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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이렇게 드세요"…농심 연구원이 알려준 '비법'

  • 2026.01.30(금) 13:11

[르포]농심 라면연구소 방문기
수십 번 바뀐 스프 맛
연구원이 끓인 '신라면 골드'

농심 라면 연구원이 직접 끓인 라면을 그릇에 옮겨담고 있다./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라면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음식 중 하나다. 그러나 라면 한 그릇이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들어가는 노력은 저렴하지 않다.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도전이 쌓이고 쌓인 후에야 지금의 '라면'이 완성된다.

지난 28일 찾은 농심 연구소는 단순히 라면을 만드는 장소를 넘어,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정립해온 거대한 연구실이었다. 창업주의 철학에서 시작해 켜켜이 쌓인 연구 노트 그리고 연구원이 직접 끓여낸 한 그릇까지. 라면에 누구보다 진심인 한 기업의 철학이 이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농심 라면 맛의 비밀

서울 동작구 소재 농심 본사에 자리한 라면 연구소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공간은 농심의 60년 역사가 집약된 '창조관'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농심이 라면 사업에 첫발을 뗀 1960년대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농심에 따르면 고(故) 신춘호 창업주는 당시 국가적 과제였던 식량난 해결을 위해 라면 사업을 결심했고 이 연구소를 설립했다고 한다. 이후 오늘날의 'K라면'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이곳에서 잉태됐다.

연구소동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1만여 권의 자료가 보관된 '사료실'이 나타난다. 이곳의 핵심 자산은 '처방전'이라 불리는 스프 레시피다. 바인더에 꽂힌 낡은 종이에는 손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원료 배합 비율과 수정 흔적이 가득했다. 놀라운 점은 같은 제품의 처방전이 수십 장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기후 변화나 원료 작황에 따라 고추의 맵기나 원료의 상태가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료실에 비치된 스프처방전/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흥미로운 건 이런 변화가 소비자에게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운맛을 크게 조정하는 등 대규모 변화가 아니라면 맛을 리뉴얼했다고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농심 관계자는 "소비자는 늘 같은 맛이라고 느끼지만 내부에서는 맛을 유지하기 위한 조정이 끊임없이 이뤄진다"면서 "소비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선에서 일관된 맛을 구현하는 것이 농심 기술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사료실 옆에는 식품업계에서 유일무이한 '식문화 전문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2009년 문을 연 이곳은 약 5만권의 식품 관련 장서를 보유한 지식의 보고다. 북한의 식문화 서적부터 해외 희귀 자료까지 가득한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2권의 고서(古書)다.

'춘향전', '보선상식', '동의보감' 등 언뜻 라면과 무관해 보이는 문헌들이 연구소에 소장된 이유는 따로 있다. 옛 문헌 속 음식 기록과 식사 장면 하나하나가 과거의 식생활을 읽어내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농심은 과거의 맛을 연구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미식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

연구원이 알려준 '라면의 비밀' 

농심 본사 견학의 하이라이트는 연구원들이 직접 끓여낸 라면 시식이었다. 이날 냄비에 오른 제품은 닭 육수 베이스의 신제품 '신라면 골드'다. 조리 과정을 시연한 위기현 스프개발팀 선임은 '후첨 조미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오래 끓이면 날아가는 미세한 향과 풍미를 잡기 위해 마지막에 넣도록 설계된 것"이라며 "귀찮다고 처음부터 넣으면 연구원이 설계한 본연의 맛을 잃게 된다"고 조언했다.

면발에도 비밀이 숨어 있었다. 농심에서는 면발이 완전히 같은 제품을 찾기 어렵다. 스프와의 조화를 고려해 굵기와 탄력, 원료 배합을 다르게 설계하기 때문이다. 신라면 골드의 면 역시 '새 면'이다. 기존 면보다 더 진한 노란빛을 띤다. 면에서부터 기존 신라면과 다른 '골드'라는 이미지가 전달됐다.

김도형 면개발팀 책임은 "신라면의 품질과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해 면의 굵기와 주요 원료는 기존과 동일하게 가져갔다"면서 "대신 비타민B2를 증량해 국물 색과 어울리는 노란빛을 강화했고, 면은 한눈에 보기에도 탄력이 살아 보이고 씹었을 때 찰기가 느껴지도록 차별화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농심의 간편식개발팀 장진아 책임, 스프개발팀 위기현 선임, 면개발팀 김도형 책임이 신라면 골드를 끓이는 모습/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라면 맛의 진짜 비밀은 의외로 단순했다. 연구원들이 치열하게 설계한 '기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농심 연구소에는 라면 개발에만 매달리는 연구원 약 40명을 포함해 총 170명의 인력이 상주한다. 이들이 라면 한 봉지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이다. 수백 번의 시제품 테스트와 수십 차례의 처방 수정 끝에 도달한 결과물은 제품 뒷면에 적힌 네 줄짜리 조리법으로 압축된다.

시식을 마친 뒤 참가자들도 직접 라면을 끓여보며 조리법의 위력을 체감했다. 생수로 물의 양을 맞추고 스톱워치로 조리 시간을 재며 안내된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평소 집에서 라면을 끓이던 대로 가스레인지의 강불로 국물을 끓이자 "불을 조절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물이 끓어 넘치지 않을 정도의 불 세기로 끓이는 게 '정석'이라는 설명이었다.

기자가 직접 끓인 신라면 골드/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연구원들의 최근 고민 역시 이 '불 조절'에 있다고 했다. 화력이 강한 인덕션이 보급되면서 레시피대로 끓이면 면이 퍼지거나 국물이 졸아드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구원들은 인덕션의 화력에 맞춘 레시피도 연구 중이다. 곧 신라면 봉지에서 '인덕션 조리 시'라는 문구를 보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라면을 끓이고 마지막에 후첨 조미유까지 투입하자 집에서 무심코 끓였던 라면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면발은 퍼지지 않고 탄력이 살아 있었다. 국물은 적당한 염도와 칼칼함을 유지했다. 같은 제품이라도 조리 과정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김 책임은 "조리 시간을 줄이거나 달걀, 치즈를 더해 자기만의 레시피를 찾는 것도 라면의 재미지만 기본 레시피대로 끓였을 때 제품이 가진 완성도를 가장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면서 "연구원들이 수많은 변수를 거쳐 설계한 기본만 지켜도 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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