에 물려 남자친구의 계란말이를 지킨 거죠. 참담했습니다. 자다가 이불킥을 몇 번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스팸만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의 스팸 첫 경험은 그렇게 강렬했습니다.

#군대에선다된다 #갈굼의산물 #갈아만든햄

스팸을 처음 제조한 곳은 미국의 호멜(Hormel Foods)입니다. 호멜은 1891년 미국 미네소타주 오스틴에서 조지 호멜(George A. Hormel)이라는 사람이 만든 회사입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호멜은 영국에 고기를 수출하는 작은 정육 업체에 불과했습니다. 호멜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창업주인 조지 호멜의 아들인 제이 호멜(Jay Hormel) 덕이 큽니다. 그가 바로 스팸을 만든 사람이거든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대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에서는 금과옥조와 같은 격언입니다. 실제로 밖에서는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군대에서는 다 됩니다. 희한합니다. 스팸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제이 호멜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 병참 장교로 참전합니다. 병참 장교는 군대의 보급을 담당하는 역할을 합니다.

스팸을 만든 제이 호멜(Jay Hormel).

그때나 지금이나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군인들의 먹을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군인들이 힘을 내서 전투하려면 아무래도 고기를 먹여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육가공 기술은 물론 냉장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때입니다. 커다란 고깃덩이를 일일이 날라야 했죠. 그러다 보니 전선에 고기 보급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제이 호멜의 선임들이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임들의 압박에 제이 호멜은 고민합니다. '좀 더 쉽고 간편하게 고기를 먹을 수는 없을까?'. 역시 군대에서는 갈구면 무엇이든 이뤄집니다. 스팸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제이 호멜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버려지는 고기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돼지 어깨살과 발골 후 남은 지방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1940년대 미국의 한 잡지에 실린 스팸 광고.

고민하던 제이 호멜은 회사 소속 프랑스 출신 요리사와 함께 이것들을 모아 간 후 약간의 조미를 첨가해 통조림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스팸입니다. 스팸은 1937년 그렇게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출시 당시 제품명은 호멜 조미햄(Hormel Spiced Ham)이었습니다. 밋밋하죠? 그래서인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버려지는 부위를 활용해 신제품을 만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안 팔리니 제이 호멜의 속이 탔을 겁니다.

생각다 못한 제이 호멜은 회사 송년 파티에서 신제품의 제품명 공모에 나섭니다. 상금은 100달러. 공모 끝에 당시 배우였던 케니스 데이누(Kenneth Daigneau)가 제안한 'SPAM'이 선정됩니다. 케니스 데이누는 호멜 부사장의 동생이었다고 하네요. SPAM은 'Spiced Ham'을 줄인 말입니다. 돼지 어깨살을 사용해 'Shoulder of Pork and Ham'의 줄임말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입에 착착 붙는 '스팸(SPAM)'이라는 이름 덕에 스팸은 조금씩 판매량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제이 호멜은 스팸을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도 소개합니다. 또 연예인들을 활용한 여러 형태의 마케팅을 벌이면서 소비자들의 뇌리에 조금씩 스팸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스팸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계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입니다. 그러고 보니 스팸은 전쟁과 유독 인연이 깊네요.

#2차대전의진정한승자 #처음엔좋았는데 #줘도너무줬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호멜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됩니다. 전선에 투입된 병사들에게 스팸이 지급되기 시작하면서 스팸은 전 세계로 뻗어가게 된거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보급품이 빵빵해야 합니다. 사기진작에도 도움이 되죠. 특히 먹는 것은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하는 부분입니다. 잘 먹어야 잘 싸우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겠죠.

하지만 여전히 전선에 투입된 병사들에게 단백질을 제때, 손쉽게 공급하는 것은 늘 군의 고민이었습니다. 고깃덩어리를 운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대체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기류를 먹여야 힘이 나는데 그런 것이 없으니 군 당국도 머리를 싸매야 했죠. 그때 혜성 같이 나타난 것이 바로 스팸입니다. 돼지고기(물론 지방이 다량 포함돼있지만)로 만들었고 장기간 보관이 가능합니다.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스팸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황을 알아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초기 독일은 유럽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싹쓸이합니다. 이때 연합군 일원이었던 영국도 큰 타격을 입었죠. 이후 독일은 동쪽으로 눈을 돌립니다.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과 맞닥뜨립니다. 소련은 힘겹게 유럽의 동부를 지켰죠. 더불어 영국과 미국에 서부 유럽을 공략해달라고 종용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공군들은 자신들의 비행기지를 '스팸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출처 : Hormel Food 홈페이지)

독일을 사이에 두고 서부에서는 영국과 미국이, 동부에서는 소련이 협공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일에게 심하게 두들겨 맞은 영국은 서부를 공략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참전이 늦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련만 '독박'을 쓰고 있었던 셈입니다. 소련에 대해 미안함이 있었던 미국은 뒤늦게 참전한 대신 보급품을 대규모로 지원합니다. 그중 하나가 스팸입니다.

스팸은 미군의 전투식량으로 채택되면서 어마어마한 양이 전장에 투입됩니다. 독일과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영국에도 스팸은 대량으로 살포됩니다. 소련이 버티고 있는 동부전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장에서 섭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육류였던 스팸은 그렇게 유럽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뿌려집니다. 호멜사는 쾌재를 불렀겠죠. 그때 판매된 스팸의 개수만 해도 1억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당시 호멜사는 스팸이 제조되는 즉시 군용으로 먼저 수출하고 나머지를 내수용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워낙 많은 양이 나가다 보니 통조림을 만들 주석이 부족할 정도였죠. 그래서 내수용은 유리병에 담아 판매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스팸은 큰 성공을 거둡니다. 스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 육류를 효율적으로 공급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까지 받습니다.

아이젠하워 장군이 호멜社에 보낸 감사 편지. 붉은 박스 안에는 스팸을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너무 많이 보내서 고역이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출처 : Hormel Food 125주년 기념 홈페이지).

심지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유럽전선 총사령관 미국 육군 원수 아이젠하워 장군은 호멜에 감사장을 보냈습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도 회고록을 통해 "스팸이 없었다면 우리 군에 식량을 대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언급할 만큼 스팸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병사들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제품의 질을 떠나 어찌됐든 스팸은 전장의 병사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됐던 겁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스팸을 전장에 보내도 너무 많은 양을 보낸 겁니다. 다른 물자는 부족한데 스팸만 넘쳐나다 보니 병사들은 스팸에 절어있었습니다. 심하게 짜고 기름져서 어쩌다 한 번이면 몰라도 매일 삼시세끼 먹는다는 것은 고역이었습니다. 게다가 먹어도 먹어도 계속 보급이 되니 죽을 맛이었죠. 아이젠하워 장군도 앞서 말씀드린 호멜에 보낸 감사장에서 "너무 지나치게 많이 보내서 너희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스팸은 전장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참호 안에 물이 차올라 늘 발이 젖어있던 병사들은 남아도는 스팸을 참호 밑에 깔아 발판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스팸에 불을 붙여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만큼 스팸이 대량으로 공급됐다는 방증일 겁니다. 아무튼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스팸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이제는 전 세계 43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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