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家) ‘왕자의 난’이 10여년째 이어지고 있다. '경영권 분쟁은 끝이 났다'는 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측 입장이지만,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생각은 다르다. '경영정상화 활동'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 최근 롯데알미늄 물적분할 관련 주주제안을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다. 동생인 신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후 표대결에서 사실상 연전연패를 거듭했지만, 여전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일 롯데 지분은 그의 영향력을 공고히 받치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여전히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편집자]
"명분 없는 반대? 롯데 측에 그 근거 묻고 싶다"
최근 신 전 부회장은 롯데알미늄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제안을 하면서 다시금 업계 안팎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롯데알미늄이 양극박 등 배터리 소재 사업 분야를 물적분할한다는 데 대해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는 주주총회에 앞서 "물적분할로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며 정관상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포함해달라고 요구했다. 소액주주 모두 각자의 주식 1주당 가치를 동등하게 보호하기 위한 개념으로, 경영진이 소액주주에 반하는 경영 판단을 할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줄이자는 취지였다.
롯데알미늄 지분 22.84%를 보유한 광윤사의 최대 주주인 그로선 명분이 있었다. 그간 타기업들이 신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한 후 신설회사를 상장시키면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희석됐던 사례가 근거였다.
통상 물적분할은 분할존속회사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물적분할 후 롯데알미늄비엠(가칭)의 외부 자금 유치를 위해 제3자 배정 신주발행 및 기존 주주 배제 방식의 상장 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그 과정서 롯데알미늄의 지분 가치가 희석돼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롯데 측은 "신 전 부회장의 주주제안은 '반대를 위한 반대', '명분 없는 반대'"라고 맞받아쳤다. 그룹의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사업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한 계획에 이유없이 반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신 전 부회장은 이에 대한 재반박 의사를 강하게 표명했다.
"나는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명분 없는 반대'라는 롯데 측 주장은 비논리적이다. 그들이 물적분할을 강행하게 되면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상당 부분 피해를 입게 된다. 롯데 측이 말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근거가 무엇인지 오히려 묻고 싶다. 만일 롯데가 보유하고 있는 주주가치가 훼손된다면 그 결정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겠는지.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롯데알미늄이 주주가치 훼손을 하면서까지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서는 "사업부 분할을 통해 비상장사 우회상장을 꾀하는 타 기업들의 사례가 더러 있었기에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롯데 정상화 행보 무모하지 않아…무한도전 이어갈 것"
결과적으로 지난 23일 열린 롯데알미늄 주총서 그의 주주제안은 부결됐다. 앞서 일본 롯데홀딩스 등 주총에서 그가 냈던 9번의 주주제안 모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까닭에 대해 신 전 부회장은 "아버지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맨손으로 이룬 롯데가 쇠락해 가는 것을 막고자 함"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신 전 부회장은 자신의 이러한 행보가 '경영권 분쟁'으로 치부되는 것에 대해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단순 경영권을 넘어 롯데그룹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예년의 경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해왔다. 외국 법령을 포함, 이에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이 종료 또는 집행을 받을 일이 없어진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하지 않은 자는 이사가 될 수 없다는 정관변경에 관한 것이다. 이는 롯데의 발전과 감시, 조언 등 부분에 있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현 이사진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자가 이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아버지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 살아계실 때부터 강조하신 윤리경영을 따르는 일이자 시간이 흘러도 불변하는 도덕적 명제다."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한국 조그마한 시골 울주군에서 자라 20살을 맞았을 무렵 풍운의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넜다. 롯데는 아버지가 청춘을 쏟아 맨손으로 일궈낸 기업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 롯데가 어떤 회사이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듣고 배웠다. 롯데가 현재 오너의 잘못으로 소비자에게 외면받고 시장에서 쇠락해 가는 것을 막고자 한다. 단순 경영권 분쟁이 아니다.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롯데를 예전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중단 없는 노력'이다."
과거 보유하고 있던 한국 롯데 관련 주식을 모두 처분한 이유에 대해선 "그 지분들로는 롯데의 경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을 만큼 미미했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주식 매각을 놓고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마침표'라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신 전 부회장은 2022년께 한국 롯데 관련 지분을 모두 매각, 롯데지주·롯데쇼핑·롯데칠성·롯데푸드·롯데제과 등 현재 그가 보유한 한국 롯데 상장사 지분율은 '0%'다. 당시 상속세 및 롯데 경영정상화 관련 자금 마련을 위해 매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 전 부회장이 롯데지주 등 한국 롯데에서 손을 뗐지만, 롯데그룹을 둘러싼 지분 관계는 여전히 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일 롯데의 지배구조상 정점에 위치한 광윤사의 최대주주가 신 전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유한 광윤사 지분은 50.28%다.
"호텔롯데 상장해도 일본 연결고리 끊기 힘들어"
'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하에 롯데 측의 최대 과제는 '호텔롯데 상장'이다. 이를 통해 한·일 지배구조를 정리하고자 함이다.
호텔롯데는 롯데홀딩스(19.07%)와 광윤사(5.45%) 등 일본 롯데 계열사 지분율이 99%에 달한다. 신주를 상장해 일본 측 지분율을 희석시킨다는 게 주 계획이다.
