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 텔러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얼마 전 한 유명 유튜브의 영상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추억의 식품으로 손꼽히는 '분홍소시지'가 수산가공식품이라는 내용이 담긴 영상이었습니다. 고기가 아니라 생선류로 만들어진 '소시지'라는 건데요. 육식을 좋아하는 터라 식단에 고기류 반찬이 들어 있으면 참 반갑습니다. 분홍소시지 역시 반가운 친구 중 하나였는데, 왠지 모를 배신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년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분홍소시지는 사실 소시지가 아니라 어묵이라는 논란이 있었죠. 그래서 분홍소시지가 사실은 '어육소시지'라는 식품군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이제는 꽤 알려져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여전히 아리송합니다. 분홍소시지는 정말 어묵과 다를 게 없을까요. 고기는 전혀 안 들어갈까요.
먼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분홍소시지들을 찾아봤습니다. 제품 상세정보를 살펴보니 듣던 대로(?) 모두 '어육소시지'라고 표기하고 있고요. 생선을 갈아 만든 연육이 주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다만 돼지고기가 전혀 안 들어가는 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제품에 연육과 전분 외에 '돼지고기'가 함유된 것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하지만 '어육소시지'라고 하니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한 소시지 제조 업체에 문의해봤습니다. 업체에 따르면 돼지고기 함유량은 업체별로, 제품별로, 시대별로 달랐다고 합니다. 실제 돈육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요. 고기가 아닌 지방, 즉 돈지방만 함유된 제품도 있다고 합니다. 돼지고기 기름을 넣어 풍미를 높여주기 위해서죠. 다만 우리가 흔히 아는 분홍소시지에는 돈육이 들어가더라도 언제나 미미하게 함유되곤 했다는 설명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홈페이지를 찾았습니다. 역시 어육소시지는 '수산가공식품류'로 분류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육가공품에 속해 있는데요. 어육소시지는 어묵에 이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분홍소시지가 어묵과 다를 게 없다는 얘기가 나올 만한 일이네요.
식약처는 어육소시지에 대해 '어육의 함량이 식육의 함량보다 많아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혹여 돼지고기가 함유되더라도 어육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수산가공식품류로 분류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반면 햄이나 '일반적인' 소시지는 식육가공품 및 포장육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중 소시지는 '소시지류'에 포함돼 있고요. 일부 소비자들의 경우 분홍소시지를 혼합소시지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식약처에 따르면 혼합소시지는 어육의 함량이 20% 미만인 식품으로 못 박고 있습니다. 이보다 많으면 가공육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분홍소시지는 지난 196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육가공 업체인 진주햄(당시 평화상사)이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해 처음으로 출시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의 서민들은 돼지고기를 일상적으로 소비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저렴한 가격에 돼지고기 맛이 나는 분홍소시지의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980~1990년대 들어서는 국내에서도 '정통' 소시지 제품이나 햄류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분홍소시지의 인기가 사그라들었습니다. 다만 분홍소시지는 아직까지 추억의 음식으로 종종 소환되고는 합니다. 일부 식당에서는 '추억의 도시락'이라는 이름으로 분홍소시지가 들어간 메뉴를 팔고 있기도 하고요. 여느 가정에서는 명절마다 분홍소시지에 계란을 입혀 부쳐 먹고는 합니다.
분홍소시지와는 다소 다른 제품이긴 하지만 요즘에는 천하장사(진주햄)나 맥스봉(CJ제일제당), 키스틱(롯데푸드) 같은 스틱형 소시지들이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 제품들도 모두 '어육소시지'로 분류됩니다. 분홍소시지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중 가장 대표적인 제품인 천하장사는 진주햄이 지난 1985년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했습니다.
분홍소시지가 대표적인 '추억의 음식'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국내에서의 인기는 점차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분홍소시지와 스틱형 소시지 등 '어육소시지' 판매량은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어육소시지의 소매점 연간 매출액은 지난 2015년 231억 원에서 2019년 189억 원으로 지속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아무튼 궁금증은 풀렸습니다. 분홍소시지는 어묵과 같은 어육가공품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어묵과는 엄연히 다른 음식입니다.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돈육이나 돈지방에 들어가 '고기의 향'을 내뿜는 식품입니다. 다만 식약처가 수산가공품으로 분류해놓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육이 절반이 넘는 음식이니, 고기반찬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추억의 반찬이라고 해두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건강에는 별로 좋지 않다고 하지만, 종종 추억을 떠올리며 맛있게 먹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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