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식품업계의 희비를 가른 건 다름 아닌 수출이었다. 국내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부진으로 대부분의 식품 업체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해외에선 K푸드의 활약이 빛났다.세계적인 소울 푸드
K푸드는 올해 해외에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농식품 누적 수출액은 작년 동기보다 8.1% 늘어난 13조2500억원(90억5000만달러)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치다. 수출 상위 품목인 라면, 과자류, 음료, 쌀가공식품 등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중에서도 수출 일등 공신은 올해도 어김없이 라면이었다. 2014년부터 매년 최대 수출 기록을 경신해온 라면은 1조6700억원(11억3800만달러)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수출액을 가뿐히 넘겼다. 저렴하면서도 한국인의 한 끼를 간편하게 책임졌던 라면이 이제는 국내를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소울 푸드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K라면 수출 성장의 중심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시리즈가 있다. 불닭 브랜드는 해외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다. 해외 유명 연예인의 불닭 조리법, 한 외국인 소녀가 까르보불닭을 생일선물로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영상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불닭 시리즈는 올해 출시 12년 만에 연간 매출 1조원을 넘겼다.
다만 이 같은 K푸드의 성장세에도 소비심리 위축과 원가 부담으로 국내에서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업계 맏형인 CJ제일제당의 올 3분기 식품사업부문 매출은 2조972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 줄었다. 오리온은 전체 매출이 지난해보다 1.1% 증가한 7749억원을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한국 법인 매출은 2711억원으로 0.4% 감소했다. 내수 의존도가 높은 동원F&B는 1조2203억원의 매출을 거둬 1.1% 성장에 그쳤다.
활발한 세대교체
수출이 각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자 식품업계는 오너가 자녀들을 앞세워 신성장동력 확보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농심과 오뚜기는 올해 오너 3세를 승진시키는가 하면 경영 전면에 속속 배치하며 주목을 받았다. 글로벌에 초점을 맞춘 사업 다각화 전략을 구사해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게 이들의 주요 과제다.
농심은 지난달 '2025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미래사업실장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2021년 말 구매담당 상무 자리에 오른 지 3년, 신설된 미래사업실을 맡은 지 1년 만이다. 신 전무는 신규 사업 진출과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업무들을 맡으며 농심의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를 꾸릴 예정이다. 이외에 신 전무의 누나 신수정 음료마케팅팀담당 책임은 상품마케팅실 상무로 승진하며 임원 배지를 달았다.
오뚜기는 아직 오너가 자녀들을 임원 자리에 앉히진 않았지만, 본격적인 가족 경영의 신호탄을 쐈다. 함영준 오뚜기 대표이사 회장의 장녀인 함연지 씨는 지난 5월 오뚜기의 미국 법인인 오뚜기 아메리카에 정식 사원으로 입사했다. 현재는 마케팅 매니저를 맡고 있다. 2021년부터 경영 수업에 돌입한 함윤식 씨는 경영전략파트 차장으로 재직 중이다.
오리온은 올해 초고속 승진 사례로 눈길을 끌었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장남인 담서원 씨는 지난 2021년 7월 오리온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한 이후 약 3년 반 만에 전무직에 올랐다. 담 전무는 그룹 내 사업전략 수립부터 관리, 글로벌 사업 지원 등 경영 전반에 걸친 실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올해 승진은 유임됐으나 활발히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는 오너 3세들도 있다. 바로 삼양식품과 CJ제일제당이다. 지난해 10월 상무로 승진한 삼양식품 오너 3세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 전략기획본부장은 최근 출시한 '맵탱'을 '제2의 불닭볶음면'으로 만들기 위해 전반적인 개발 과정을 직접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CJ제일제당 역시 CJ가(家) 오너 4세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이 프랑스와 헝가리에 새 법인을 설립하며 K푸드 영토 확장에 힘을 싣고 있다.
식품업계는 내년에도 활발한 수출에 나서며 해외 진출에 주력할 전망이다. 가뜩이나 회복이 더딘 내수 시장이 최근에는 정국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치솟는 원·달러 환율도 부담이다. 원·부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가격 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따라 수출 비중을 늘리고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 속도를 내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게 이들 업체의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