당초 목표시점은 2016년이었으나, 상황이 녹록지 않다. 당시 상장 직전까지 다다랐지만 이후 경영 비리 관련 검찰 수사,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 코로나19 등이 겹치며 실적이 악화했다.
다만 여전히 '호텔롯데 상장이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시각은 중론을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한 신 전 부회장의 견해가 궁금했다. 일각서 "호텔롯데 상장 시 신 전 부회장의 한국 롯데에 대한 지배력은 잃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호텔롯데가 상장돼도 일본 자본 지배력이 단절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장 시 신주를 발행해도 50% 이상의 신주를 시장에 발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장사 지분이 40% 이상만 돼도 지배력은 여전히 공고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롯데홀딩스와 일본 투자회사 등에 막대한 금전적 이익만 주어지고 지배력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어 국부 유출이 우려된다"는 게 그의 얘기다.
"호텔롯데가 상장된다고 해서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배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틀렸다. 상장사의 지분이 40% 이상만 돼도 그 지배력은 여전히 공고하다. 아무리 신주를 발행한다고 해도 50% 이상의 신주를 시장에 발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호텔롯데가 상장된다 하더라도 롯데홀딩스와 일본 롯데 투자회사들은 지배적 지분과 지배력을 여전히 유효한 정도로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업원지주회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 임원들도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신동빈 회장도 이를 알고 있고 그래서 호텔롯데는 아직 상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호텔롯데가 상장되면 결국 일본 롯데홀딩스와 투자 회사들에 막대한 금전적 이익만 주어지고 지배력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한국의 국부 유출이 심히 우려된다."
"전방위 유행 좇느라 '온라인 유통' 진출은 늦었고 느렸다"
롯데그룹이 지난해 재계 6위로 하락하는 등 전반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낸 것에 대해서도 지적이 이어졌다.
신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지난 1월 롯데 사장단 회의에서 강조한 인공지능(AI)과 일본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 제시한 4개 신성장 영역(바이오테크놀로지·메타버스·수소에너지·배터리 소재) 가운데 현재 롯데가 앞서나가며 경쟁력을 갖춘 사업 부문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그냥 좋은 말만 하고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는 것은 그룹의 총 책임자가 할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고객 시점 경영'을 언급했다. '맹목적으로 유행에 따르기보다 현재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회사여야만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이를 통해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와 롯데월드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통에 근간을 둔 대기업으로서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데 따른 패착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롯데는 제조와 유통에 강점이 있는 회사"라며 "남의 뒤를 따라가선 안되고 롯데만의 특성이 담긴 신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세계적인 유통 트렌드를 리드하는 회사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미래의 그룹 먹거리를 찾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며 "하지만 결정에 있어서 경영인 자신의 확신이나 철저한 시장 분석과 미래 비전 설정을 통한 경영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어느 순간부터 롯데가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유행에서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롯데가 영위하는 사업들도 방향을 잃어버리고 있다. 롯데그룹 양대 축인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 등도 정상운영 되지 않고 있다. 지금의 롯데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늘 시대에 뒤처지는 일을 하고 있다. 수년간 수조원을 투자하고도 정상화 되지 못한 '롯데온'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현재 유통의 패러다임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채널로 옮겨가고 있다. 4년 전 신동빈 회장은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연간 1조 이상 적자를 내는 쿠팡은 경쟁사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어떤가. 쿠팡이 이미 롯데쇼핑을 넘어서지 않았나. 온라인 사업 시작 시점도 경쟁사에 비해서 너무 늦었고 느렸다. 온라인 마켓 규모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탓이다."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 있긴 했지만 같은 상황속 동종 업계 내 더욱 선전한 기업들도 있다. 그룹 전체가 사활을 걸어도 모자랄 상황에 온라인 시장의 진출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안일하게 대응한 것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 회장이 온라인 사업의 중요성과 사업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기업 총수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특정 분야의 비즈니스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만큼 사업에 대한 경영자의 이해와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롯데그룹 총수 개인의 것 아냐, 정상화 반드시 달성할 것"
신 전 부회장은 "롯데 경영정상화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라고 재차 강조했다. "30여년간 인생을 바친 '롯데'는 운명적·숙명적으로 나의 인생 그 자체이자, 직원·거래처·주주들 덕에 존재하는 그룹인 만큼 위기 타개를 위한 노력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끝으로 신 전 부회장, 그의 포부를 싣는다.
"'롯데'라는 그룹은 일본에서 시작해서 한국에서 꽃을 피운 기업이다. 두 나라의 신기술이나 경영상 특장점 등이 상호작용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신격호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운명이 있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어찌 보면 개인적인 미래보다는 롯데의 비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숙명이라 생각된다. 롯데 입사 직후 '그룹을 승계하기 위해 입사했다'는 자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후 30여년간 내 인생을 롯데 사업 활동을 위해 바친 지금, '롯데가 내 인생'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런 롯데의 창업 정신이 등한시되고 경영 실적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이러한 위기를 보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지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총수 개인의 것이 아니다. 직원들과 거래처, 주주 덕분에 존재하는 기업이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경영정상화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