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서방이 한국의 '안방'을 노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 전에 참가한 세계 최대 면세점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 얘기다. CDFG는 중국 정부의 지원책에 힘입어 2020년부터 3년 연속 세계 매출 1위에 올라 있다. 이제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인천 상륙'까지 노리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벼랑 끝에 서 있던 '토종' 면세점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중국의 인천상륙작전
1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 국내 면세점 4사(롯데·신라·신세계·현대백화점)와 CDFG가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면세점 4곳은 인천공항공사 면세점 DF1~5구역에 모두 참여했다. DF1·2는 향수·화장품, 주류·담배, DF3·4는 패션·부티크, DF5는 부티크 매장이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은 DF1~2에서 1곳, DF3~5에서 1곳 등 최대 2개 사업권을 가져갈 수 있다.
CDFG도 참가 신청을 끝냈다. CDFG는 2020년 한국 면세기업을 밀어내고 세계 면세점 매출 1위로 올라선 중국 국영기업이다. CDFG는 DF5를 제외한 DF1~DF4에 참가 신청서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CDFG는 시장조사를 진행하며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운영권에 관심을 보인 바 있다. 특히 관세청, 인천공항공사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등 입찰에 만전을 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세계 1위에 올랐던 공항면세점이다. 2019년 당시 매출만 2조8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이번 면세사업권은 지난해 기획제정부의 세법 개정으로 기본 사업 기간이 10년으로 늘었다. 이 때문에 스위스 듀프리 등 글로벌 면세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임대료 산정 방식도 '고정 최소보장액'(고정 임대료)에서 여객당 임대료로 완화됐다.
국내 4사와 CDFG는 앞으로 본격적인 입찰 레이스를 벌인다. 면세점 사업권 심사는 1차에서 인천공항공사가 사업계획점수 60% 가격제안점수(임대료) 40%를 반영해 복수 업체를 정한다. 2차 심사에선 관세청 특허심사점수 50%가 합산된다. 이르면 다음 달 1차 사업자가 발표된다. 이후 4월 관세청 최종 심사를 거쳐 결과가 발표된다. 신규 사업자는 오는 7월께 운영을 시작한다.
왕서방 등장에 업계 '긴장'
CDFG의 참여로 국내 면세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자금력을 앞세우면 CDFG의 낙찰 가능성이 적지 않아서다. 업계에서는 CDFG가 이번 입찰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낼 것으로 보고 있다. CDFG는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몸집을 불려온 기업이다. 중국의 면세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최근 2~3년 급성장했다. CDFG 현재 중국 면세 특구인 하이난 면세점의 최대 운영사다.
글로벌 면세 전문지 무디 리포트에 따르면 CDFG 매출은 지난해 93억6900만유로(약 12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2위인 롯데면세점(40억4600만유로)과 3위 신라(39억6600만유로)의 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어느 업체보다 막강한 실탄을 쏟아 부을 수 있다. 입찰전의 핵심은 결국 '돈'이다. 제안서와 사업 계획서 같은 경우는 사실상 변별력이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반면 국내 면세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동안 '절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다. 외국인 입국자 수가 급감하면서 2019~2020년 사실상 개점 휴업했다. 영업시간도 줄이는 등 직원들의 유급·무급 휴직을 지속했다. 이후에도 환율이 1300원대로 오르며 어려움이 깊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면세점 4사 대부분은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입찰전에 베팅할 자금 여유가 많지 않다.
특히 업계는 '여객당 임대료'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앞으로 공항 여객수가 코로나19 이전의 60%를 회복하면 '정상 임대료'를 내야한다. 공항 이용객 증가는 곧 면세점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호소다. 온라인 면세점 등이 활성화되고 있다. CDFG를 꺾기 위해 공격적으로 베팅해 사업권을 따내기도 부담이라는 얘기다. 자칫 잘못하면 10년간 수익성 악화에 시달릴 수 있다.
'상륙' 두려운 이유
CDFG의 입찰이 성공하면 국내 업계의 타격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공항 면세점 운영 경력을 바탕으로 점차 국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국내 시내면세점을 노릴 가능성도 나온다. 현재 국내 면세점 이용객의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다. 중국계 면세점이 국내에 들어온다면 이들은 자국 면세점을 이용할 확률이 높다. 국내 면세점의 입지가 크게 줄어든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중국에서는 민족주의로 '궈차오'(애국소비) 문화가 불고 있다. 국내 면세점에서 이 궈차오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국내 면세점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중국 보따리 상인 '따이공' 수요까지 CDFG에 흡수될 수 있다. 현실화하면 중소·중견 면세점의 피해도 커질 전망이다. 이외에도 중국계 기업의 고질적 문제인 '짝퉁' 등 위품 증가 우려도 제기된다.
물론 CDFG의 ‘인천 상륙’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자금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운영능력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최근 커지고 있는 국내의 '반중' 정서를 무시할 수도 없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CDFG는 명품 빅3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를 유치한 실적이 없다"며 "이 때문에 DF5 입찰에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CDFG의 진출이 면세점 특허 취지와 어긋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다른 면세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특허 취지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한 외화획득과 관광 진흥"이라며 "한국의 대문으로 불리는 인천공항 면세점을 중국 자본에 빼앗긴다면 이는 외화 유출"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CDFG에 매출이 집중되면 국내 면세업계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