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의 일입니다. 꽤 많은 언론에서 '새우깡'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농심 새우깡이 사상 처음으로 연 매출 1000억 브랜드에 등극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농심이 이날 '농심 새우깡, 최초로 1000억원 브랜드 등극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던 거죠. 국내 제과업계에서 연 매출 1000억원을 기록하는 과자는 롯데 빼빼로 뿐이었습니다. 새우깡이 그 자리에 올랐다니 당연히 널리 알릴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목을 보고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등극한다'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자료 내용을 살펴보니 새우깡은 아직 '1000억원 브랜드'가 되지 못했습니다. 농심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새우깡과 매운새우깡, 쌀새우깡, 새우깡블랙을 모두 포함한 새우깡 브랜드의 총 매출은 933억원이었습니다. 연말까지 1000억원 돌파가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던 거죠.
보통 이런 '마일스톤 달성' 자료는 해당 기록을 달성한 직후 배포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시장 상황을 예측하는 게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달성할 것 같다'고 자료를 배포했다가 실패하면 그거야말로 놀림거리가 됩니다. 특히 기업문화가 보수적인 식품업계는 이런 부분에 있어 더 조심스럽습니다.
농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깡 열풍'에 새우깡 매출이 급등했던 2020년을 볼까요. 이 해 12월 16일, 농심은 새우깡과 감자깡, 고구마깡 등 '깡 시리즈' 매출이 10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밝혔습니다. 거의 연말이 다 돼서야 1000억원을 달성하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지만 1000억원 달성을 확인한 후 자료를 배포했죠.
지난 10월 밝힌 '건면 매출'도 비슷합니다. 10월까지 7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습니다. 건면 매출 상승은 8월 출시한 '라면왕 김통깨'가 이끌고 있습니다. 두 달 만에 100억원을 기록했죠. 하반기 성장 추세를 보면 연말 1000억원 돌파도 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었죠.
올해 새우깡의 월 평균 매출은 85억원 안팎입니다. 12월에도 월 평균 수준의 매출을 유지한다면 연말 매출은 1017억원 정도가 될 겁니다. 1000억원 달성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른 팡파레를 터뜨릴 정도로 확실시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의문이 드니 또 하나 생각나는 자료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 배포된 농심의 북미 매출 보도자료였습니다. 농심은 올해 북미(미국·캐나다 법인)지역에서 전년 대비 23% 성장한 4억8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4월 가동을 시작한 미국 제2공장 효과로 매출이 크게 늘었다는 겁니다.
새우깡과 비슷한 점이 있죠. 현재까지의 매출이 아니라, 연말에 최대 매출을 기록할 것 같다는 추정치를 미리 공개한 겁니다. 연말까지의 추정치를 계산해 보면, 농심의 북미 매출은 이미 전년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연말 매출을 추정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릴 '것 같다'고 알린 거죠.
농심이 아직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일찌감치 알리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업계에서는 한 경제지의 기사가 시발점이 된 것으로 봅니다. 한 경제 매체는 지난주 농심의 라면에 들어가는 스프 등을 제조하는 주요 기업들이 신동원 농심 회장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오너의 가족과 경영이 결부된 문제는 그룹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슈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길 바라죠. 특히 농심은 자산 5조원을 초과하면서 올해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리하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불편한 기사가 나올 때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이슈를 공개해 이를 덮는 겁니다. 특히 실적이나 매출 등 관심도가 높은 내용이라면 많은 매체가 보도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기존 기사들의 노출도가 떨어집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기사 밀어내기'라고 표현합니다. 연말쯤 실적을 확정지은 후 배포하려고 했던 내용들을 서둘러 앞당겨 배포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제 네이버에서 농심을 검색하면 1페이지에 나오는 기사의 90%가 새우깡 연 매출 1000억원 달성과 북미 시장에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는 기사들입니다. 이정도면 성공적인 '밀어내기'가 된 셈입니다.
물론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알려야 할 이슈가 있어 자료를 배포했다는 거죠. 농심 역시 주력 제품·시장이 기념비적인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확실시돼 정보를 공개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연말을 앞두고 목표를 공식화해 달성 가능성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겠죠.
농심 측은 "연말 각종 모임이 많아지며 국민 스낵 새우깡을 찾는 소비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연 매출 1000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런 목적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국민 스낵' 새우깡이 출시 51년 만에 1000억원 매출을 달성한다는 내용은 많은 매체가 보도할 만큼 눈에 띄는, 재미있는 이슈입니다. 다만 이 재미있는 이야기의 이면에 또다른 목적이 있어 보인다는 의심이 새우깡이 이룬 성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만듭니다. 다음 번에는 이런 마음의 부담 없이 한 업계인으로서 축하할 수 있는, 기록을 '세울 것 같다'가 아닌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