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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향에서 무언가 떠올랐다면…'향기 마케팅'의 비밀

  • 2025.03.02(일) 13:00

[생활의 발견]'프루스트 효과'
향기·냄새로 특정 순간 기억
호텔 등 '향기 마케팅'하는 이유

/그래픽=비즈워치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냄새로 되찾은 기억

길을 걷다 문득 익숙한 향기를 맡고 잊고 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 적 있으신가요? 어릴 적 자주 가던 빵집 앞을 지나며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을 때, 혹은 오랜만에 꺼낸 스웨터에서 익숙한 향수 냄새가 날 때 과거의 특정한 순간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이처럼 특정 향기나 냄새가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현상을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라고 합니다. 이 효과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마들렌 에피소드에서 유래했습니다.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립니다. 차와 과자의 향이 깊이 잠들어 있던 기억을 자극해 한순간에 과거로 되돌아가게 만든 것이죠.

향기를 맡는 이미지 /사진=아이클릭아트

프루스트 효과는 뇌 구조와 연관이 있습니다. 후각은 사람의 감각 중에서도 대뇌변연계의 편도체와 해마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편도체는 감정을 담당하고,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죠. 결국 향(香)은 단순한 후각적 경험을 넘어 기억과 감정을 깊이 연결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제는 브랜드들이 소비자와 정서적 연결을 형성하는 매개체로 향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시그니처 향을 내세운 프래그런스 브랜드부터 고유의 향기로 공간을 완성하는 호텔, 패션 브랜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향을 통해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는 프루스트 효과를 노린 각 브랜드들의 '향기 마케팅' 전략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거 그 호텔 향이잖아"

호텔마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 풍겨져오는 향들이 있죠. 호텔롯데는 2017년 5성급 호텔 '시그니엘'의 시그니처 향으로 '워크 인 더 우드'를 도입했습니다. 소비자들의 요청으로 디퓨저, 룸 스프레이를 호텔 PB 상품으로 출시했는데요. 지난해 9월 롯데호텔은 '임브레이싱 모먼트'를, L7호텔은 '레이어드' 향을 각각 개발했습니다.

임브레이싱 모먼트는 베르가못, 침향, 백단나무향에 생강과 인삼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 특유의 생동감 있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조향했다고 하네요. 레이어드는 산뜻한 무화과와 베르가못의 탑노트 뒤로 삼나무와 고수향이 납니다. 여행에서의 모든 경험들이 겹겹이 쌓여 다채로운 영감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설명입니다.

레스케이프 시그니처 디퓨저 제품 /사진=조선호텔앤드리조트

조선호텔앤리조트가 운영하는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는 은은한 장미향이 시그니처입니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이 시그니처향에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의 스토리를 담았다고 하는데요.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대'를 뜻합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1914년) 직전까지의 황금기를 지칭하는 용어죠.

레스케이프는 조선호텔앤리조트가 이 프랑스 파리를 모티브로 구현해 2018년에 지은 호텔입니다. 콘셉트를 향기와 연관지은 겁니다. 레스케이프는 시그니처 향을 차량용 디퓨저와 버블바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랜드파크가 운영하는 켄싱턴호텔앤리조트은 시그니처 향을 담아 디퓨저로 만들었는데요. '센트 오브 켄싱턴 디퓨저'는 숲에서 나는 시원하고 깨끗한 피톤치드 향이 납니다. 도심 속에서도 자연 속에 머무르는 듯한 편안한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처럼 호텔들은 자사의 시그니처향을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합니다. 자체 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일상에서 시그니처 향을 접하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호텔에 대한 친근감을 키우고, 호텔에 묵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재방문을 유도하는 전략입니다.

향수 한 병에 담긴 스토리

이처럼 향기는 사람에 대한 기억에 영향을 미칩니다. 향기가 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로 남기도 하죠. 그래서일까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니치향수'가 주목받았습니다. 니치향수는 대중적인 브랜드의 향수와 달리, 희소성과 개성을 강조한 프리미엄 향수를 의미합니다. 기존에 화장 등으로 개성을 드러냈다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게 되면서 향기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니치라는 용어에 대해 잠시 설명을 드리자면, 'Niche'는 프랑스어로 작거나 움푹 들어간 공간을 의미합니다. 17~18세기 영어에 접목돼서는 '특정한 역할이나 시장을 차지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띄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대중성보다 특별함을 강조하는 만큼 니치향수 브랜드들은 제품을 소개할 때 단순히 향에 대한 정보 전달뿐만 아니라 각각의 제품이 지니고 있는 스토리, 영감, 제작 과정 등을 함께 설명합니다. 그 배경에는 전문 조향사가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담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특성을 부각시켜 브랜드만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고객과 감성적인 소통을 하려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딥티크_레 제썽스 드 딥티크 성수 팝업 전경 /사진=신세계인터내셔날

니치향수로 국내에 들어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는 대중적인 브랜드로 인식되는 브랜드들이 있는데요. 대표적인 예가 '딥티크'입니다. 딥티크는 영국 출신의 디자인 학도 3명이 만든 브랜드인데요. 화가였던 데스먼드 녹스 리트, 무대 디자이너였던 이브 쿠에랑, 건축가였던 크리스티앙 고트로가 창업자입니다. 

