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신제품을 내놓지 않으며 휴지기를 가졌던 비빔면 시장이 올해 다시 타오르고 있다. 연초부터 팔도, 농심, 삼양식품 등이 잇따라 신제품을 내놓거나 신제품 출시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하림도 지난해 한정판으로 선보였던 '더미식 비빔면 맵싹한 맛'을 올해 한 번 더 선보이며 틈새시장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신제품 풍년
지난해 라면 제조사들은 기존 제품들로만 여름 비빔면 시즌 경쟁을 치렀다. 매년 돌아가면서 신제품이 나오는 이 시장에서 주요 제조사들이 신제품을 내놓지 않은 건 매우 이례적이었다. 눈에 띄는 신제품을 내놓은 건 라면 시장의 신입사원 하림 정도였다. 그나마도 메인스트림 공략을 위한 게 아닌 틈새시장용 매운 비빔면이었다.
업계 1위 팔도는 기존 팔도비빔면에 마라 스프를 넣은 '마라왕 비빔면'을 내놨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후 간장·후추 베이스의 '팔도비빔면 2'를 선보였지만 이는 여름 시즌이 마무리 돼 가는 8월이었다. 팔도비빔면 2가 속칭 '뜨빔면(뜨겁게 먹는 비빔면)' 트렌드를 노린 제품임을 감안하면 여름 시즌용 비빔면이라기보다는 겨울 시즌을 노린 '볶음면'에 가깝다.

비빔면 시장에서 늘 고전해 왔던 삼양식품은 아예 손을 뗐다. 역사 깊은 제품인 열무비빔면을 단종시킨 데 이어 2023년 새로 내놨던 '사과비빔면'도 1년 만에 단종시켰다. 매출이 미미한 비빔면 브랜드를 유지하느니 불닭볶음면에 집중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팔도와 농심, 삼양식품이 나란히 주목할 만한 제품을 내놨다. 팔도와 농심의 경우 이미 팔도비빔면과 배홍동이라는 업계 1, 2위 브랜드를 보유한 만큼 불필요한 신규 브랜드가 아닌, 추가 매출을 기대할 만한 '사이드킥'을 선보였다. 기존 팔도비빔면과 배홍동의 점유율이 굳건한 만큼 카니발라이제이션(잠식효과) 없이 추가 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놨다는 분석이다.
신제품 나가신다
팔도는 이달 초 신제품 '팔도비빔면 제로 슈거'를 출시했다. 국내 비빔면 최초로 설탕을 넣지 않고 대체당 '알룰로스'를 사용해 제로 슈거(무당류) 표시기준을 충족했다. 비빔면은 국물라면에 비해 '달아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는 점을 역이용한 제품이다.
소스만 바꾼 것이 아니다. 면도 신규 배합을 적용했다. 기존 팔도비빔면보다 밀가루를 줄이고 전분은 늘려 쫄깃한 식감을 강화했다. 팔도비빔면이 배홍동이나 진비빔면 등 경쟁 브랜드에 비해 면발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농심도 지난 13일 신제품 비빔면인 '배홍동칼빔면'을 출시했다. 기존 배홍동에서 면을 칼국수 건면으로 바꾸고 소스엔 다진 김치를 넣어 '비빔칼국수'를 구현한 제품이다. 이 제품은 지난 2020년 출시했다가 1년 만인 2021년 단종시킨 칼빔면의 핵심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다. 굵고 납작한 면발, 다진 김치를 넣은 비빔소스 등을 배홍동에 도입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과 함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할 브랜드 '맵탱'으로 2년 만에 다시 비빔면 시장에 재도전한다. '맵탱 쿨스파이시 비빔면 김치맛'이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김치맛을 강조했고 큐베브페퍼오일을 넣어 알싸한 맛을 더해 기존 비빔면과 차별화했다. 제품명 뒤에 '김치맛'을 붙인 건 향후 김치맛 외 다른 맛으로도 범위를 넓히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지난해 더미식 비빔면과 더미식 비빔면 맵싹한 맛, 메밀 비빔면 등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하림은 올해 신제품을 내기보다는 기존 제품의 마케팅에 집중해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시즌 한정으로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맵싹한 맛'을 올 여름 다시 한 번 선보인다.
긴 여름
라면 업계에선 올해 비빔면 시장이 '퀀텀 점프'를 이룰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여름이 그 어느 해보다 길고 무더운 여름이 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기후 전문가들은 4월부터 20도를 웃도는 초여름같은 날씨가 시작돼 11월까지 더위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1년 중 3분의 2인 8개월이 '여름'인 셈이다. 당연히 여름이 성수기인 비빔면 매출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국내 비빔면 시장 규모는 약 18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배홍동과 진비빔면의 급성장으로 시장 파이가 커진 2023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눈에 띄는 신제품이 나오지 않으면서 시장 성장이 멈췄다. 하지만 올해엔 2000억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마케팅 대결도 치열하다. 팔도는 지난해 효과를 톡톡히 본 '대세 배우' 변우석과의 동행을 이어간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팔도비빔면 패키지에 포토카드를 동봉하는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 올해 모델을 발표하지 않은 농심의 경우 론칭 때부터 이어 왔던 유재석과의 인연이 올해에도 이어질 지 관건이다.
오뚜기 진비빔면은 올해 방송인 최화정을 새 모델로 기용했다. 출시 첫 해인 2020년 백종원을 모델로 기용했던 오뚜기는 2023년 가수 화사로 모델을 바꿨고 지난해엔 배우 이제훈을 새 얼굴로 기용하며 매년 모델을 교체하고있다. 2위 농심 배홍동과의 점유율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만큼 새 모델 기용을 통해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잠잠했던 비빔면 시장이 올해엔 초봄부터 떠들썩한 것 같다"며 "올해엔 여름이 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만큼 모든 브랜드들이 매출 증대를 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