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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유통가 덮친 '오조오억개 손가락'

  • 2021.05.12(수) 17:35

GS25 이어 무신사·다이소까지…젠더 갈등 '몸살'
파급력 커진 '불매 운동'…"리스크 관리 원칙 필요"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최근 유통 업계에는 금기어가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손가락'입니다. 얼마 전이었죠. 편의점 업체 GS25가 내놓은 캠핑 이벤트 광고 포스터가 논란이 됐습니다. 해당 포스터에 그려진 집게 모양 손가락이 문제가 됐는데요. 이 손가락 모양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내세우는 로고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로고는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런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로고를 숨겨놓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GS25 측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해당 손가락 이미지는 유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캠핑'이나 '힐링 캠핑'을 검색하면 나오는 디자인 소스를 바탕으로 제작했다는 설명이었죠. 과거에도 해당 이미지를 사용했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결국 포스터를 삭제하고 대표까지 나서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GS25 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GS25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GS25의 군부대 PX계약을 전면 철회해달라는 글까지 올라왔고요. 여기에 네티즌들은 다른 유통 업체들이 과거에 올렸던 포스터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GS25에 쓰였던 것처럼 남성 비하 로고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던 겁니다. 불똥이 유통 업계 전반으로 튀기 시작한 셈입니다.

그러자 유통 업체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도나도 '집게손가락'을 찾아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마트24의 경우 자사의 포스터 속에 그려져 있던 남성의 손 모양을 곧장 수정했고요.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BBQ 역시 자사 제품을 엄지와 검지로 집는 모양이 논란이 되자 즉시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이마트24가 수정한 포스터. 애초 포스터에는 그림 속 남성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진=이마트24 제공

문제가 된 건 집게손가락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오조오억 개', '허버허버'와 같은 신조어도 남성 혐오적 맥락에서 사용된다고 지적하며 관련 문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용어들 역시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쓰이는 용어라는 건데요. 네티즌들은 CU와 세븐일레븐, 다이소가 제각각 자사 SNS 등을 통해 이런 용어를 쓴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유통 업체들은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사실 오조오억 개라는 용어나 집게손가락 이미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요. 이제 와서 갑자기 논란이 되니 당혹스럽다는 입장입니다. 실제 오조오억 개라는 용어는 지난 2019년 동원 F&B가 동원참치 광고 영상을 만들면서 사용했지만 당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집게손가락의 경우 무언가를 손으로 집는 이미지로 자주 쓰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불매운동 움직임까지 나타나는 마당에 억울함을 호소할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유통 업체들은 그간 만들었던 포스터나 SNS에 올린 게시물 등을 일일이 전수조사해야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논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더욱더 꼼꼼하게 확인하는 방안들을 계획하고 있고요.

이번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날이 갈수록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매운동이라고 하면 잠깐 뜨거워졌다가도 금세 열기가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제는 해당 기업이 오랜 기간 실적에 타격을 입을 정도로 불매운동의 여파가 지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더욱더 조심하려는 모습이고요. 이렇듯 기업에 대해 소비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업들의 하소연에도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업체들은 과거의 불매운동과 지금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재벌 오너가 서민에게 갑질을 하거나 제품에 유해성 물질이 발견되는 등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었습니다.

과거 동원참치 광고 이미지.

하지만 최근의 논란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인지조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집게손가락 이미지나 오조오억 개라는 용어 역시 논란이 될지는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고요.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거나 이런 트렌드를 잘 아는 젊은 직원들을 유관 부서에 배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논란의 여지를 사전에 100% 방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수많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만들어지는 용어나 이미지, 이슈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논란'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예기치 못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대응하는 원칙을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일리있는 말입니다. 물론 원칙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닐 겁니다. 논란이 벌어졌을 때 즉각 사과하는 '원칙'이 있을 수 있고요. 사과하지 않는 '원칙'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 기업이 미리 원칙을 세워놓고 움직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원칙을 전했습니다. "고객이 짜다고 하면 짠 거다"라고요. 사실 관계야 어찌됐든 소비자의 의견을 따르는 게 낫다는 입장입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손가락질을 다 피할 방법은 없다"고요. 요즘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어떻게 하든, 결국 언젠가는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체념의 목소리입니다. 유통 업체들의 '균형 감각'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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