딥티크의 심벌은 그림과 글자를 그려 넣은 타원형 라벨입니다. 캘리그라피를 사랑했던 데스먼드는 향초를 만들면서 이 라벨을 직접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1961년 파리 생제르망 거리에 가게를 연 후, 1963년엔 이들은 딥티크 최초의 향초 '오베삔느'를 선보입니다. 1968년에는 딥티크의 첫 향수인 로(L’EAU)를 론칭했는데, 이것이 전 세계 상류사회를 열광시키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딥티크의 대표제품인 '도손'은 튜베로즈, 오렌지 블라썸, 자스민 등의 원료를 기반으로 다양한 꽃향이 어우러진 향이 특징입니다. 여기에도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브 쿠에랑은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을 하롱베이 도손 바닷가에서 보냈다고 하는데요. 그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은은한 향신료 향이 어우러진 튜베로즈 향기가 바닷바람에 실려가는 것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클로드 모네 작품(수보아 드 생제르망) /사진=셀바티코

800년 전통의 이탈리아 뷰티 브랜드 산타마리아노벨라의 스토리도 재미있습니다. 이 브랜드의 역사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표제품인 '아쿠아 디 콜로니아-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16세기 당시 메디치 가문의 카트리나 공주와 프랑스 앙리 2세의 혼인을 기념해 제조된 향수였습니다. 카트리나 공주가 파리로 떠날 때 지참하면서 '아쿠아 델라 레지나(Acqua Della Regina, 왕비의 물)'라고 불리며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한편, 과거 시대를 향기로 표현하는 콘셉트를 가진 브랜드도 있습니다. 프랑스 헤리티지 기반 프래그런스 브랜드 '셀바티코'는 프랑스 인상주의 시대의 풍경을 강조해 주목받고 있는데요. '살롱 드 파리'는 레몬과 블러드 오렌지의 첫 향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바닐라와 머스크로 여운을 남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벨 에포크 시대 프랑스의 살롱 문화를 향으로 재현했다는 설명입니다.

또 '수 보아 드 생제르망'은 클로드 모네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가을 숲속 마른 나무의 향을 표현했다고 하는데요. 클래리 세이지와 캐시미어 우드가 따뜻한 감성을 더하고 마지막에는 아이리스와 제비꽃이 은은하게 번집니다. 노랗게 물든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고 부드러운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장면이 연상되도록 조향했다는 설명입니다.

향수에 대한 지식 한 모금

향수는 영어로 '퍼퓸(perfume)'이죠. '무엇을 통하여'라는 의미의 'per'와 연기라는 의미의 'fumus' 어원들이 합쳐진 말입니다. 향수는 향료를 알코올에 배합시킨 것으로, 향료의 배합비율에 따라 향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조향했느냐에 따라 향수의 탑 노트, 미들 노트, 라스트 노트는 달라집니다. 

또 향료의 농도에 따라 향기의 지속성도 달라지는데요. 가장 강한 농도의 '퍼퓸(Parfum)은 알코올에 향료를 20~30% 합성시킨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으로 '오드 퍼퓸(Eau de perfume)은 15~20%, '오드 뚜왈렛(eau de toilette)은 향료 5~10%, 오 드 코롱(Eau de Cologne)은 3~5%의 향료를 희석한 것으로 통용됩니다.

여기서 '오(eau)'는 프랑스어로 '물'이라는 뜻입니다. 뚜왈렛(toilette)는 '화장, 몸치장'을 뜻하고요. 17~18세기 유럽에서 사람들이 몸을 단장하는 공간이나 과정(예: 머리 손질, 면도, 향수 사용 등)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살롱 드 파리 /사진=셀바티코

과거 유럽에서는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정돈하고 향을 더하기 위해 가벼운 향수를 사용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향수는 물처럼 가볍고 휘발성이 강한 제품이었고, 이를 오드뚜왈렛이라고 불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향수 관련 용어에 프랑스어가 널리 사용되는 이유는 향수가 산업으로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프랑스이기 때문입니다.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가 향수를 좋아했고, 당시 귀족들이 향수를 패션의 일부로 사용하면서 향수 제조 기술이 크게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서는 샤넬, 디올, 겔랑 등과 같은 명품 패션 브랜드들이 향수를 출시하면서 프랑스 향수가 세계적인 표준이 되었다고 하죠.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향을 마주합니다. 익숙한 커피 향이 아침의 시작을 알리고 저녁 산책길에서 맡은 나무 향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을 만들어 주죠. 어쩌면 향은 단순한 냄새가 아닌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을 담아두는 조용한 기록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 오래 전의 기억을 다시 꺼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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