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보면 어느 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비빔면을 한 개만 끓여 먹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두 개가 기본이죠. 한 개로는 당최 배가 차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성장기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습니다. 요즘은 소식(小食)으로 건강을 추구하는 게 대세가 됐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많이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비빔면 한 개로는 배가 차지 않는다'라고 느끼고 있다는 게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국내 비빔면 시장 1위인 팔도는 종종 '증량 이벤트'를 합니다. 비빔면 성수기인 여름에 면을 20% 증량해 한정판으로 내놓는 식입니다. 이런 행사를 하게 된 건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이죠. 한 개는 부족하고 두 개는 많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나왔던 겁니다.
결국 팔도는 결심했습니다. 지난 2016년 한정판으로 '팔도 비빔면 1.2'를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왜 50%도 아닌 20%를 증량한 걸까요. 당시 팔도는 사내 직원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를 증량했을 때 한 끼 식사로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가격을 유지하면서 늘릴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자 경쟁사인 오뚜기는 지난해 면의 양을 기존보다 20% 늘린 제품을 출시합니다. '진비빔면'입니다. 팔도처럼 증량 이벤트를 한 게 아니라 아예 제품 자체를 증량해버린 겁니다. 오뚜기가 앞서 선보였던 '메밀비빔면'은 130g이었는데요. '진비빔면'은 이보다 20% 늘린 156g으로 출시했다는 설명입니다. 오뚜기는 기존 자사 제품보다 양을 늘렸다고 했지만, 사실 경쟁사 제품을 겨냥한 마케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출시된 비빔면은 대부분 130g이기 때문입니다. 팔도 비빔면도 마찬가지고요.
비빔면 업체들은 이처럼 때마다 양을 늘리기도 하고, 또 많은 양 자체를 마케팅 포인트로 강조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애초에 비빔면 한 개를 '부족하게 느낄 만한' 양으로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음부터 많이 넣으면 될 텐데요. 그런데 실제 비빔라면 양이 적기는 한 걸까요. 혹시 국물이 없는 데다 밥을 말아 먹지도 못하니 양이 적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일단 근처 편의점을 찾았습니다. 과연 비빔라면은 국물 라면보다 양이 적을까요.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라면과 진라면의 중량은 120g입니다. 그런데 팔도비빔면이나 농심 배홍동은 130g 정도였습니다. 비빔라면의 중량이 더 컸던 겁니다. 역시 우리는 '국물' 때문에 신라면이나 진라면의 양이 더 많은 거로 착각했던 겁니다. 비빔면은 오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라면 업체들에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반전이 벌어집니다. 업체들은 비빔 라면의 양이 적은 게 '사실'이라고 답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면'의 양이 적다는 설명입니다.
제품 뒤에 쓰인 중량은 스프의 무게까지 더한 숫자입니다. 보통 국물 라면의 경우 면 110g, 분말스프 10g 정도로 구성돼 있다고 합니다. 반면 비빔라면은 면 100g, 액상스프 30g으로 이뤄져 있고요. 액상스프 무게가 더 나가니 총 중량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면만 놓고 보면 비빔면의 양은 확실히 적었던 겁니다.
그런데 왜 비빔면은 면을 100g만 넣어 팔고 있는 걸까요. 여기에는 경제 논리가 적용됩니다. 업체들은 액상스프가 분말스프에 비해 원가가 더 높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대신 면을 적게 넣어 '균형'을 맞췄다는 설명입니다.
다른 분석도 있습니다. 식품 업체들은 통상 제품을 내놓을 때 선두 업체 제품의 중량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그 중량 그대로 만들어 내놓고는 합니다. 팔도비빔면은 오랜 기간 중량 130g을 유지해왔는데요. 그러니 비빔면 시장의 '후발주자'인 오뚜기와 농심 역시 130g에 맞춰 신제품을 출시해왔던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신라면과 진라면의 중량이 똑같이 120g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국내 라면 제품 대부분이 120~130g으로 출시되는 것에도 '스토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라면 제품은 지난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입니다. 삼양식품은 처음 라면을 개발하기 위해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왔는데요. 당시 일본 라면의 중량은 통상 85g 정도였다고 합니다. 삼양식품은 한국 사람한테는 이게 좀 부족하다고 판단해 양을 100g으로 늘려 출시합니다.
이후 경쟁사인 롯데공업(현 농심)은 삼양라면을 따라잡기 위해 중량을 120g으로 늘린 '롯데라면'을 내놨습니다. 그러자 삼양식품도 얼마 안 돼 중량을 20g 늘려 맞대응을 했고요. 이후 지금까지 국내 라면은 대부분 120g 정도를 평균으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궁금증은 풀렸습니다. 비빔라면은 면 중량이 작은 데다가, 국물도 없습니다. 게다가 밥을 말아 먹을 수도 없으니 '한 개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자신 있게 두 개를 꺼내 비벼 먹어도 될 듯합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습니다. 비빔면이 더욱 맛있게 느껴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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